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2026)

by 김민주

1.

테이블의 긴 면을 따라서 여덟 개의 의자가 띄엄띄엄 놓여 있다. 왼쪽에 셋, 오른쪽에 셋의 사람들이 앉았다. 나는 그 테이블의 짧은 면을 차지했다. 행복이라는 말을 곰곰이 씹어 생각하면서 테이블의 긴 축을 따라 시선을 옮겨 본다. 나의 손끝에서 시작해 노트북 모니터의 중앙, 과자 봉지, 그리고 테이블 위의 컵 하나, 커피로 추정되는 페트병 하나, 컵과 물통이 담긴 플라스틱 박스와, 중앙에 있다기엔 끝만 걸쳐있는 멀티탭, 그리고 더 나아가 다시 플라스틱 박스 하나, 그다음 낱장의 휴지를 넘어 테이블은 끝이 나고, 나와 정반대 편에 비어있는 의자가 있다. 그 의자의 등받이 너머로 시선을 옮기니 하얀 벽이 네모난 모서리를 전부 드러내고 있었다. 좌우로 비슷한 간격을 두고, 벽의 가운데에 창이 나있다. 이동형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는 탓에 창문은 반듯하게 중앙에서 나뉘지 못하고 오른 창틀이 왼쪽 위로 살짝 포개어져 있다. 두 개의 창틀이 겹쳐진 모양을 보면서 어디쯤이 창문의 중앙인지, 그리고 지금 나의 위치에서의 내 시선과 창문의 중앙은 얼마나 틀어져 있을지 가늠해 본다. 그리고 어느 한 지점에 시선을 꽂아본다. 저기가 시선의 중앙일까, 혹은 창문의 중앙? 아니면 벽의 중앙이 맞을까? 이 모든 과정이 지금의 나와, 이 글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2.

의자를 밟고 올라선다. 머리 위에 비스듬하게 놓여 있는 조명을 팔과 몸통으로 살짝 밀어내면서 우뚝 서올랐다. 여섯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올려다본다. 나는 허공을 향해 입꼬리를 올리며 웃어 보였다. 파도타기를 하듯 나와 가까운 사람들부터 차례차례 자신이 하던 일로 다시 고개를 돌린다. 모두가 다시 모니터나 키보드 위로 시선을 옮긴 것을 확인하며 자연스럽게 내 입꼬리도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곤 오른발을 들어 올려 테이블 위에 올렸다. 다음 발은 키보드를 밟고, 그다음 발은 수직에 가깝게 세워져 있는 노트북 모니터를 눌러 밟는다. 키보드와 노트북이 괴랄한 소리를 냈지만, 내 기대처럼 괴팍하게 파편이 튀어나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힘없이 짓눌려 구겨질 뿐이었다. 그 와중에 날아가지 못한 모니터가 찢어지며 생긴 얇은 파편들이 오른발바닥에 박혀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발바닥 전체에서 느껴지는 얇고 뾰족한 통증을 느끼면서 발을 지그시 눌러본다. 몹시 미세한 것이 살갗을 뚫고 그보다 더 깊은 곳의 살덩어리를 찌르고 있었다. 비명을 머금은 조용한 콧바람이 사람들의 키보드 소리 위를 있는 듯 없는 듯 맴돌다가 흩어진다. 나는 조용하고 천천히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깊게 뱉어냈다. 숨을 따라서 가슴팍이 올랐다가 내려앉는다. 그리곤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테이블의 중앙을 따라 걸어 나간다. 과자 봉지, 컵, 페트병, 플라스틱 박스, 멀티탭, 다시 플라스틱 박스, 그리고 마지막의 휴지까지 모든 것을 밟아 으스러뜨린다. 그사이에 파편은 더욱 깊숙한 곳으로 박혀 들어가고 그 살갗에는 과자 부스러기와 컵에 담겨 있던 물, 먼지나 휴지자락 같은 것들이 피와 뒤엉켜 붙었다. 발바닥과 책상의 표면 사이에 엉망으로 끼어 있는 그 잡다한 것들을 느끼면서 책상의 끄트머리에 섰다. 나는 어느새 앉아있던 자리에서 가장 멀리까지 왔다. 내가 멀뚱히 앉아 바라보던 모든 것을 으스러뜨려 발바닥에 남긴 채, 나와 가장 먼 자리에 도달한 것이다. 그리고 테이블 가까이 붙어있는 의자의 등받이에 오른발을 살짝 올린다. 그것을 밀어 누른다. 비스듬히 쓰러져가는 의자와 함께 몸을 기울이다가 그 아래의 바닥으로 뛰어내린다. 번개가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면서 창문 앞에 착지했다. 등 뒤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키보드를 치던 소리는 모두 사그라들었고, 내가 틀어놓은 노랫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으며, 내가 떨어지면서 낸 쿵 소리가 아직 파동의 형태로 이 공간 안을 맴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파동이 어떤 모양일지 상상하며 눈앞의 창을 바라본다. 등 뒤로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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