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눈, 해 2

그런 날에는, 눈

by 김민주

1.

겨울이 되면서 비는 눈이 되었다. 여름 초입부터 시작되었던 장마가 가을 끝까지 이어지다가 눈으로 바뀌고 만 것이다. 간혹 비가 그쳤다 싶으면 몇 시간 되지 않아 미약하게라도 다시 비가 내리곤 했다. 비는 스며들지언정 흩어질 줄은 모르는지 곳곳에 깊은 물웅덩이를 만들곤 했다. 어찌나 비가 많이 오던지. 중학교 때부터 4년 넘게 타고 다닌 자전거를 베란다에 처박아두고 버스를 두 번이나 환승하고도 10분쯤 걸어 학교에 가야 했다. 우산을 써도 옷자락이 축축하게 젖어 학교에 도착하면 다들 젖은 교복을 벗어 놓고 체육복으로 갈아입곤 했다. 처음 비가 올 무렵에는 옷이 눅눅하게 젖는 게 싫었다. 한 발 한 발을 소심하게 내딛고 그 웅덩이 같은 것이라도 있으면 발끝이라도 닿을까 피하기 바빴다. 그런데 나중에는 그냥 첨벙, 첨벙, 바짓단이 다 젖을 정도로 깊게 웅덩이를 밟으며 다녔다.


웬일로 비가 내리지 않는 아침을 맞았다. 이젠 하늘을 믿을 수 없어 접이식 우산 하나를 가방에 슬쩍 넣고 집을 나섰다. 버스에서 내려 걷는 10분 사이에는 대부분 우리 학교 학생들이 우르르 학교를 향해 걷는 걸 볼 수 있다. 비는 갰지만 남은 웅덩이들이 있었다. 그 웅덩이를 밟는 일도 익숙해져 물이 발에 차이든 말든 멍하니 걷다가 고개를 들어보면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다. 걷기 시작한 지 2-3분 되었을 즘 나는 두리번거리면서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면 어떤 하나가 나처럼 젖든 말든 발을 휙휙 차면서 걸어 나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그 애를 꽤 오랜 시간 동안 지켜봐 왔다. 비가 이렇게 오기 시작하면서. 그 애는 비가 오든 말든 늘 일정한 보폭과 속도로 걸음을 옮겼다. 내가 바짓단을 신경 쓰지 않게 된 것도 저 녀석이 참방거리면서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이 재밌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젖은 양말 같은 게 신경 쓰여서 어기적 걸어가는 나완 다르게 그 녀석은 정말로 아무렇지 않은 듯이 빠르고 세차게 걸었다. 오늘은 비가 오지 않아 그런지 특히나 좀 더 빨리 걸을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손에 든 투명한 장우산을 탁 탁 소리 내어 바닥을 찍으면서, 그 애는 금방 나로부터 멀어지다가 금방 아주 작아졌다가 또 금방 교문 너머로 사라졌다. 그 애가 사라진 길을 따라서, 다급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뒤따라 걸었다. 눈으로는 그 애가 걸어간 자리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오늘은 양말이 젖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속도를 내버리면 혹여나 누가 보기엔 황급히 따라가는 것처럼 보이진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걸음마다 양말에서 찍찍 물이 스며 나와 신발을 적시고 있는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그런 애가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조차 몰랐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다른 애들이 저녁을 먹고도 학교에 남아 공부를 하고 있을 때에 나는 미술 학원을 갔다. 처음 다닐 땐 그리 팍팍하지 않아 학원에는 주 2일 나가는 게 전부였지만, 학교에 남는 날에도 정신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남들이 공부하는 시간에 나는 그림까지 그려야 했기 때문에 내가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에는 최선을 다해야 했다. 맞다. 최선을 다해야 했기 때문에 늘 조급했다. 왜냐하면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내가 하고 있는 정도가 최선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2학년 겨울 방학이 끝나고 3학년이 시작되면서 그 생각은 더 커졌다. 수업에 들어오는 선생님마다 이제 3학년이니, 이제 3학년이니까, 하면서 겁을 주기 일쑤였고 나는 겁쟁이였다. 겁을 주면 주는 대로 겁에 질리는 사람이었다. 학교가 끝나든, 학원이 끝나든, 집에 가면 그 늦은 시간까지 벌건 눈을 뜨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부모님이 있었다. 공부해라, 열심히 해라, 그런 말을 하진 않았지만, 내가 잠들 때까지 수시로 내가 무얼 하는지 확인하고 책상에 앉아있거든 과일이나 간단한 간식 같은 것들을 가져다주시곤 했다. 조금이라도 내가 늦게까지 공부하는 체 앉아 있으면, 엄마도 따라 핏줄이 선 눈을 뜨고 있다가 내가 방 불을 끄면 방문 틈으로 빛이 새어 나오지 않는 걸 보면서 쓰러져 잠이 들었다. 쉬는 시간이면 친구들과 함께 기쁘게 떠들었지만, 그 기쁨 아래에도 늘 어떤 초조함이 깊은 물웅덩이처럼 놓여 있었다. 고요히 모여 있다가도 비가 오면 두들겨 맞고, 누가 밟으면 대책 없이 흔들리는 물웅덩이처럼. 그런데 이번 여름엔 비가 너무 많이 왔다. 거칠게 내리는 비를 맞은 표면이 요동을 치고,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비가 모여 깊어졌다. 늦게까지 미술 학원에 있다가, 열한 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낮에 학교에서 받아온 모의고사 성적표를 꺼낸다.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 보고 있자니 한숨이 나왔다. 누가 겁쟁이 아니랄까 봐, 괜한 겁을 집어삼키게 된 뒤로 성적이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을, 최선을 다하는 체만 하고 있었다. 물웅덩이가 깊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그 물웅덩이가 기어코 넘쳐흐르진 않을까 늘 노심초사했다. 친구들과 함께 학교 건물 아래에서 비를 피하며 서서 수돗가 앞에 크게 모인 물웅덩이를 보고 ‘개미들 수영장 생겼다’ 같은 쓸데없는 말을 할 때에, 나는 옆구리에서 다리 두 짝이 더 돋아나는 것을 상상했다. 내가 개미인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 애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인기척을 느끼고 살짝 피하고 보니 우산도 없이 그 애가 수돗가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웅덩이를 찰박거리고 밟아 건너 반대편 건물로 들어갔다. 그 짧은 사이에 금방 옷이 축축하게 젖는 게 눈에 보였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자리에 앉으니 두 줄 앞 오른쪽에 유난히 혼자만 온몸이 축축하게 젖어 있는 녀석이 하나 보였다. 성적표를 파일철에 꽂아놓고 침대 위에 누워서 낮에 있었던 그 일을 되뇌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쇄골쯤이 울렁울렁 흔들리는 걸 느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자주 그 애를 지켜보게 되었다.


2.

그 애와 같은 곳을 청소하게 된 뒤, 처음 이틀은 살살 인사를 건네보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그 선생님 정말 싫지 않냐, 숙제는 했냐, 같은 말을 하기 시작해서 요즘에는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애는 말이 별로 없었다. 내가 하는 말들에 맞장구를 치거나 짧은 대답을 하는 정도였다. 그래도 나는 쓸데없는 말이라도 자꾸 그 애에게 건네고 있었다. 청소 시간이 끝나고 나면, 다음 수업 준비를 하면서 매번 왜 이렇게 쓸데없는 말을 했나 후회를 하곤 했는데도. 청소 시간 외에는 따로 얘기를 나누는 때가 없었다. 그래서 더 그 시간이 기다려졌고, 그래서 더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 자꾸만 입을 열었다.

청소 도구를 챙겨서 무심하게 툭, 툭 걸어가는 그 애를 뒤쫓아 나갔다. 오늘 점심 어땠어? 난 제육볶음은 좀 맵더라. 너는 매운 거 잘 먹어?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뭐 그런 말들을 했던 것 같다. 그 애는 그저 괜찮았어, 그래? 응, 같은 특별할 것 없는 대답들을 했던 것 같다. 계단을 함께 올라갔다. 계단 위에 그 애 목소리가 한 글자 한 글자 새겨지고 있었다. 계단을 모두 올라가서도, 빗자루질을 피하면서 그 애의 뒤를 쫓아 아무것도 아닌 얘기들을 툭툭 던졌다. 그러면 또 짧게라도 흘려진 그 애 목소리를 한 칸 한 칸 새겨 두었다. 그러다가 내가 아침에 비가 안 와서 좋았는데 비가 또 오네, 싫다, 이제 언제 또 맑으려나, 그런 말을 했고 빗자루질이 잠시 멈칫하는 걸 봤다. 그리곤 그 애가 고개를 들어 나를 빤히 쳐다봤다. 얘가 나를 이렇게 똑바로 본 적이 있었나? 눈이 예쁘네, 하면서 나도 빤히 그 애를 보고 있었다. 그리곤 알기 힘든 의구심이 들면서, 빗물에 식은 여름 공기가 새삼스럽게 차가워 어깨가 시린 게 느껴졌다. 한기를 느끼고는 괜스레 살짝 웃어보면서 손에 쥐고 있던 대걸레 자루를 들어 보였다. 수돗가 갔다 올게,라고 했던가. 대걸레 빨아 올게,라고 했던가. 아무튼 나는 계단을 두 칸씩 뛰어 내려갔다. 한 칸을 밟을 때마다 그 위에 새겨져 있던 그 애 목소리가 통통 뛰어올랐다. 수돗가에 가려고 보니 거친 비가 눈에 들어왔다. 한숨을 한 번 쉬면서 수돗가 앞에 자리 잡은 웅덩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 위를 찰박거리면서 걷는 그 애 모습이 한 번, 젖어드는 그 애의 머리카락과 어깨가 한 번, 옷을 타고 내려온 물방울이 바닥에 툭 떨어지는 것이 한 번,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장면들이 물웅덩이에 빨려 들어가는 것을 상상했다. 빗속을 뛰어 수돗가에 도착했다. 그새 머리카락에 물이 붙어 쳐지는 게 느껴졌다. 꼭지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물에 대걸레를 적시면서, 뒤돌아 다시 물웅덩이를 본다. 그 애가 빨려 들어간 크고 깊은 물웅덩이, 나를 빤히 보던 크고 예쁜 눈. 대걸레를 발로 꾹꾹 눌러 짠다. 그런데 나는 왜 그 눈을 보고 겁에 질렸을까. 내가 겁쟁이라 그런 것뿐일까. 뒤돌아 다시 건물로 뛰기 전에 창문을 훑어보다가 2층 계단창 너머로 그 애가 멍하니 서 있는 게 보였다. 그걸 또 멍하게 보고 있다가 문득 얼굴이 뜨끈해지는 게 느껴져서 빗속으로 뛰어들었다.


계단 위에는 비를 밟고 지나가 생긴 누군가의 젖은 발자국들이 새겨져 있었고, 나는 그것들이 걸레 물자국에 가려지는 걸 보는 것에 빠져서 정신없이 바닥을 닦고 있었다. 불현듯 들린 비명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아직 닦아내지 못한 젖은 발자국들 위로 그 애가 쓰러져 있었다. 계단을 뛰어 내려가 봤지만, 겁이 나서 발만 구르고 있었다. 누군가 선생님을 모셔 온다며 뛰어 들어가고, 나는 쭈그려 앉아 그 애를 살폈다. 괜찮아? 괜찮아? 나는 할 수 있는 말이 그것밖에 없어서 덜덜 떨고 있었고, 그 애는 그나마 하던 짧은 대답도 없이 흐리멍덩하게 내 발아래를 보고 있었다. 계단을 따라서 빗소리가 왕왕 울리고 있었고, 그 어디에도 그 애의 목소리는 남아 있지 않았다.


3.

그 애가 다리를 다친 후로 등굣길에서 그 애를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다친 다리로 계단 청소는 힘들다고 생각되어 나을 때까지 청소도 배제되었다. 나는 새로 계단 청소로 배정된 녀석과 함께 계단을 쓸고 닦으면서 내내 그 애가 쓰러져 있던 모습과 그날 그 애의 눈동자가 생각나서 청소를 하는 게 힘들었다. 그 후에 몇 번인가 복도에서 마주칠 때나, 슬쩍 그 애의 옆을 지나치면서 다리는 괜찮아? 하고 묻곤 했지만, 고개만 끄덕인 탓에 목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 가을이 부쩍 익으며 수돗가의 물웅덩이에는 낙엽이 잔뜩 빠져서 허우적거렸고, 나는 개미 수영장이 아니라 낙엽 수영장이었네, 같은 시답잖은 농담을 하곤 했다. 그리고 가을이 익고 익을 즈음 수능을 치렀고, 다른 아이들이 조금은 홀가분해졌을 무렵 나는 미술 학원에 살다시피 하는 탓에 더 이상 그 애를 보는 일이 없게 되었다.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 위로 아이들이 서걱서걱 연필칠을 하는 소리가 올라탄다. 그리고 가을이 더 익다 익다 겨울이 되니 비가 눈이 되었고, 눈을 맞으며 시험을 치러 다녔다. 덜그럭거리는 화구 박스를 맨 손으로 들고 도착해서는 차가운 손을 먼저 핫팩에 녹였다. 마지막 시험을 마무리하고 짐을 챙겨 밖에 나오니 아침에 흠뻑 내리던 눈이 어느새 그쳐 있었다. 미끄덩하게 얼어붙은 웅덩이를 이제는 밟을 수 없게 되었다. 눈에 가려진 웅덩이를 밟기라도 할세라 바닥만 보면서 어기적 걸었다. 그러면서 문득 그 애를 생각했다. 그 애는 이것도 그냥 밟고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아직 목발을 짚고 다니고 있으면 그냥 밟고 다니긴 힘들겠다. 눈이 왔을 때는 어떻게 다녔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다가 눈이 오고 나서 그 애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갑게 식은 화구 박스 손잡이를 양손으로 자꾸 바꿔 들면서, 잘못 밟은 웅덩이에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겁먹은 채 바닥만 보고 걸었다. 더 시간이 지나서, 다행히 시험을 봤던 3군데의 학교 중에 하나가 합격해서 들끓던 마음이 조금 잠잠해졌다. 물웅덩이도 얼어붙어 그런지 넘칠 일은 없겠네 싶었다. 다만 간간히 그 애를 생각할 때만큼은 얄팍하게 언 수면 아래가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미처 보지 못하고 밟았다간 파삭 깨져버려서, 신발이 모두 젖어버릴 것 같았다.


4.

비가 그쳤다. 눈도 오지 않는다. 흐리고 흐렸던 하늘이 모처럼 맑게 갰다.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왔다. 나는 자전거를 한쪽으로 끌면서 운동장 귀퉁이에 쌓인 눈을 따라 걸어 학교 밖으로 나왔다. 졸업식 내내 그 애를 눈으로 따라다녔지만, 그뿐이었다. 어느 순간 그 애를 놓쳤고, 졸업식이 끝날 때까지 그 애를 보지 못했다. 다행히 진작에 다리는 나은 모양이었다. 졸업식을 마치고 한참 두리번거리면서 그 애를 찾아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아마도 이젠 웅덩이를 그냥 밟아버리면서 걷긴 힘들 것 같다. 얇게 얼어붙은 웅덩이 하나를 훌쩍 넘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교문 밖에 나오고 나서야 자전거에 올라탔다. 페달을 밟으니 내 마음보다 더 빨리 자전거가 앞으로 나아갔다. 빠르게 달려 나가는 자전거의 앞에 그 애가 있을지, 속수무책으로 한참 뒤에 두고 달려 나가고 있는 것일지, 도통 알 수가 없어서 겁이 났다. 바짝 마른 옷자락이 겨울바람을 맞아 차갑게 얼어붙는다. 그 사실에 왜 깊은 물웅덩이 하나가 흔들렸을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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