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눈, 해 3

이제 그런 날에도, 해

by 김민주

1.

졸업식 일정이 모두 끝나고, 우리 반 아이들이 사진을 찍자며 내 앞으로 우글우글 모여들었다. 멀찍이서 나를 보고 있는 그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 녀석은 고개를 한 번 까딱 하더니 뒤돌아 강당 밖으로 나갔다. 그 후로 꽃다발을 하나씩 든 아이들과 사진을 찍고, 아이들과 학부모님께 인사를 하며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강당 안에도 차츰 사람이 줄어드는 게 눈에 보였다. 강당에 남아 있던 마지막 아이와 마지막 사진을 찍고 강당 밖으로 나왔다. 오랜만에 보는 파란 하늘이었다. 우중충한 하늘을 보며 반년을 보낸 아이들이 무사히 파란 하늘을 보며 학교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뭐 얼마나 의미가 있겠냐만은, 이 파란 하늘을 보면서 누군가는 조금이라도 나와 함께 한 학교 생활을 편안히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 사항인 것이다. 특히 그 녀석, 비가 눈으로 바뀔 무렵까지 절뚝거리고 다녔던 그 녀석은 특히나.


나는 비가 오는 게 좋았다. 축축하고 눅눅한 공기, 투닥투닥 빗방울이 뭔가를 두드리는 소리, 흐릿한 하늘, 한 데 모였다가 흘러가는 물줄기, 젖어서 색이 짙어진 길바닥, 비가 와서 보거나 듣는 그런 것들. 비가 좋아서 그런 것이 좋아진 건지, 반대로 그런 것들이 좋아서 비가 좋은 건지는 모르겠다. 우산을 쓰면 손잡이로 전해지는 비의 두드림도 좋았다. 우산 끝으로 떨어지는 물방울들도 좋고, 우산을 접어 세워 놓으면 바닥에 모이는 물을 보는 것도 좋다. 이제 아무 때고 물에 첨벙 빠져들 수 없게 된 내가 유일하게 흠뻑 젖어도 핑곗거리가 되어 줄 수 있는 게 비다. 그런 걸 보면, 물을 좋아했던 어린 시절의 내가 그 아래에서 헤엄을 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주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서 수영장에 다녔다. 뿌옇게 남은 기억들 훨씬 이전부터, 나는 헤엄을 치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것에서는 이미 어떻게 수영을 배운 건지 기억도 안 날 만큼 익숙하고 태연하게 물속에서 팔을 휘두르고 발을 구르는 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과장을 보태서 생활의 절반을 물속에서 보냈다. 정해진 수순인 양 수영 특기생으로 학교를 다녔고, 성적도 줄곧 잘 나와서 꽤 주목받을 수 있었다. 장래에 대한 고민도, 걱정도 없었다. 이대로라면 나는 내가 꿈꾸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물속에서. 홀연히 사라졌던 아버지가 인적 드문 한 부둣가에 떠올랐다. 수사는 사건인지 사고인지 명확하게 밝혀진 것 없이 지지부진하게 흘러갔다. 그러다 부둣가에서 꽤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아버지 차와, 그 차에서 나온 짧은 쪽지 한 장으로 자살로 종결되었다. 아버지가 사라지기 전까지, 아버지가 사라지고 나서도, 가족 중 그 어는 누구도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경찰들을 졸졸 쫓아다니면서 자살일 리가 없다고 매달렸고, 나는 그걸 그냥 지켜만 보고 있었다.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아버지는 죽었고, 내게는 그것을 막아내거나 혹은 그것에 대한 진상을 파헤칠 만한 능력이 없었다. 장례식을 치르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을 때, 다시 물 앞에 섰을 때, 나는 이제 그것에 뛰어들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것보다 무서웠다. 물을 보고 있으면 아버지 얼굴이 떠올랐고, 그다음엔 물에 잠겨 죽어가는 내가 떠올랐다. 물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이 점점 많아지고, 또 많아지다가, 결국엔 규모가 큰 대회에 나갔다가 출발 신호와 함께 기절하는 일이 벌어졌고 그 후로 수영을 관뒀다. 길고 지루한 과정을 거쳐서 체육 교사가 되었고 그 후론 단 한 번도 내 발로, 내 의지로 물에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종종 비를 맞을 때만큼은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끼곤 했다. 이 비가 수영장만큼 가득 차서 나를 잠기게 할 일은 없을 것이므로, 안심하고 몸을 적실 수 있었고 비가 몸에 휘감기는 느낌과 함께 물속에서 내 양손을 잡고 나를 향해 웃던 아버지 얼굴을 편안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올여름에 비가 그렇게 올 적에 더없이 편안하고 즐거운 기분을 누리고 있었다. 그 애를 보기 전까지.


2.

비가 많이 와봤자, 발등이 겨우 잠길 정도의 웅덩이들이 생길 뿐이었다. 내리는 비에 내가 녹아내리거나, 잠기거나, 죽어버릴 일은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교무실에 앉아 창 밖으로 비가 쏟아지는 것을 잠시 넋 놓고 보고 있었다. 퇴근까지 못해도 반나절은 있어야 했지만 벌써부터 퇴근길을 기대하고 있었다. 발에 물이 차박차박 밟히는 길을 걷는 게 참 좋다. 운전을 할 때에 차창 앞으로 비가 두드리는 것을 보는 것도, 와이퍼를 따라서 미끄러져 내려오는 물길을 보는 것도 좋다. 집에 들어가 눅눅해진 옷을 벗어 놓고 비가 새어 들어오지 못하는 집안에서 빗소리를 듣는 것도 좋다. 쉬는 시간마다 나는 몇 번씩 복도 창문틀을 짚고 서서 창밖을 보곤 했다. 간혹 비를 원래 좋아했다던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이렇게 주구장창 내리는 것을 보니 비에 질려버렸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우중충하기만 한 것도 싫고, 비에 옷이나 가방이 젖는 것도, 우산을 드는 것도 싫다는 것이다. 우리 반 아이들도 다들 우중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비 때문에 체육 수업도 매번 강당에서만 하니 답답하다는 얘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비 맞으면서 축구라도 하자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그럴수록 아이들 얼굴은 더 찌푸려지기만 했다. 어차피 3학년 학생들은 실기 수업보다 자습 시간이 더 많았기 때문에, 비 탓만이 아니란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괜한 얘기를 했다가 아이들이 짜증 부리는 것을 들어줄 생각은 없어서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끝나고 다음 수업을 들어갈 시간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자습이었기 때문에, 나도 노트북과 업무 볼 서류들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 오는 창밖을 보면서 몇 개의 교실을 지나쳐 계단을 오른다. 잠깐 동안 계단 사이의 창문에 또 시선을 빼앗겼다. 다시 발걸음을 옮겨 교실에 도착했다. 칠판에 괜히 ‘자-습’이라고 크게 적어놓고, 딴짓하지 말아라, 한 마디 하고는 교탁 앞에 앉는다.

교실 앞에 종잇장 같은 게 부시럭대는 소리와 빗소리만 빙빙 맴돌고 있었다. 나는 그 소리에 빠져서, 마치 물에 들어가는 순간 자연스럽게 팔과 다리를 휘두르던 것처럼 홀린 듯이 업무 정리를 하고 있었다. 목과 어깨가 찌뿌둥하다 싶어 고개를 들고 어깨를 주무르면서 아이들을 휘휘 둘러봤다. 딴짓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이는 녀석이 있으면 한 번 딴죽을 걸 요량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교실 문 앞에 앉아있는 그 녀석을 보았다. 체육복으로 갈아입거나 오전 중에 마른 교복을 대충 걸쳐 입은, 그나마 보송해 보이는 아이들 사이에 그 녀석만 축축이 젖은 교복을 입고 있었다. 의자 아래에 옷에서 떨어진 건지 물이 고여 있었다. 체육복이라도 갈아입지 싶어서 툭 말을 건넬 뻔하다가 왜인지 모르게 소리가 나오려는 것을 꾸욱 목구멍 아래로 눌러 내렸다. 그러면서 물끄러미 보고 있으니 젖은 교복보다 다른 게 눈에 들어왔다. 벌겋게 부은 눈 같은 것. 그리고 이게 보인 거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 녀석 주변을 맴도는 묘한 기운 같은 게 눈에 들어온 것이다. 아주 파란색이거나 아주 하얀색, 아주 흐릿하거나 아주 강렬한 것이었다.


3.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날에 계단 밑으로 뛰어내린 그 녀석이 얼마 지나지 않아 자퇴서를 제출했다. 이런 자퇴서가 정말 먹힐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학교 그만둘래요’라고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휘갈겨 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장난치는 거냐, 불러서 화를 낼 만한 듣도 보도 못한 자퇴서였다. 그런데 나는 그걸 보고 덥석 아버지 얼굴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겼다는 그 쪽지의 필체와 엇비슷해 보여서 그랬을까. 둘 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써놨을지 의도를 알 수 없는 것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둘 다인가 생각하다가, 얼마 전 혼자만 넉넉히 젖은 채 멍하니 앉아있던 그 녀석을 보았던 게 생각났다. 다 젖은 머리카락이 내려와 얼굴을 가리든 말든 멍한 표정, 그리고 그 머리카락 틈으로 보이던 파랗고 하얀 것이 눈앞에서 둥둥 떠다니다가 소용돌이치며 수영장을 만든다. 나는 출발점 앞에 서서 몸을 비틀며 풀다가 올라선다. 그리고 신호를 기다린다. 상체를 수그리니 앞에 온통 파란색과 하얀색이 가득하다. 내가 이 물에 들어갈 수 있을까,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거리는 것이 느껴지니 더 겁이 났다. 그리고 그때, 파랑과 하양이 눈앞의 한 점을 중심으로 빙빙 돌며 회오리를 만들고 그 중심에서부터 아버지의 부연 얼굴이 수면 위로 천천히 떠올랐다. 느리게 다가오는 아버지의 얼굴과 다르게 내 심장은 점점 더 빠르게 뛰고 있었다. 마치 물속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맹한 삐익 소리가 들리면서 심장이 터지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터졌다. 나도 죽는 것이다. 다시 눈을 뜨니 상담실 탁자 앞에 앉아 있었고, 몇 초 지나지 않아 상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숨을 고르고, 들어오라고 하자 그 녀석이 목발을 툭툭 짚으면서 안으로 들어왔다. 목발을 세워 놓고 앉은 뒤에 나를 보는 녀석의 눈동자가 덜덜 떨리는 걸 가만히 보고 있었다. 대책 없이 불러다 앉혀놨지만, 그 눈동자를 보니 내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느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전히 없었다. 고작 ‘다리가 나은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 같은 임기응변 따위가 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여지없이 비가 내리는 아침에는 여지없이 그 녀석이 흘린 수영장을 떠올리며 출근을 했고, 조례 시간마다 먼저 그 녀석을 확인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여전히 목발을 책상 옆에 세워둔 것을 볼 때마다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어야 했다. 다리가 나았다고 냉큼 찾아와서 자퇴하겠다고 해버릴까 봐 걱정한 것과 다르게, 다리가 다 나아서 깁스를 풀고도 주욱 나를 다시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그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학교를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꿈을 꾼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볼 정도였다. 수사가 종료되면서 아버지의 쪽지를 받았을 때, 나는 알기 힘든 분노를 느꼈다. 어쩌라는 거지, 이런 짧고 짧은 말 한마디 남겨 놓으면 끝인 걸까. 그리고 그 분노는 내내 남아서 나를 못 살게 굴었다. 슬퍼해야지, 왜 화가 난 거야. 눈물을 흘려야지, 왜 열을 내고 있는 거야.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나였다. 어쩌면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어려서, 능력이 없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다. 아버지에게 화가 난 것이다. 분풀이를 한 것이다. 어쩌라고, 나더러 어쩌라고, 그런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지녔다는 것이 내가 나를 미워할 충분한 이유가 되어주었다. 결국 수영도 관두게 되면서 그런 마음은 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한심한 녀석, 이도 저도 아니고 결국에 제 것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 나약한 녀석. 수영장에는 그런 게 담겨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과, 죽지 못하는 나의 죽음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이제와 저 녀석이 다시 만든 수영장과, 그 안에 있을 녀석의 죽음을 상상하면서 그걸 깨달았다. 그리고 저 녀석을 보면서 나는 자꾸 아버지의 생전 모습을 떠올렸다. 어느샌가 쓸쓸히 웃게 되었던 아버지의 얼굴을 이제야 떠올리게 된 것이다.


비는 자꾸 내리고, 나는 빗줄기 소리에 못 이겨 엉엉 울면서 장마를 이겨냈다. 나는 비가 내리면 두려운 마음부터 들었다. 빗소리 너머로 삑, 호루라기 소리가 귀에 맴돈다. 어느 날 비가 얼어 눈이 되었을 즘에도 내내, 그 눈이 수영장에 가득 쌓여 있다가 녹아서 물이 되고, 그 안에서 눈이 온다고 신나서 뛰어놀던 아이들을 한순간에 휩쓸어 가는 상상을 했다.


4.

다행히 단 한 명도 그 비 혹은 눈에 휩쓸리지 않아 무사히 모든 아이들이 강당 밖으로 빠져나갔고, 파란 하늘을 보면서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교무실로 돌아왔다. 교무실에 들어오니 빈 수영장에 쌓인 눈이 사르륵 녹아내리고 있는 풍경이 보였다. 그 누구도 없는 빈 수영장이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교무실 문 앞에 주저앉아 울었다. 창 밖으로는 파란 하늘, 이따금 쌓여 있는 하얀 눈, 다시 눈을 돌리면 아주 흐릿한 구름 사이로 아주 강렬한 빛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비가 그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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