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성, 바랄 희 (2026)

by 김민주

1.

나는 내가 어둠에 꽤 익숙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렇게까지 어두운 곳에 홀로 놓여 있으니 겁이 나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멀거니 어둠 속을 바라만 보고 있다. 바라보고 있다는 표현 자체가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곧 바닥을 길 듯 낮은 자세로, 허공에 손을 휘적거려 본다. 발에 무언가 걸리는 게 느껴져 손을 뻗어보니 무언가가 길게 누워 있었다. 손바닥을 펼쳐 쓰다듬어본다. 거친 표면이 나무의 껍질 같았다. 일단 그 위에 걸터앉았다. 몇 시간을 헤맨 건지 모르겠다. 겁에 질린 채로 돌아다닌 탓에 온몸이 뻐근하고 무거웠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왠지 모를 서러움이 올라와 목구멍이 막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느 때처럼 팔다리를 사방으로 펼쳐놓고 누워 천장을 보고 있었다. 요즘 들어 계속 이런 식이었다. 매일 저녁이면 창밖에서 내 이름을 애타게 부르던 친구들은 방학이 시작되면서 모두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들과 달리, 나는 그들이 아니면 딱히 내 이름을 부르는 고향 같은 것이 없어 자취방에 남았다. 일주일 사이에 학교 근방이 한적해졌다. 마치 세상에 나만 남은 것 같아 해방감을 느끼던 것은 얼마 가지 않아 사그라들었고, 몹시 쓸쓸해졌다. 나는 허공에 손가락을 들고 이름을 써봤다. 방안은 유난히 볕이 들지 않아 캄캄했다. 그 와중에 허공에 쓴,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이름 같은 것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나는 이름이 사라진 자리에 누워 죽은 듯이 지냈다. 낮밤 상관없이 어둑한 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없어지고 있었다. 나의 테두리가 점점 검게 물들면서 이 어둠에 녹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이만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어차피 이름도, 나도 사라지는 참이니 이처럼 죽기 좋은 때가 또 있을까.


유서라도 한 장 적어놓자 싶어 노트를 펼쳤다. 손에 잡히는 대로 펼쳐진 노트의 구석에 연필로 대강 휘갈겨 놓은 글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버킷리스트. 나는 그 다섯 글자가 정말 유치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오늘 같은 날 이걸 보게 된 것이 가지고 있을 의미에 대해 금방 골몰하기 시작했다. 그 유치한 다섯 글자 아래에는 더 장난 같은 말이 쓰여 있었다.


'반딧불이'


나는 그 터무니없는 메모 두 줄에 이곳에 왔다. 그날 내가 그것을 보지 않았더라면, 그전에 그런 걸 적어놓지 않았더라면, 내가 지금 이곳에서 길을 잃어 몇 시간을 겁에 질린 채 헤맬 일도 없었을 텐데. 여느 때처럼 천장을 가만히 보고 누워 있다가, 사라진 이름을 애도하면서 그대로 죽었을지도 모를 일인데. 이곳의 어둠은 방 안에서 홀로 지새우는 밤이 컴컴한 것과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컴컴하여 익숙해지지도 못하고 단지 겁에 질리게 할 뿐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이 숲이 아주 많은 것들로 가득 차있는 것이 느껴졌다. 바닥은 울퉁불퉁해서 발을 내딛을 때마다 발이 닿는 감각이 새삼스러워 몸이 자꾸 움츠러들었고, 앞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 옆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마치 아주 거대한 상자 안에서 단 몇 발자국 내외의 좁은 구역 만을 헤매고 있는 것 같았다. 핸드폰으로 불을 비추며 한참 헤맨 탓에 그마저도 방전되어 쓸모가 없어졌다. 그러기 전에 조난 신고라도 했어야 했는데, 나를 너무 믿은 것이 잘못이다. 시간도 흐르지 않는 것만 같다. 지루하고 괴롭다. 무섭고 힘들다. 쓸쓸하고 외롭다. 눈을 뜨고 있어도 보이는 것이 없으니 헛구역질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무릎을 당겨 앉아 눈을 질끈 감은 채 얼굴을 파묻었다.


"성희 씨, 뭐해요?"


메아리치듯 멀찍이서 들려오는 내 이름에 놀라서, 안 그래도 경직돼있던 몸이 파르르 떨렸다. 고개를 들어 보니 멀리 무언가가 빛나고 있는 게 보였다. 빛은 그 근방을 미미하게 비추면서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두려움과 안도감이 울컥 올라왔다. 그리고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했다. 빛은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면서 가까워지다가 이윽고 내 앞에 도달했다. 눈물에 젖어 일렁거리는 시야 너머로도 밝은 빛이 파고 들어와서 나도 모르게 눈을 찌푸렸다. 빛에 잠시 익숙해지는 동안 그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길 잃어버렸어요? 왜 울어요. 괜찮아요?"


빛 너머에서 손이 쑥 나와 얼굴 가까이 오더니, 내 눈가를 슥슥 닦아주기 시작했다. 그저 그 손에 얼굴을 맡기고 또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했다. 길을 잃은 캄캄한 숲 속에서는 내 숨소리마저 징그럽게 느껴졌는데, 빛이 있어서인지 소리 내어 울 수 있는 것이 몹시 반갑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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