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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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병원 예약이 되어 있어서 일찍 일어났다. 11시 20분 예약이라 그렇게 빨리 일어날 필요는 없었지만, 눈이 그냥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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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갈 때 늘 후줄근하게 입고 진료만 보고 후다닥 집에 돌아오곤 했었는데, 오늘은 멀끔하게 씻고 화장까지 번쩍번쩍하게 했다. 내가 화장을 번쩍번쩍해봤자긴 하지만. 진료가 끝나고 카페에서 작업을 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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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들어가기 전에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서 담배를 한 대 폈다. 작은 간판이 눈에 보였다. ‘coffee’ 그리고 화살표가 있었다. 그 화살표를 따라서 골목으로 더 들어가 보니 정말 커피집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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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롭게 병원에 도착해서, 여유롭게 진료를 보고 나왔다. 오늘 원래 가려던 카페가 있었지만, 아까 본 커피집이 계속 아른거려서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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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뼛쭈뼛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사장님과 직원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앉아있다가 벌떡 일어나서 인사를 했다. 나도 꾸벅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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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을 하러 가니 또 인사를 해주셔서 나도 자그맣게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했지만, 목상태가 안 좋아서 잘 못 들으셨을 것 같다. 내가 인사를 안 받아줬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뭘 어떡해. 지나간 일이니 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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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쪽에 있는 작은 테이블에 앉았다. 오늘의 커피 친구는 따듯한 카페 라떼다. 매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는 나지만, 오늘은 라떼를 먹고 싶었다. 어렸을 때는 우유를 아주 많이 먹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때는 우유급식이 있었다. 손잡이가 있는 플라스틱 박스에 우유가 차곡차곡 담겨 있었다. 두 명씩 짝을 지어서 우유 당번을 했다. 조그만 발을 휘청휘청거리면서 작은 우유가 30개 넘게 담겨 있는 통을 옮기곤 했다. 친구들 중에 더러 우유를 싫어하는 애들이 있었다. 나는 그런 친구들의 우유를 받아서 보란 듯이 우유를 원샷하곤 했다. 흰 우유도 좋고, 초코 가루를 타먹는 우유도 좋았다. 가끔 딸기도 좋았다. 집에도 항상 우유가 있었다. 내가 잘 먹는다는 이유로 엄마가 자꾸 사다 놨고, 나는 그걸 정말로 잘 먹어 치웠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12년 동안 매일 작은 우유 한 팩을 먹었다. 때론 한 팩 이상 먹을 때도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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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우유를 먹으면 가끔 배가 아프다. 가끔이라기보다, 대체로 배가 아파지는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라떼를 먹었다. 아, 배 아파, 집에 가고 싶어. 어렸을 때, 내가 살면서 먹을 수 있는 우유를 모두 먹어버린 것 아닐까? 일생에 먹을 수 있는 우유의 양이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걸 모르고 일찌감치 그 우유를 모두 먹어 치워 버린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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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배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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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유는 핑계고, 막상 카페에 앉으니 집에 가서 누워있고 싶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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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셔츠를 입고 나왔는데, 셔츠가 불편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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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카페가 좀 춥다. 나는 옷을 가볍게 입고 작업하는 걸 좋아하는데 추워서 겉옷을 모두 껴입고 앉아 있으려니 작업을 하기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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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추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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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장님에게 이런 말은 못 하겠지, 적당히 앉아있다가 아픈 배를 부여잡고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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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탈스러운 인간의 까탈 부리는 어떤 짧은 글. 아, 배 아파. 집에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