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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배우 Apr 23. 2019

빨간약 vs 파란 약

모피어스에게 받은 빨간약을 먹은 네오의 변화된 삶

 영화 메트릭스의 어마어마한 세계관의 시작은 결국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전달한 빨간약 덕분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거짓이고 진짜 세상을 알기 위해서는 ‘빨간약’을 지금처럼 살아가려면 ‘파란 약’을 먹어야 했다. 네오에게 두 가지 선택지가 놓여있었고 고민 끝에 그는 빨간약을 먹었다.

 하지만 메트릭스 1에서 한 동료는 실제 세상의 굶주림과 참혹한 환경 때문에 메트릭스로 돌아가기로 하고 모피어스를 배신한다. 진짜라는 건 ‘이상향’도 ‘유토피아’도 아니었던 것이다.




 요한계시록에 7 교회에게 전달한 메시지 중 ‘차던지 덥던지 하라’라고 하는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전달한 메시지이다. 어릴 적 처음이 메시지를 들었을 때는 왜? 하는 의문이 들었다. 미지근한 물은 맛은 없어도 목에 좋다는 데 차던지 덥던지 하라는 건 뭐지? 그래도 처음 이해한 내용은 모 아니면 도지 중간은 없다고 이해했다. 맞다 마치 시험 볼 때 적관적으로 썼던 답이 정답일 확률이 높은 것처럼 내가 이해했던 처음의 이해가 맞았다. 

 

 흔히들 포스트 모던의 시대를 가리켜 변증법의 세상이라고 이야기한다. '정반합' 양쪽 극단의 이야기를 가지고 좀 더 합리적인 것들을 뽑아 제3의 의견에 도출하는 것 변증법의 세상이다. 말은 그럴싸 한데 실상 변증법은 인문학의 함정이었다. 나는 변증법의 고수다. 2001년도 입시 당시에 논술 경시대회가 참 많았는데 그 당시 대학에서 주최하던  논술 경시대회에 입상도 했고 전국 논술 모의고사에서는 상위 1% 정도의 성적을 거뒀다. 나에게 정반합의 논술고사는 몸으로 체득된 주특기이자 무기였다. 

 그러나 변증법의 저주는 나를 거의 모든 자리에서 패배자로 이끌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쉽게 말해서 메트릭스의 이야기로 돌아가 설명하면 이렇다. 환상 속의 메트릭스 공간 안에서의 삶을 살때는 어려움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처럼 취업의 스트레스와 관계의 스트레스 등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들로 인해서 똑같이 힘들었을 텐데.. 빨간약을 먹고 실체를 알아버린 세상에 와서는 햄버거 대신 말린 쥐고기를 먹고 강철 빨판 괴물들에게서 도망치는 삶이 힘들어서 과거 격고 있던 관계의 지옥이 나았어라는 회상을 하는 것이다. 맞다 어쩌면 생명의 위협이 없는 메트릭스 안에서의 삶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메트릭스 안의 삶도 결코 이상향은 아니었다. 

 결국엔 메트릭스 안에서는 현실 세상을 이상향으로 현실에서는 메트릭스의 삶을 이상향으로 알며 내가 서있는 현실에서 살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얼마나 슬픈 현실인가 내가 사는 세상에서는 결코 행복해질 수도 무언가 성취할 수도 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허무주의의 끝판왕! 어떤 이들은 너무 지나친 왜곡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게는 이런 왜곡이 사실이었다. 




  내가 지금 다니는 교회를 처음 결정할 때의 일이다. 그때까지도 나는 내 인생을 모 아니면 도로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번 결정하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라고 자부했다. 연극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 막연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 30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연극을 시작했으니 한번 마음먹은 것은 늦어도 해내고야 마는 사람이라 착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그런 착각은 바로 교회를 옮기며 산산이 깨지고 말았다. 처음교회를 접했던 건 지금의 아내를 통해서 집회를 할 때 방문했었다 그러나 그 당시 성령님의 역사하심은 나의 평생의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검증의 작업이 필요했다 이것이 진짜인가 내가 알고 있는 것 너머의 다른 것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이들이 거짓말쟁이인가? 하는 단순한 검증이 필요했다. 얼마나 건강한 생각인가? 이것이 맞는지 틀린 지 검증하는 것 이보다 더 건강한 사운드 마인드가 있을 수 있을까? 

 그 후에 6개월간의 검증작업(자료도 찾아보고 공부도 해보고 목사님이 하셨던 말씀을 복기해보고 성경을 찾아보는 등의 작업)을 통해서 거짓이 아니라는 나만의 결론을 내리고 교회를 옮기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위의 과정이 뭐가 잘못된 건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참 많을 텐데 나 역시 그랬으므로 조금 더 따라오시길 추천한다


 그 후로 약 1년여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교회에서 이야기하는 풍성한 삶도 성령이 충만한 삶도 내 안의 만족도 어느 것 하나 느낄 수 없었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는 나는 위의 과정에서 검증했던 과정과 결과도 내 패러다임을 중심으로 이게 틀리지 않으니 조금만 더 확장하는 수준에 머물다 보니 충만과 만족이 어떤 건지 알고 있지 못했기에 느낄 수도 아니 느낄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을 흘려보낸 후에 말하는 것과 느껴지는 것의 괴리감을 견디다 못해서 교회를 떠나려 했던 순간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고 손을 잡으며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고 말하고 눈으로 그 진심을 흘려보내 주신 선교사님 덕분에 떠나는 선택 대신에 나를 그들 사이에 던지는 선택을 했다. 

 그렇다 나는 검증이 끝났지만 패러다임의 조그마한 확장으로 그곳에 있다 보니 느껴지면 조금씩 나의 패러다임을 늘려가겠다는 소극적 자세로 1년을 보냈던 것이다. 마치 내가 가지고 있는 정과 교회가 가지고 있는 반 그사이의 어딘가를 찾아 내가 납득이 되면 합의를 하고 내 정을 조금씩 옮겨가는 방식의 소극적인 선택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를 그들 사이에 던지겠다는 선택을 하고 나니 생각의 틀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나를 설득해봐'라는 태도를 버리고 '나를 가르쳐 주세요'라는 자세로 서고 나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열리기 시작했고 애써보지 않으려 했던 영역이 열려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모피어스에게 건네받은 빨간약을 먹은 것처럼 세상이 송두리째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게 됐다. 지금까지의 나의 태도는 모피어스에게 빨간약과 파란 약을 건네받고 이 세상의 이상함은 알았지만 약을 먹지 않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삶이었다는 것이 보였다.

 나는 어느 쪽이든 선택해야 했다. 빨간약을 먹고 나갈지 아니면 파란 약을 먹고 기억을 지우고 이곳에 남을지 그러나 느 나의 선택은 약을 들고 검증하는 삶이었다. 그러나 그 검증은 생각과 상상 안에서만 이뤄진 검증이었다. 진짜와 실체는 없는 검증의 지옥, 결국엔 빨간약을 먹지도 파란 약을 먹지도 않은 채 나에게는 선택권이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삶!


 



 그 저주가 풀리고 나니 나의 삶은 생각보다 단순해지고 쉬워졌다. 마치 전쟁이 가져올 어려움을 미리 보고 내다보고 전쟁을 뒤로 미루는 삶을 살다가 그냥 나가서 싸우는 삶을 살게 됐다. 어차피 치러야 할 전쟁의 피로도를 그냥 격어낸다면 상상 속에서 전투하며 스트레스를 유지한 채로 상상 속에서 리스크를 키워가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 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는지 이제야 조금씩 알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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