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어설픈

<동그라미 찢기> 6

by 김민주

눈이 내린 길 위로 사람들의 발자국, 자동차의 바퀴자국이 쌓이면서 눈은 꼬옥 꼭 밟힌다. 단단하게 뭉쳐진 눈길 위를 어정어정 걷는다. 혹여 넘어질까, 발바닥이 자꾸만 미끄러지는 탓에 어깨도 따라 움츠러들었다. 제각각 다른 길을 따라와 나의 옆을 스쳐 또 다른 길로 흩어지는 사람들을 본다. 나는 그 사이에서 보란 듯이 벌겋게 식어빠진 맨발로, 한껏 어깨를 움츠린 채 같은 자리를 돌고 있다. 누군가는 나의 행색에 흠칫 놀라며 슬쩍 옆을 피해 가기도, 누군가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제 갈길을 따라가고, 누군가는 한참 서서 나를 지켜본다. 그리고 나는 마치 이것이 세상에 꼭 있어야 하는 행태인 것처럼, 몹시 자연스러운 일이 일어나고 있는 양, 그래서 언 발바닥이나 움츠린 어깨의 통증 같은 것은 아주 괜찮다는 듯이,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먼 길을 돌아온 엄마가 내 앞에 섰다. 엄마를 보자마자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는 울고, 엄마는 내게 매달리지 않는다. 나는 울고, 엄마는 눈을 치운다. 나는 울며 엄마에게 눈을 치우지 말라고 하고, 엄마는 화를 내며 기어코 눈을 치운다. 결국 나는 울부짖으면서 엄마에게 매달려 제발 눈을 치우지 말아 달라고 사정하기 시작했고, 엄마는 그제야 눈물을 흘리면서 눈을 치우기 위해 나를 밀쳐냈다. 나는 그새 눈물이 말라 멀거니 주저앉아, 엄마를 바라본다. 엄마는 엉엉 울면서 눈을 퍼낸다. 엄마의 손이 금세 빨갛게 식어간다. 엄마,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가 하지 말라고 했잖아. 나는 어쩔 수 없이 꽁꽁 언 발을 내리찍어 깨부수기 시작한다. 엄마, 제발, 내 발 좀 봐, 더 하면 정말 다 부술 거야. 그러나 엄마는.


더 어린 때에는, 나야 신기하고 재밌는 일이 많아 나 혼자선 세상에 반짝이는 것들 뿐이었다. 내리는 눈은 언제나 볕 받아 반짝이고, 쌓인 눈으로 눈사람을 만들 수 있어 마냥 좋았다. 결국 녹아내릴 눈사람이라도 따듯한 온기를 받아 녹는 것뿐이니 좋은 일이었고, 그 좋은 일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 해도 즐거웠다. 어떤 모양으로 녹을까, 녹은 눈사람은 어디로 갈까, 사라진 후에도 나의 손길을 기억하려나, 그런 상상을 하는 것만 해도 과분한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그 어린 때의 나는 곧잘 넘어지는 녀석이었다. 멀쩡한 길 위에서도 휘청거리며 넘어지기 일쑤였고, 어딘가 부딪혀 생긴 멍, 긁혀 난 상처가 많았다. 그렇게 집에 돌아가면 엄마는 또 다쳐왔느냐며 혀를 끌끌 찼다.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느냐고. 나는 조심성 없는 아이, 그래서 내가 나갈 때에 엄마는 걱정이 앞섰다. 이 녀석이 또 어디서 어떻게 다쳐서 돌아올까, 학교에서는 잘 있는 걸까. 엄마는 옆에 붙어서 내게 무언갈 해줄 수 없는 때의 나는 어떻게 하루를 보내고 있을지. 엄마는 불안했다. 눈이 오면 내가 넘어질까 봐서 기어코 눈을 퍼내야 하는 사람이므로. 그러나 나는.


엄마가 눈을 퍼낸 길 위에서 나는 자꾸 휘청휘청 걸었다. 엄마가 시린 손을 부여잡아가며 나를 위해 퍼낸 눈이 길 모퉁이에 쌓여있는 것을 보면, 그걸로 거대한 눈사람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도 고작 그런 것으로 만들어서야 되겠느냔 생각이 따라왔다. 눈사람은 곧 사라질 테니까, 엄마가 쌓아놓은 두툼한 눈산이 겨우 눈사람이 되어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난 눈사람이 만들고 싶어 힐끔힐끔 눈산을 보며 걷고, 그런 탓에 다리가 휘청이게 된다. 그러다 또 쿵, 하고 넘어지는 날엔 어김없이 엄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힘들고 고된 날 사이에도 내가 갈 길을 찾아 고르게 닦아놓은 길과, 그런 데에서도 넘어지는 나. 나는 자꾸 그 모든 것들이 그렇게만 보였으므로.

엄마의 삶은 고됐다. 엄마의 말마따나 아버지는 낭만이 없는 사람이었고, 첫째는 허구한 날 넘어지고, 둘째는 까탈스러웠고, 막내는 아팠다. 나는 그 사이에 있는 엄마가 늘 힘들어 보였다.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엄마의 한탄을 들었다. 삼 남매는 부지런히 크고 있었고, 엄마의 하루는 눈사람을 만드는 등의 즐거움도 없이 눈을 치우기 바빴다. 나 역시 바삐 크는 가운데, 엄마가 하루 끝에 맥주 없인 잠을 자지 못하는 것, 늦은 밤까지 걱정거리를 끌어안고 깨어있는 것, 아침이면 어김없이 삼 남매와 전쟁을 치르고, 엄마의 꿈과는 전혀 상관없는 직장에 부랴부랴 출근을 하는 그 끔찍한 굴레를 언제나 가장 가까운 데서 보고 있었다. 그래서 더 컸을 때에는, 나는 눈사람을 만들면 안 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건 나만 좋은 일이었으므로, 내가 눈사람을 만드는 사이에 엄마는 고된 하루를 보내고 있었으므로, 내가 만든 눈사람이 엄마에게 하등 쓸모가 없었으므로.


그러니 언젠가 어른이 되고 난 후에 '아아, 난 사실 눈사람을 만들고 싶었어'란 생각을 하여 오랜만에 눈사람을 만들어 보던 때, 나는 구태여 장갑도 없이 맨손으로 눈을 어루만졌다. 눈사람을 만들기까지 하는 와중에 내 손을 지키려는 의지를 가지는 것은 역시 허락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등 쓸모없는 일을, 단지 좋아서 할 적에는 손바닥 깊이 아린 통증을 새겨놓아야 했다. 그렇게라도 해야만 눈사람 만들기를 스스로 용서할 수 있었다. 엄마의 손을 꼭 빼닮은 통통하고 짧은 손가락들이 빨갛게 익어 감각이 점점 무뎌질 때는 알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그렇지, 이래야지. 내가 그 아픔을 희열로 치환하는 사이에야 눈사람을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손이 시린 탓에 눈사람을 도통 튼튼하고 예쁘게, 둥글고 희게 만들지 못하고, 대충 집어 뭉친 눈사람 비스무리한 것만 어설프게 만들게 되었다. 나는 이 정도만 할 수 있어. 나는 이렇게만 해야 해. 그렇게 만들어진 눈사람들은 나의 발자국 사이사이에 멀겋게 세워둔다. 볕을 받는 날이 늘어나면서 조금씩 녹아들어 가는 눈사람을 보면 이제는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그저, 그저.


그저 눈사람에게 미안하여 빈 땅 위를 서성이며 눈물만 꾸역꾸역 참아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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