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몰라야 해

<동그라미 찢기> 9

by 김민주

나는 고집이 세다. 친한 친구의 말마따나 나는 '먕-'하게 생겼다. 좀 더 설명해 보자면, 나는 꽤 둥글고 유하게 생긴 데다 싱글벙글 잘 웃는 편인데, 그렇게 유순한 척 고개를 끄덕이면서 온갖 이야기를 다 듣고 다닌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그 이야기들 중 상당수를 듣지 않고 흘려보낸다는 점이다. '먕-'하게 생겨서는, '먕-'하기만 한 고집을 가지진 못했단 얘기다. 연재 중인 브런치북 제목도 '멋대로 쓴 글', 그 설명도 '멋대로 쓴 글이 궁금한 사람'같은 터무니없는 얘길 써놓은 것만 봐도 내가 얼마나 제멋대로에 고집불통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름도 낯선 누군가가 멋대로 쓴 글이 궁금해서 읽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유들유들하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녀본 결과, 타인에게 진심으로 깊은 궁금증을 가지는 사람은 몇 없었다. 그보단 자신을 위해 타자에게 관심을 보이는 편이 많았다. 나는 그런 것들을 봐 왔으면서, 실은 나도 그러면서, 그래서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멋대로 쓴 글은 말 그대로 멋대로 쓴 글일 뿐이라서, 다른 제목은 지을 수 없었어"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진짜로 다른 제목을 지을 수 없었던 게 아니라, 그 제목이 마음에 들었던 것뿐인데도. 그러니까 나는 둥글게 웃으면서 경계를 낮춰놓고 기어코 제멋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인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나의 이 고집이 어떤 위치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을지에 대해서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다. 말했듯이 '먕-'하며 들어온 얘기가 많아서일 것이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제 직성이 풀리는 대로 해야만 하는 녀석이라니, 그야말로 황소고집이 따로 없겠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고려해 보니 오늘의 이 글, <동그라미 찢기> 9화의 제목이 "몰라야 해"가 되었다. 이 제목을 지은 건 무려 한 달 전이다. 그건 한 달 동안 이 시리즈를 업로드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한데, 그 한 달 동안 계속 '몰라야 했던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제목을 덥석 붙여놓고 나서야 왜 이런 제목을 붙였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으니까. 아직, 제목의 의미를 찾지 못했지만 일단 내가 고집이 세단 것을 고백하기로 했다. 그것도 아주 어마어마한 고집쟁이라고, 조금은 과장되어 보일지라도 확실하게 못 박아 놔야겠다. 그게 아주 꽤 엄청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느껴서다. 하지만 역시 아직 알 길은 없다. 나의 고집과 이 제목이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이 글이 왜 <동그라미 찢기>의 9화가 되어야 하는 것인지.


튼튼한 나무를 하나 골라 깎았다. 양손으로 잡아야 잡힐 정도의 둘레를 가졌고 허리 즈음 오는 키의 막대 형태, 그 한쪽 끝은 뾰족하게 다듬었고 반대쪽은 평평하게 깎아냈다. 그리고 그걸 낑낑거리며 들고선 원의 한가운데를 찾아 들어갔을 것이다. 몇 번이나 이곳이 정중앙이 맞는지 재보고, 따져보고, 확인하길 반복하고 확신이 섰을 때에야 나무 막대의 끝을 콕 찍어 세운다. 혹여 흐트러지기라도 할 새라 한 손에 들어오지도 않는 것을 한 손으로 단단히 잡으려 애쓰며, 다른 한 손엔 꽤 묵직한 망치를 쥐었다. 망치를 힘겹게 들어 올려 나무 막대를 내려친다. 망치의 묵직함이 힘이 되어 생각보다 큰 소리가 났다. 조금씩 땅속으로 막대가 파고들기 시작한다. 내가 그린 동그라미의 한가운데에, 내가 깎아 만든 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나는 그 나무를 중심 삼아서, 나무와 나의 거리를 가늠해 보면서 조금 더 똑바로 정확하게 원을 그리려고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동그라미 찢기>를 쓰고 있기 때문에, 동그라미를 찢기 위해서 확실한 동그라미를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그리하여 이 동그라미 가운데를 뚫어내면서 고집 하나를 세워 놓았고, 나는 엉뚱하게도 그 말뚝에 묶여 모로 가도 원만 그리는 망아지 같은 꼴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자꾸 이 시리즈를 쓰면서 아무것도 찢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했다. 한 편, 한 편이 쌓일 때마다 '이건 정말 내가 아직은 찢을 수 없는 건가 봐'라고.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나의 어머니와, 나의 어린 시절, 그들이 쌓여 만들어진 나로선 벗어날 수 없는 잔인한 굴레이자 현실인 거라고 착각하곤 했다.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해, 그리고 나는 이것을 지키면서 살게 될 거야. 왜냐하면,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고 이런 형태로 만들어졌지. 나는 자연스럽게 이딴 구조를 가지게 되었고, 그 구조를 알아내는 것이 내가 내게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인 거야. 이 거지 같은 굴레가 나를 지금까지 지킬 수 있도록 만들어 낸 소중한 성벽과 망루, 그곳에 항시 대기하고 있는 병사들을 보라고. 그들은 대포를 항시 대기해 놓고 언제든 불을 붙일 준비를 하고 있었어. 위험을 감지하면 곳곳에서 적을 알리는 북을 쳐대고, 북소리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망설임 없이 대포를 쏘지. 그 덕에 나는 지금까지 살았어. 내가 살아가기 위해 만들고, 다지고, 지키고, 싸워온 그들을 봐.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해. 그들을 지키면서."


그리고 이제 나는 성벽의 안에 서서 대포를 그 벽에 겨누고 있다. 그렇게 소중히 여기던 성벽에 대포를 쏠 거냐고요? 아니요, 그렇진 않아요. 하지만 이 성벽이 내 것이라는 자각을 하게 됐다는 거죠. 마치 한 발 물러서서 내 것이 아닌 양, 그 모든 게 내가 만든 것이 아닌 양 착각하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물론 말했듯이 이 성벽을 만들 때에 내 주변의 많은 것들이 영향을 줬을 것이다. 나의 어머니와, 나의 어린 시절, 그것을 둘러싼 환경과 시간 모두. 그래서 어쩌면 정말 이 성벽을 만든 것은 나만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이 쌓인 형태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오는 데에 있어서 이 벽이 확실히 나를 지키고 있었을 것도 장담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나는 할 수 있는 한 이 굴레를 존중하고 치켜세워야만 했을 것이다. 내 과거와 그것의 성과를 인정해 주고, 지금 하고 있는 역할에 대한 보상을 해줘야 했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몰라야 했다. 이 벽이 나에게 인정받게끔 하기 위해서, 지금까지의 역할에 대해 존중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선, 이 벽이 나에게 굴레라는 이름으로 그 가운데 말뚝을 박아 세워놓고 나를 망아지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모른 척해야 했던 것이다.


"자, 이 벽을 봐. 아주 오랜 시간 나와, 나의 백성들이 나를 위해 세운 멋들어진 성벽을 봐. 나는 이 구조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나를 몰아세웠지. 그렇게 지어 나를 지켜왔어. 그러니 이 공을 높이 세워 치하해야 했지. 그리고 나는 이제 대포를 하나 몰고 이 굴레의 정가운데로 걸어가. 말뚝 위에 올라 서. 이곳을 둘러싼 탄탄한 벽과 내가 세운 말뚝을 내려다봐. 내 손엔 언제든 불꽃이 일고 있어. 심지에 불을 붙이면 언젠가 이 모든 걸 무너뜨릴 수 있다고, 마치 이곳의 독한 왕이 된 것처럼 말하고 있지. 하지만 이 벽 안에서 나는 그렇게 지독하게 굴지 못할 거야. 다만."


다만, 이제 모른 척하지 않아도 된단 걸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대포를 옆에 끼고 선 망아지가 된다. 이곳의 지독한 왕이 되지 않아도 된다. 구태여 저 벽을, 나의 굴레를, 나의 구조를 부수며 새로운 말뚝을 세우지 않아도 된다. 그것이 나를 영영 모르는 척하는 망아지로 남게 할지도 모른단 생각을 한다. 나의 애처로운 고집을 꺾으려 또 다른 고집을 세우는 꼴이 될 테니까.

그래서 아마 이 글의 제목이 <몰라야 해>가 된 것은 내가 모르는 것과 아는 것, 앞으로 모를 것들과 지금 알게 된 것들을 정리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말뚝과 굴레, 나의 성과 성벽, 그리고 그 안과 밖에 대해서 새로운 상상을 할 수 있는 때가 된 것 아닐까.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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