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메이트 (2026)

by 김민주

눈앞이 빙빙 돈다. 몇 잔이나 마셨나 되짚어 보니 3시간 동안 고작 2잔을 야금야금 꺾어 마신 게 전부고, 아직 그 두 번째 잔이 다 비워지지 않은 상태였다. 테이블을 훑어본다. 그새 식어 딱딱해진 치킨이 두 조각 남아 있었고, 어묵탕은 죽을 듯 죽지 않는 불 위에서 티 안 나게 졸아붙고 있었다. 테이블 한구석에는 비어있는 소주병과 맥주병이 득식득실 모여 있어, 그것들이 비워지는 데에 내가 몇 퍼센트나 기여했을지 계산해 보려 눈을 굴려봤다. 하지만 그 2잔도 채 못 마셨으면서 잠깐 눈을 굴리는 사이에 구역질이 날 정도로 어지러운 것을 보아 나의 2잔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겠지 싶다. 눈을 끔뻑이면서 입안에 남은 알코올 냄새를 씻어 넘기려고 물컵을 찾아들었다.


"괜찮아? 미안, 미안."


민주는 굳이 화장실 안까지 쫓아 들어와서 내 등을 두드려주고 있었다. 어떤 정신 나간 녀석이 물컵 가득 술을 채워놨나 했더니 그게 민주였던 모양이다. 나는 소주 2잔을 씻어내려다가 못해도 5잔은 될 한 컵을 한입에 삼켜 버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장실로 뛰어와야 했다. 우악스럽게 속을 게워내고 있는 와중에 민주는 일정한 박자로 내 등을 계속 두드리면서 우는 듯 웃는 듯 조금은 들뜬 것 같은 목소리로 말을 걸고 있었다.


"미안해, 미안해. 마시기 싫을 때마다 조금씩 그 컵에 버리고 있었거든."


한참을 게워내고 나니 오히려 속이 편해진 것 같았다. 목을 한 번 가다듬고, 괜찮다는 뜻으로 민주에게 손바닥을 한 번 내보이면서 겨우 일어나 섰다. 그제야 민주의 얼굴을 보는데 역시 우는 것 같기도 웃는 것 같기도 한, 아리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눈썹도, 입꼬리도 축 처져 있는데 묘하게 웃음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세면대로 가서 입을 헹궈내는 동안 민주는 말없이 뒷집을 지고 옆에 서 있었다. 다시 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민주는 계속 그 이상한 표정을 지은 채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내가 자리에 앉고 나서야 테이블을 빙 따라 돌아 내 앞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한껏 입꼬리를 내리고 우는 시늉을 하면서 '미안해'라고 입을 뻐끔거리는데, 그것도 내심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눈을 감고 끄덕이면서 손짓으로 괜찮다는 의사를 전했다. 그러자 그걸 보고 씩 웃던데, 그게 또 왠지 울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서 기분이 이상했다.

술자리는 끝날 줄 모르고 이어졌다. 한 번 게워내면서 처음에 마셨던 2잔도 전부 빠져나간 건지 한결 속이 편안했다. 나는 아주 미세하게 남은 술기운을 느끼면서, 물이 찬 잔으로 사람들과 건배를 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 컵의 술을 마시게 한 것이 미안했는지, 잔이 빌 때마다 민주가 슬쩍 술잔에 물을 따라주곤 한 것이다. 자리를 함께하고 있던 다른 녀석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꽤 취한 모양이라 누구도 우리의 작당모의를 알아채지 못했다. 물론 알았어도 나에게 억지로 술을 먹일 사람은 없었겠지만, 왠지 남몰래 함께 잘못을 저지르는 것만 같아 기분이 묘했다. 민주는 술잔에 물을 따르면서 매번 입 가까이 손가락을 대고 조용히 하란 시늉을 했고, 그러면 나도 괜스레 이 비밀을 지켜야만 한다는 의무와 책임 같은 걸 느껴서 조심스럽게 고개를 까딱거렸다.


워낙 술을 못 마시는 편이라 술자리가 늘 괴롭고 지루했다. 고작 2잔도 채 못 마시면서 그 2잔에도 취기가 올라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 해도 힘이 들었다. 그런 와중에 즐겁게 마시는 친구들에게 맞춰 어울리려 하니 언제나 고단했고, 술자리가 끝나고 집에 가면 못해도 댓 병은 마신 사람처럼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술자리가 그리 고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언제나 신이 나 있었다. 입에 술을 한 방울도 대지 않고 누구보다도 들떠 분위기를 끌었다. 같이 어울리던 친구들은 '언젠가부터 술이 늘었다'라며, '역시 술도 마실수록 늘긴 하나보다'라며, 이전과 다른 내 모습을 신기해했다. 그리고 그런 내 앞에는 입가에 손가락을 대고선 웃는 듯, 우는 듯,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민주가 항상 있었다. 여럿 중 하나일 뿐이던 그녀는 이제 이곳에서 나에겐 없어선 안 되는 사람이 되었다. 민주가 없는 날에는 여지없이 2잔의 술에 나가떨어져 위태롭게 집에 돌아갔고, 민주가 있는 날에는 2병은 마신 사람처럼 신이 나 밤을 지새웠다.

어느 금요일 저녁, 여느 때처럼 민주가 나도 모르게 술잔에 따라놓는 물로 건배하면서 밤을 보내고, 친구들을 한 명씩 택시에 태워 보내고 나니 어느새 민주와 둘이었다. 항상 그렇듯 묘한 표정으로 담배를 물고는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나는 꼭 그 손끝에 나와 연결되어 있는 끈이라도 묶여 있어 끌려가듯이 자연스럽게 옆으로 다가가 나란히 섰다. 민주가 담배를 문 채 웅얼웅얼 말을 건넸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김민주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김민주를 그리고 씁니다

127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5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9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5화사랑선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