하늘, 물, 햇빛, 바람, 산책, 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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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 함께 카페에서 막 나왔을 때, 하늘이 가장 먼저 보였다. 파란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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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안간 충동이 일었다. 여기서 집까지 걸어서 가봐야겠다. 전에도 몇 번인가 그런 생각을 했었지만 시도하진 않았다. 날씨가 추워진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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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 충동에 져주도록 하지. 오늘 생각지 못하게 날씨가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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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요 근래에 비해 조금 덜 춥다 뿐이지, 날씨가 풀린 것은 아니었다. 혼자 걷기 시작하고 얼마간은 괜찮았다. 오히려 걸으니 몸에서 열이 나는 게 느껴졌다. 나는 목도리를 풀어서 가방 끈에 묶어 매달고 걸음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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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늘을 보는 걸 좋아한다. 파란 하늘도 좋고, 구름이 떠다니는 하늘도 좋다. 물론 밤하늘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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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에 비친 햇빛을 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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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대교를 건너면서 생각했다. 아하, 어리석은 나. 나에게는 아직 감기기운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떠올렸다. 손이 벌겋게 식다 못해 붓고 있는 것 같았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목도리를 다시 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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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도 다리 밑으로 햇빛이 반짝이는 것이나, 멀리로 보이는 파란 하늘 같은 것에 시선을 빼앗겨서 잠시동안 서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오늘은 이걸 꼭 남겨두고 싶었다. 모처럼 산책을 하니 기분을 내고 싶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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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 포기하기로 결정하고 버스를 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양화대교는 길었다. 정신이 좀 혼미해지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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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내려서 집에 어떻게 걸어왔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정신이 없는 통에 몸이 그냥 혼자 집에 왔다. 집에 도착해서 뜨끈한 물로 몸을 지졌다. 앉아서 오늘 쓴 글을 수정하는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두통약을 하나 꺼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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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시간엔 뜨끈한 전기장판 위에 앉아서 뜨개질을 하면서 보낼 것이다. 동생이 재밌는 드라마를 추천해 줬다. 근래에 여기저기서 추천받은 것들이 많아서 부지런히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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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통은 약이 알아서 어떻게 해줄 것이고 차가운 몸은 전기장판이 알아서 어떻게 해줄 것이다. 그럼 됐다. 오래간만에 한 산책에 기분이 좋았다. 그럼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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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햇빛에 홀려서 차가운 손으로 쓰는 어떤 짧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