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의 편 가르기
처음 접하는 대본을 받아 들고 배역을 맡게 되면 대본을 차분하게 읽어나가는 것을 가장처음 하게 된다. 그리고 읽고 또 읽는다. 그럼 내가 맡은 배역의 감정의 흐름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화가 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한 그런 감정이 흘러간다.
그중 가장 중요하게 보는 보게 되는 부분이 감정의 흐름이 끊겨있는 부분이다.
예를 들면 맥락 없이 나오는 격한 감정이나 상황에 맞지 않은 이상한 말 같은 것을 이야기한다.
그런 부분을 만나게 되면 인물이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대복 속의 힌트를 쫓아 문제를 풀어간다. 하나의 퍼즐처럼 전체가 연결되는 감정을 찾아내는 과정은 마치 수학을 푸는 수학자 같은 마음이 들 정도다.
그러다 대본 속에서 힌트를 발견하지 못하면 상상 속에서 인물의 배경을 창작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지나고 나면 작품 속의 배역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순간에는 사랑하고 어떠한 순간에는 연민을 갖는다.
배역을 이해하기 위한 시간과 정보의 크기가 커져가면 커져갈수록 인물에 대한 애정의 깊이도 함께 깊어진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요즘 우리나라는 극심한 양극화를 겪고 있는 것 같다. 편을 가르고 나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에 대한 이해는 없고 그저 내편의 이를 위해서는 상대방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 일쑤다. 나와 반대편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무지성인 것처럼 생각하고 깎아내리기 바쁘다.
문제는 이런 현상에 편승해 부채질하는 손쉬운 매체들이 생겨나고(유튜브, 숏츠 같은) 그 소비는 알고리즘의 굴레에서 다른 이견은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모르는 사이에 마치 배우가 대본을 읽으며 인물과 친해지는 것처럼 나의 생각 속에 내적 친밀감을 끌어올리고 이제 더 이상 검증 따위 필요 없는 나의 편을 만들어 버린다.
'객관은 없다'
프로이트 이후 최고의 심리학자로 평가받는 구스타프융의 말은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다. 그렇다 사람에게 완전한 객관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객관적 시각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럼 객관적 시각을 갖는 것은 단순한 팩트체크로 가능한 것인가?
답은 '아니다'
우리가 문제의 원인을 안다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내문화를 만들고 문제를 해결하는 퍼실리테이터로 활동할 때 선행되는 것은 문제 진단이지만 문화를 만드는 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가 일어나는 사람들의 행동과 내적 동기를 파악하는 일이었다.
휴지통 주변에 쓰레기가 많아진다고 휴지통을 없애는 것이 문제해결이 되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다.
우리는 객관에 가까운 시각을 위해서 내가 좋아하지 않는 상대방의 시각과 시간을 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토론의 귀재인 '유시민 작가'는 본인의 유튜브 알고리즘에 극우 유튜버들의 콘텐츠가 많이 뜬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 비판을 하고 토론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해도 나의 생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그렇게 하면 상대방에게 이해의 공간이 생겨나고야 만다.
혹시 내 삶에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 있는가? 배우의 대본 읽기를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