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선 (2026)

by 김민주

1.

얇고 가느다란 선 하나가 내 인생을 가로지르고 있다. 또 다른 선 하나가 마치 수면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물결의 모양과 같이 오르거나 내려가길 반복하며 가로선을 따라가고 있다. 이 움직이는 선에게 나는 사랑선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로 한다. 감정선이나, 마음선 같은 것은 조금 포괄적이고 진부한데, 그보다는 조금 더 말랑거리고 유연하여 손쉽게 뜨거워지고 손쉽게 상처가 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2.

나의 사랑은 구리와 비슷한 성질머리를 가졌다. 녹는점이 높아 제대로 된 용광로 없이는 녹이기 힘들면서, 조금의 열에도 쉽게 뜨거워진다. 우리 집에 용광로 따위가 있을 리 없으므로, 담배 피울 때나 쓰는 라이터를 하나 들어본다. 달구면 달구는 대로 금방 빨갛게 익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 내 사랑이 되리라, 마음이 설레 들뜨는 것을 감출 수가 없다. 적당히 익었을 것으로 생각되었을 때가 되면 덥석 그것을 잡아본다. 사랑 같은 모양을 좀 만들어 보려고. 하지만 라이터 따위에 녹을 것이 아니니 그것을 찰흙덩이같이 생각하고 내 마음처럼 다루는 일은 불가능하다. 겁 없이 구리를 쥐었던 손바닥이 벌겋게 익어 물집이 잡히고 진물이 난다. 손을 덜덜 떨면서 라이터를 놓치고, 그 쓸모없는 것이 방구석까지 데굴데굴 굴러가는 동안 사랑선은 빠르게 식어 가로선의 아래로 곤두박질친다.


3.

집에 용광로 있으신 분? 저 좀 빌려주실래요. 저 구리 녹이고 싶은데요.


4.

내가 사랑을 녹이고 싶어 해서, 나와 친밀한 인간들이 죄다 라이터를 하나씩 손에 든 채 집 앞으로 찾아왔다. 모두가 라이터를 손에 쥐고 구리 곁으로 모인다. 모여든 인간들이 쭈그려 앉아있는 모습을 한발 떨어져서 보고 있으니 괜한 눈물이 나는데, 그 인간들과 나의 눈물이 퍽 진절 나는 모양을 닮아 치가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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