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언니가 죽지 않아서(2024)

고마워 언니가 죽지 않게 해 줘서

by 김민주

미안해 언니가 죽지 않아서 (2024)


잔뜩 취한 채로 친구가 잡아준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타기 전에 편의점에 들렀다. 친구가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고 생떼를 써서 대충 콘 아이스크림을 하나 골라 들었다. 택시 안에서 꾸벅꾸벅 졸면서 손 위로 아이스크림이 녹는 게 느껴졌다.


얼마나 타고 왔는지도 모른 채 기사님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꼬부라진 목소리로 감사합니다아아, 하고 택시에서 내렸다. 익숙한 길거리에 서있었다. 내가 너무나 싫어하는 그 길에 멍청하게 서있었다. 아이스크림은 녹아서 머리가 사라진 후였다. 대충 먹는 척을 하다가 바로 옆에 있던 쓰레기 더미에 던져 버렸다. 길을 건너 직진, 직진, 직진, 장례식장을 지나쳐 조금 더 걸어가면 좁은 골목이 시작되고 거기서 오른쪽으로 그다음에 왼쪽으로 들어가면 우리 집이 있었다. 막다른 골목의 마지막 집이었다. 눈앞이 빙빙 돌았다. 그렇게나 술에 취했는데도 집에 가는 길이 뚜렷하게 보였다. 나는 건너편에 보이는 장례식장을 지나가는 일이 정말 싫었다. 어쩌다 상복을 입은 사람을 마주치기라도 하는 날에는 잠을 이루지 못하곤 했다. 어떤 때에는 가슴이 너무 먹먹해서 울음이 나오기도 했다. 이름도, 얼굴도, 사연도 모르는 사람의 죽음이 서러웠다. 역시 이름도, 얼굴도, 사연도 모를 그이의 남은 가족들을 생각하면 마음 아팠다. 건너편으로 멀리 보이는 장례식장을 빤히 보다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집이야아? 나 좀 데리러 와아아아.' 엉뚱한 투정을 부렸다. 동생과의 통화가 끝나고 나는 그 길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내 등 뒤로 이름도, 얼굴도, 사연도 모를 사람들이 지나쳐 가고 내 앞으로 몇 대의 차가 지나쳐 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멀뚱멀뚱 길바닥을 보고 있었다.


언니!


건너편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냅다 뛰어갔다. 동생 얼굴을 보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어리둥절한 동생이 잔소리를 하는 듯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미안해애. 미안해애. 내가 죽지 않아서 미안해애.


장례식장 앞을 지나가면서 엉엉 우는 나를 동생이 억지로 끌었다. 알겠어, 언니. 일단 진정해 봐. 여기 지금 장례식장 앞이야. 조용히 해. 동생이 팔을 질질 끌고 가고 나는 기듯이 앞으로 나아갔다.


미안해. 내가 죽으려고 해서 미안해애. 언니가아. 언니가아. 미안해애. 내 생일에 죽으려고 그랬어어. 근데 안 죽어서 미안해. 미안해.


제대로 끝맺지도 못하면서 자꾸 말이 튀어나왔다. 집에 끌려들어 와 방바닥에 주저앉아서 한참을 엉엉 울었다. 동생은 말없이 나를 보다가 등을 토닥여줬다.


미안해애. 내가 맘대로 죽어버리려고 해서 미안해애. 너무 힘들어서 죽으려고 했어. 내가 죽으려고 해서 미안해애.


동생이 이름도 알고, 얼굴도 알고, 사연도 아는 어떤 이가 죽으려 해서 미안하다며 엉엉 울었다.



얼마 뒤에 술약속이 있다며 나갔던 동생이 한밤중에 들어왔다. 내가 뒹굴며 울었던 방바닥에 그대로 벌러덩 엎어지더니 말없이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있었다.


얼른 씻어. 뭐 해? 뭐 하고 있어?


내 말에 대꾸도 없이 천장을 가만히 보고 있던 동생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얼마 전의 나와 다르게 소리도 없이, 어떤 몸부림도 없이 가만히 울기만 하던 동생이 입을 열었다.


언니, 죽으려고 했잖아.


술 취한 밤의 가물가물한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동생의 목소리가 덜덜 떨리면서 가슴팍으로 들어와 심장을 찌르는 것 같았다.


나는 언니가 자꾸 어두운 밤에 나를 데리러 오고, 나를 데려다주고, 나를 위해서 뭔가 해주는 게 싫어. 나는 언니한테 그렇게까지 할 마음이 들지 않는데. 언니는 나한테 그렇게 해주잖아. 그게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싫어.


숨을 헐떡이면서 동생이 말했다. 그러지 말라고. 언니가 다 해주려고 하지 말라고. 나는 힘이 풀린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차분하게 동생 옆에 앉았다.


미안하다고 하지 마. 나한테 미안해하지 마.


동생의 말에 고개만 끄덕이면서 울었다. 너무 많은 생각이 오고 가서 별다른 말을 고를 수가 없었다. 울며 밤이 지나갔다. 그저 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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