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라미 찢기> 7
"언니는 아주 큰 스펀지 같아. 정말 커. 아마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태어난 것 같아."
동생이 내게 그런 말을 했을 때,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뜨며 동생을 바라봤다. 그리곤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기 바빴다.
"그래 보여. 근데, 정말 크다? 엄청 큰데, 언니는 누르면 누르는 대로 작아져."
이어 그렇게 말했을 땐 섬찟 놀라기까지 했는데, 금세 표정을 고쳐먹고 그저 허허 웃기만 했다. 정말 그런 것 같아,라는 말만 겨우 덧붙일 수 있었다.
아주 큰 스펀지라. 이를테면, 해면 스펀지 같은 게 적절할까. 마르면 단단하게 제 크기를 유지하고 있다가, 물에 적셔 꾸욱 누르면 누르는 대로 작아지는 것. 그중 손바닥만 한 것을 골라 물에 불려본다. 바짝 말라있던 것이 물을 머금으면서 부들부들하고 말랑하게 부푼다. 속까지 전부 젖어들었을 때에 손안에 꽈악 쥐어본다. 잔뜩 물고 있던 물을 토해내면서 움켜쥔 손 안으로 파고든다. 작아지고, 작아진다. 손에 힘을 주는 동안, 그 내내, 물을 뚝뚝 흘리면서 움츠러든다. 움츠린 채 손바닥 안에 가만 자리를 잡고 있다. 제 크기를 지키려는 일말의 의지도 없이, 돌아가려는 조금의 여지도 없이 손바닥 안에 가만, 가만히. 그리고 다시 손을 펴본다. 의지도, 여지도 없었으면서 아주 빠르게 제 크기로 돌아간다. 적당히 물기를 머금은 것이 촉촉하고 매끄럽다. 그래, 그런 것이 적절하겠다, '나'는.
엄마와 함께 있으면 난 자꾸 작아졌다. 눈을 퍼내고 있는 엄마를 보고 있으면 꼭 그랬다. 비는 비일 뿐이라고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면, 나와 똑같이 손톱 위에 컴퍼스를 톡 하고 올려보는 엄마를 떠올리면, 4.17kg의 아이를 낳고 정신이 나가있는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면 꼭 그랬다. 내가 동그라미를 찢겠다면서, 이 동그라미가 엄마에게서 물려받았고 나는 그것을 찢어봐야만 하겠단 말을 할 때엔 더더욱 그랬다. 엄마의 비일 뿐인 '비'가 나를 있는 한 적신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아니라 내가 나를 누른다. 꾸욱. 꾹. 꾹. 손아귀에 있는 힘껏 힘을 줘 나를 짜낸다. 뚜욱, 뚝 떨어지는 빗물을 무심하게 바라본다. 엄마의 비는 그렇게 나를 벗어나 땅으로 스미고, 강으로 흐르고, 구름이 되고, 다시 엄마의 비가 된다. 나는 그 일련의 과정 속에 내가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그 광경을 지켜본다. 그리곤 엄마의 곁에서 반 발자국 물러나 꽉 쥐고 있던 손의 힘을 서서히 풀어낸다. 느슨하게, 천천히, 희미하게, 내가 다시 얄궂게 팽팽해지는 그것이 어떤 공기의 파동도 일지 않을 수 있도록 옅게. 그리고 그 동그란 실체가 다시 드러났을 때, 나는 장갑을 끼지 않은 손을 꺼내 어설픈 눈사람을 만든다.
언젠가 하루를 보내는 일이 얼마나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일인지에 대해 쓴 적이 있다. 아마도, 3화쯤이었던 것 같다. 어느 날에는 그 하루를 산다는 것, 내가 이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괴로운 마음이 들어 밤낮없이 술을 마셨고, 술을 마시기만 하면 울었다. 그렇게 울 때에는 어찌나 크고 우렁차게 울었던지, 위층에 살던 집주인이 찾아와 "학생, 괜찮아요? 부모님께 연락 좀 드려볼까요?"라고 묻길 여러 번이었고 나는 그때마다 눈물을 뚝 그치고 멀쩡하다는 듯 목소리를 가다듬고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그러면 집주인은 매번 집 앞을 몇 발자국 서성이는 듯하다 곧 위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동그란 하루. 언젠가 그렸던 시간계획표처럼 악몽에 시달리며 잠을 설치고, 꾸역꾸역 일어나 보내는 시간, 그 사이에 나를 다독일 시간은 넣을 줄 모르는 나와, 지난밤 악몽의 잔재에 잠드는 것이 두려워 눈을 감지 못하는 새벽. 나는 배운 대로 손톱 위에서 컴퍼스를 톡톡 두드리면서 애써 시간표를 만들고, 변한 게 없는 동그란 하루를 애써 살아야 했다. 며칠인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살다가 문득 엄마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버렸다. 아아, 그냥, 그냥 다른 것 말고 집에서 편하게 밥 한 끼 먹으면 좋겠다. 단지 그것만 해도 하룻밤은 잘 잘 것만 같았다.
딸내미는 예고 없이 전화를 대뜸 해와서, "엄마, 나 집에 가려고. 지금 버스 탔어."라고 말한다. 엄마는 잠시 놀랐지만, 평소 연락도 잘 되지 않고 집에도 잘 찾아오지 않던 녀석이 온다니 반가운 마음이 일었다. 웬일이래. 그래, 그뿐이었다. 웬일이지, 얘가. 나를 데리러 나온 아빠의 차에 타니 조수석엔 엄마가 앉아있었다. 집에 가서 밥 먹자. 민주 오랜만에 왔으니까, 그이 불러서 같이 저녁 먹을까? 여기까지 온 김에. 근처 사니까 같이 저녁 먹자. 아빠와 엄마는 아빠의 오랜 친구 한 분을 떠올린다. 나는 자그맣지만 확실하게 싫어어,라고 말한다. 그사이 통화연결음이 울린다. 아저씨가 전화를 받는다. 어, 민주가 오랜만에 왔는데, 근처에서 밥 먹으려고. 오랜만에 같이 저녁 먹는 거 어때? 나는 가만히 듣고 있다. 아저씨는 흔쾌히 수락하고, 곧 나오겠다는 말을 하며 통화를 마친다. 통화가 종료된 걸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울면서 소리친다. 싫다고. 싫어어, 그냥 셋이 먹자. 얘가 왜 이래? 오랜만에 아저씨한테 인사도 드리고 그럼 좋잖아. 아니, 싫다고. 싫다니까. 싫어어. 엉엉. 식당에 도착하기 전까지 내내 혼이 났다. 입을 꽉 다물고 차에서 내린다. 아저씨를 보자마자 주저앉아서 운다. 엉엉. 엉엉. 영문을 모르는 아저씨는 얼어붙고, 엄마는 횡설수설하며 아빠와 아저씨를 식당에 밀어 넣는다. 오늘 몸이 좀 안 좋은가 봐요. 민주는 집에 가서 밥 먹일 테니까 둘이 먹고 와. 엉엉. 엉엉. 울고 있는 나를 질질 끌고 택시를 탄다. 엉엉. 엉엉. 울고 있는 나를 앉혀놓고 치킨을 시킨다. 다시 입을 꽉 다물고 치킨을 뜯어먹는다. 뜯어서 먹는다. 뜯어서 씹어서 삼킨다. 다 먹을 즈음 엄마가 묻는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나는 고개를 저었지만 다시 울기 시작한다. 말을 해야 알지.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없어어. 엉엉. 엉엉. 근데 왜 그래, 말을 해야 알아.
그냐앙. 그냥 사는 게 힘들어어. 그냥 사는 게 너무 힘들어. 못 살겠어. 죽고 싶어. 그냥 마음을 다 갈기갈기 찢어서 뜯어서 씹어서 삼키고, '이제 마음이 없어 못 살겠어요' 하면서 죽어버리고 싶어. 아니면 벌써 그냥 죽어버렸나 싶어. 매일 밤 술을 마시고, 매일 밤 울어. 주인아저씨가 계속 찾아와, 엄마 불러준다고. 그러면 나는 계속 괜찮다고, 괜찮다고. 그래서 이제 소리 내서 울지도 못해. 아저씨가 찾아와서 엄마 불러줄까 봐. 그래서 그냥 꾹꾹 참는단 말이야. 그냥 꾹꾹. 그냥. 울고 싶어도, 못 살겠어도, 죽고 싶어도, 그냥 다 참고. 나 그렇게 애쓰면서 사는데 맨날 죽고 싶어. 엄마아. 다 뜯고 씹어 삼키고 싶어. 너무 힘들어. 그냐앙. 그냥 사는 게 힘들어어.
엉엉. 엉엉 우느라고 엄마에게는 "그냐앙. 그냥 사는 게 힘들어어."까지밖에 말하지 못했다. 엄마는 멀뚱히 나를 보다가 말한다.
"원래 사는 게 힘들어."
눈물이 쏙 들어갔다. 입을 다시 꽉 깨물었다.
아. 원래? 원래 그런 거야, 그냥?
비는 비.
구름은 구름.
해는 해.
바람은 바람.
그리고 오늘 이 글을 쓰면서, 혼자 앉아 소리 내 말해보았다.
"엄마. 그러니까 눈 좀 그만 퍼내."
물론, 듣는 이도 나뿐이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