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라미 찢기> 11
민주. 한없이 누군가를 미워해본 적 있어? 끝도 없이 탓하고 원망해본 적은? 너에게 지금 그게 필요한 것 같아. 민주야. 가장 밉고 원망스러운 사람을 떠올려 봐.
어느 곳이 어떻게 비어있는지, 자꾸 느껴져. 이게 모든 걸 망칠 것 같아서 두려워. 그래서 엄마가 미워. 엄마가 미워. 엄마가. 미워. 사랑을 하면 할수록 내가 얼마나 바보같이 사랑하는 사람인지 깨닫게 돼. 그래서 엄마가 미워. 엄마가 미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엇을 못하고 있고, 무엇을 자꾸 원하는지 알게 돼. 그런 내가 자꾸 싫어져. 이 모든 걸 다 엄마 때문이라고 말하는 내가 자꾸 싫어져. 왜 무언갈 탓해야만 하는 걸까. 제대로 탓하지도 못할 거면서.
엄마. 엄마. 나도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너무 너무 하고 싶은 말들이 항상 나를 두렵게 만들어. 조금 더 어른스럽게, 조금 더 좋게, 조금 더 예쁘게, 조금 더 잘하고 싶어. 이건 그저 나의 욕심일 뿐인 걸까. 그래, 이렇게. 나의 욕심으로 치부해야 해. 그래야 엄마 탓을 하지 않을 수 있어. 오늘 말야. 너무 힘든 하루였어. 그리고 나는 자꾸 숨고 싶었어. 아무도 없는 곳으로 꽁꽁 숨어버리고 싶었어. 그래야 내가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고, 어떤 것도 바라지 않고, 누구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엄마아. 엄마. 엉엉 울고 싶은데, 울면 엄마한테 혼이 날 것 같아서 하루 종일 참고 참았어. 하루 종일이 뭐야, 몇날 며칠을 참았어. 내가 운다 해도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을 것 같아서 참고 참았어. 혼자 우는 건 너무 많이 했어. 그동안 너무 혼자 많이 울었어. 엄마. 엄마아. 왜 그랬어. 왜 우는 나를 혼자 뒀어. 왜 아무한테도 기대지 못하게 나를 뒀어. 나는 자꾸 엄마도 그렇게 해주지 않았는데, 그게 된다고?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의심을 하잖아. 울면, 내가 울면 또 그렇게 외면당할 것만 같아서 너무 무서워서 자꾸 숨고 싶어. 이러다가 죽을 것 같아. 죽어버릴 것 같아. 너무 무서워서 죽어버릴 것 같다고. 그건 정말 너무 잔인하잖아. 엄마, 오늘 너무 힘든 하루였어. 너무 너무 잘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잘하는 건지 모르겠어.
아무도 모를 거라고 믿어, 그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아. 몰라야 해. 그래야 지난 시간들이 납득이 되니까. 그래야 엄마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엄마가 너무 미워. 엄마가 정말 미워. 엄마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자꾸 괴롭히게 돼. 아니면 나를 혼자 둬야 해.
아주 잠깐 사이에 나는 또 숨을 고르고, 이성을 되찾으려고 노력해. 누군가를 괴롭히지 않으려고 정신을 바
짝 차려. 나의 못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써. 나는 이렇게 살고 있어.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했어. 너무 바보같잖아. 두려움도 이겨내고 싶었어. 괜찮다, 괜찮다, 하면 괜찮아지겠지. 그렇게 생각했어. 또, 또 잠깐 사이에 정신이 돌아왔어. 내가 뭔가를 유지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아. 무언가 단단히 잘못 되어버릴 것만 같아. 아무것도 몰랐으면 좋겠어. 어떤 것도 부딪히고 싶지 않아. 그리고 난 자꾸 부딪히고 있어. 그래서 너무 무서워. 정말 무서운 생각을 해보고 있어. 내가 어떻게 해야 엄마가 이 모든 걸 알게 될까, 알 수 없는 복수심과 반항심에 빠져서 어떻게 해야 엄마가 가장 아프게 나를 이해할 수 있게 될까 생각하고 있어. 그게 엄마 뿐만이 아니라 생각보다 꽤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할지도 몰라. 맞아. 그래서 나는 내내 죽고 싶었나 봐. 엄마가 가장 아프고, 가장 선명하게 나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 엄마가 끝도 없이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만들려고. 나는 정말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네. 정말 엄마를 사랑한다면, 그런 생각도 못하지 않을까? 정말 내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줄 안다면, 이런 참혹한 생각은 못하지 않겠어? 나의 가장 잔인한 속내를 꺼내. 나는 나밖에 몰라서, 끝내 나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들기 위해서 이런 생각밖에 할 줄 모르지.
맞아. 지금의 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