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물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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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나서기 전에 약을 챙겨 먹고 출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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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콧물 mvp는 단연 나였다. 애기들보다 더 콧물을 많이 흘린 하루였다. 말을 하는 게 버거울 정도로 코가 막히고 콧물이 나서 난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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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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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서 뭔가 하려고 했는데, 저녁 먹고 나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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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욕이나 의지나 뭐, 그런 것들이 다 콧물이랑 같이 흘러 나간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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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이렇게 끄적끄적 짧은 글을 쓰는 것 말고는 글도 잘 안 쓰고 그림도 잘 안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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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중학교 1학년 수학문제집을 사서 풀고 있는데, 그냥 잡생각 없이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게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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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하루 종일 그런 것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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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마음도 쓰지 않고, 아무 기운도 쓰지 않고 할 수 있는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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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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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콧물을 흘리면서 문제를 풀다가 문득 어딘가로 잠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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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고, 무엇을 해도 괜찮은 곳으로 훌쩍 가서 아무도 모르게 조용하고 조용히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콧물을 흘려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곳에서 조용하면서도 생기 넘치는 노래들을 듣고 내 멋대로 그림을 그렸다가 또 멋대로 글을 쓰다가 멋대로 누워있곤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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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지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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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딱히 그렇지도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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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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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콧물을 흘리는 게 좀 지쳤던 거라고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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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약을 주섬주섬 챙기면서 어떤 짧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