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합리화
__
의자가 고장 났다. 사실은 고장난지 꽤 됐다.
__
처음엔 등받이 나사가 날아가서 등받이가 떨어지는 걸로 시작했다. 내가 쓰는 의자는 등이 두 갈래로 나뉘어 있는 의자인데, 왼쪽 등받이가 자꾸 툭툭 떨어졌다. 나는 그걸 주워서 대충 끼우고, 떨어지면 또 끼우면서 썼다. 어느 날 이걸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공구통을 뒤진 결과, 구멍 크기는 맞지만 길이가 맞지 않는 나사를 찾아서 대충 끼워놨다. 뒷모습을 보면 여전히 나사가 툭 튀어나와 있지만 앉아 있기에 불편함은 없으니 해결했다고 생각했다.
__
그다음은 엉덩이의 수평이 안 맞기 시작했다. 오른쪽으로 몸을 기울이면 의자의 몸체가 오른쪽으로 기울고, 왼쪽으로 몸을 기울이면 왼쪽으로 기울었다. 해결할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해결 방법을 찾을 수가 없어서 적당히 몸으로 수평을 맞추면서 앉기 시작했다.
__
그리고 최근에 높이 조절하는 부분이 망가져 버렸다. 왜인지 정말 도무지 모르겠는데 어느 날 앉아있다가 툭 소리와 함께 의자가 주저앉더니 그 후로 내가 일어나면 의자도 따라서 일어나고, 내가 앉으면 의자도 따라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자동 높이 조절이랄까. 어떻게 해보려고 했지만, 손잡이가 아래로 고정된 상태로 꿈쩍도 하지 않는다. 뭔가 잘못되긴 잘못된 거 같다.
__
고장 난 김에 편한 의자로 바꾸면 좋으려나 싶으면서도 귀찮아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__
어쨌든 의자니까, 됐지 않나?
__
앉아있을 수 있으니까.
__
합당한 이유인지, 어리석은 합리화인지 모르겠다. 알 게 뭐람. 어차피 귀찮아서 바꾸진 못할 것이다.
__
요즘 들어 귀찮음이 극에 치달았다.
__
설연휴 동안 방을 대청소하려고 1월 초부터 벼르고 있었는데, 설연휴가 다 지나갔다. 이 역시 귀찮음이 다했다. 난 모른다. 아무튼 귀찮음이 다했음.
__
이러다가 연휴가 끝날 것이고, 이러다가 갑자기 한밤중에 방을 들쑤시면서 청소를 해댈지도 모른다.
__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닌데 왜 이렇게 시작하는 게 귀찮은 걸까.
__
아니다. 어려운 일이다. 나한테는.
__
엉덩이가 의자에 붙어버려서 핑곗거리 삼을 수 있으면 좋겠다.
__
어머, 어떡해. 엉덩이가 붙어버려서 그만.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했어요.
__
저런, 그것 참 안타깝네요. 엉덩이가 붙었다면 아무것도 못 할 수 있죠.
__
의자는 나한테 고마워해야 한다. 나의 귀찮음 덕분에 명을 유지하고 있다. 요즘같이 추운 겨울에 집밖으로 쫓겨나지 않았으니 얼마나 고마울까.
__
고마워하는 마음이 어여뻐서라도 더 데리고 있어야겠다.
__
절대 귀찮아서는 아니고요. 버리려고 마음먹었던 참인데, 저런. 의자가 안쓰럽잖아요.
__
어떤 짧은 글의 어리석은 합리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