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눈사람 (2024)
눈사람은 결국 녹게 되어 있어요. 나는 어떤 이름의 단어를 그 안에 넣고 데굴데굴 굴리곤 했어요. 아아, 나는 여기다 이걸 또 숨겨놓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요. 조금씩 뭉쳐지는 눈사람을 보면서 크게 만들어야지,라고 생각했지만 손이 시리다는 이유로 그렇게 크게 만들진 못했어요. 결국 봄은 시작되고 눈은 녹을 거예요. 눈사람은 그렇게 사라져요.
눈이 오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앞으로 눈이 오면 떠오르는 사람이 바뀔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어요. 그렇게 그 후에 눈이 올 때마다 어떤 사람을 떠올리곤 했어요. 같이 눈을 맞으면서 쌓이는 눈을 보는 게 참 좋았거든요. 대뜸 한 바퀴 돌고 오겠다며 눈 사이로 멀어지는 뒷모습 같은 걸 생각했어요. 우리의 발걸음에 맞춰서 뽀드득뽀드득 소리를 내던 눈 같은 걸 생각했어요. 희한하게도 그런 게 계속 생각이 나곤 했어요. 올 겨울에는 눈이 좀 왔지요? 그래서 눈이 오면 나는 당신을 생각하고, 또 눈이 오면 또 당신을 생각하면서 눈사람을 키웠어요. 그래서 점점 커지는 눈사람을 보면서 아, 나 누군가 좋아하고 있구나.
하지만 눈사람은 금세 녹아내리지요.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요. 봄이 오면 절로 녹아버리곤 하지요. 봄이 오면 다신 만들 수 없을 것이고, 한동안 눈 같은 것도 보지 못하겠지요. 나는 녹은 눈사람의 자리를 보면서 내가 하지 못했던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될 거예요. 안타깝게도 저는 그런 미련 맞은 인간이라서요.
이제는 눈이 없는 길 위에 서서 신호등을 기다려요. 이제 누굴 떠올리곤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요. 이제 눈사람이 생각나면 어유, 지금 눈도 없는데, 생각하지 말아야지, 그러면서도 눈사람을 자꾸 떠올리곤 하겠지요. 녹아버린 눈사람이 가여운 걸까요. 아니면 덧없이 눈사람을 보내야 하는 봄이 원망스러운 걸까요. 그도 아니면 그냥 내 마음이 그런 것뿐일까요. 사라져 버린 눈사람을 생각하니 서글퍼서 엉엉 울었어요. 눈사람을 만들지 말 걸. 의미 없는 후회를 해요. 내가 못 보는 사이에 녹아 사라졌을 눈사람이 가여워요. 내가 자는 사이에 홀로 찬 눈을 맞다가 또 홀로 볕을 받아 녹았을 눈사람이요. 당신 때문이 아니라 그래서 울었을 거예요, 아마도요.
항상 이 사람 손이 왜 이렇게 차?라고 생각하곤 했는데, 어제의 손은 참 따듯하더라고요. 이제 곧 봄이 올 거예요. 당신이 싫어하는 차가운 겨울이 이제 지나갈 거예요. 봄이 되면 당신의 손이 더 따듯해질지, 난 알 방법이 없겠지만요. 모쪼록 따듯한 봄을 지내세요. 뜨거운 여름을 보내세요. 선선한 가을을 맞으세요. 그리고 다시 눈이 올 때 그런 눈사람이 있었다고 떠올려요. 눈사람을 떠올릴 적에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할지 나는 알 수가 없겠지만요. 이제 눈이 없는 길거리에 작은 풀이 자라날 거예요. 그 작고 작은 풀을 보고 나를 떠올려요. 역시나 무슨 생각을 할지 나는 모르겠지만요. 모쪼록 그런 한 해를 보내세요. 새해 복 많이 받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