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라미 찢기> 10
엄마, 엄마. 소리 내서 당신을 부르면서 원 없이 울었으면 좋겠어. 언젠가 이 글을 쓰면서 엉엉 운 뒤에 엄마 꿈을 꿨어. 엄마는 몇 개의 회초리를 꺼내서 그중에 가장 단단한 걸 골라 잡았고, 나를 쫓아오면서 때리기 시작했어. 등이며 팔이며, 어디든 가리지 않고 나를 때렸어. 엄마가 무슨 말을 하진 않았던 것 같아. 그냥 나를 계속 쫓아오며 때리더라고. 내가 어딜 가든 끝까지 쫓아와 나를 때릴 것처럼. 매가 부러지면 또 어디선가 더 단단한 걸 가져오고, 또 부러지면 더 단단한 걸 가져와서 나를 때렸어. 나는 내내 그렇게 맞다가 뒤돌아 서 엄마를 마주해. 나를 때리려는 엄마의 손을 잡고, 엄마를 돌려세웠어. 엄마의 등에 손가락을 꼽았어. 등가죽 사이로 내 손가락이 파고드는 걸 보면서, 팔을 양쪽으로 힘껏 잡아당겨. 엄마의 등을 찢으려고. 엄마의 뾰족한 비명소리가 들려. 나는 엄마의 등을 찢으려고 손끝에, 손아귀에, 손목과 팔뚝에 힘을 줘. 막 찢어지기 전에 꿈에서 깨어났어. 엄마의 비명소리를 뒤로 하고, 나 혼자 꿈에서 깨어나 버렸어. 그리고 또 울었어. 엄마, 엄마, 미안해,라고 하면서.
한동안 엄마의 전화를 피했어. 나도 엄마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지. 무서웠으니까. 무서웠어.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 게 무서웠어.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면 울 것 같아서 무서웠어. 엄마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고백을 해버릴 것 같아 무서웠어. 그러던 중에 엄마가 먼저 내게 전화를 했잖아.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얼마 전에 꿈에 엄마가 나왔어, 악몽이었어, 하니 엄마는 웃으면서 엄마가 때리기라도 했느냐 물어. 나는 응, 나를 쫓아오면서 때리더라 했지. 엄마는 다시 웃으면서 네가 엄마한테 미안한가 보다,라고 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내가 이런 글을 쓰면서 엄마에게 미안해하고 있다는 건 정말 모르면서 어떻게 알았을까. 엄마는 내내 나를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나도 어느새 나이를 이렇게나 많이 먹었어. 엄마와 같은 나이에 아이를 낳았다면, 그 아이가 지금 여섯 살이 되었을 거야. 엄마는 지금 내 나이에 여섯 살 난 나를 보고 있었겠지. 엄마, 나는 아직도 그 여섯 살 때처럼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못하고 이런 글을 써 모으고 있어. 내가 살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고 적절하게 합리화하고, 엄마의 등을 찢는 꿈을 꾸다 깨어나 미안하다고 몰래 울면서. 참 버릇없고 철없는 딸이야, 그렇지? 내가 여섯 살 났을 때,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엄마의 동그라미는 어느 곳을 돌고 있었을까. 내가 자라나는 동안 엄마의 동그라미가 어디쯤에 있었길래 엄마는 그때에 이미 나를 낳고 키울 수 있었을까. 그때 그 동그라미가 어디를 지나가고 있었길래 엄마가 나에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면 나는 계속 못난 딸이 돼.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엄마의 동그라미를 찢어야겠다고 등에 손을 찔러 넣는 녀석이니까.
그 후로 글을 못 쓰겠어. 무섭고 두려워. 그 꿈을 꾼 후로,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 내가 또 그런 끔찍한 꿈을 꾸게 될까 봐 무서워. 그리고 이 일이 정말로 엄마를 찢는 일이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되어서 하려고 했던 말들을 모두 지웠어.
엄마. 나는 오늘 또 동그라미를 돌고 있어. 그냥 한 발 톡 내딛으면, 아무렇지 않게 나가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 한 발도 내 발이고, 나가지 않는 것도 내 발인데도 나는 자꾸 엄마를 생각하고 있어. 나의 동그라미를. 엄마가 등 뒤에서 나를 툭 밀어줬으면 좋겠어. 이 밖이 낭떠러지라고 하더라도, 혼쭐이 나봐라 하고 떠미는 것일지라도, 한 번만 나를 툭 던져줬으면 좋겠어. 지금도 봐, 엄마 탓을 하고 있잖아. 여기선 정말 자꾸 이렇게 된다니까. 나는 아직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는 모양이야.
그래서 오늘은 그냥 엄마를 미워하지도 않고, 엄마를 사랑하지도 않고, 엄마를 원망하지도, 엄마를 연민하지도 않고, 그냥 어떤 사람인 엄마를 생각하면서 울 수 있으면 좋겠어. 그냥 어떤 사람인 김민주가 되어서 마냥 울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