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며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

오늘 나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나?

by 김배우

신은 언제 오는가? 어디로 오는가? 여기로 오기로 한 게 맞나? 오늘인가? 내일인가?

몇 가지 되지 않는 질문들로 1시간 30분을 꽉 채워 반복해서 질문하는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노인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과 대비되어 신을 찾는 인간의 모습을 더 비참하게 만든다.


작품을 보고 나면 헛웃음을 웃다가 허무함이 마음깊이 차오른다.


대학생시절 한 학기를 '고도를 기다리며'로 수업하고 토론했던 수업이 있었다.

그 당시 교수님은 이 허무하고 헛헛한 작품의 수업을 마무리하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인간은 태어나며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이다. 죽는 순간까지 시간을 미분해도 결국엔 그 죽음을 온전히 느낄 수 없다. 끝이 있는 삶을 끊임없이 미분하고 생명력을 태워 살아가는 양초 같은 존재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 인가? 허무하게 앉아 신을 찾는 존재로 남는 것이 아니라 유한한 시간의 현재를 살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때는 이게 말이야 방귀야 생각했다.

그런데 '현재를 살아야 한다'는 말은 기억에 남아 계속해서 나에게 말했다.


현재를 사는 것은 무엇일까? 그 뒤에 한참을 고민했다.



최근 나는 살아오며 가장 많은 실패를 경험하고 있다. 40대 중반이 되며 공연장에서는 대체하기 쉬운 사람이 되고 있다. 앙상블로는 경력이 지나치게 많고 화려한 몸을 쓰는 젊은이는 더 많이 유입되고 있다.

비중 있는 연기로는 너무 젊다. 경험과 경력을 살려 다른 쪽의 취직을 알아봐도 대표보다 나이가 많고 부장급 사람을 새로 뽑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 쓴맛을 겪으면 격을 수록 아픔을 격지 않기 위해서 미리 방어를 하기도 하고 고통을 경감하기 위해서 숏츠를 보거나 드라마를 보며 약을 마음에 마비가 되도록 마비산을 뿌린다.


고통으로 도망하여 과거의 쓸개를 핥기도 하고 때론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로 현재에서 미래로 도망치기도 한다.


그래도 현재를 사는 것은 말은 쉬운데 어떻게 해야 살 수 있는지 묘연하기만 하다.

현재 할 수 있는 눈앞에 있는 것을 하라는 말로는 다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만 하면 되는가?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슬픔은 슬픔으로 받아들이고 고통은 고통으로 받아들이며 느끼는 감정에서 도망치지 않는 것 오늘의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보다 선행되어야 할 일이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실은 감정이란 에너지다. 이 감정에 동력을 주지 않으면 우리의 행동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이루는가? 보다 더 앞서서 내가 가진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는 부분 그것으로부터 도망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는 배우로 연출로 오늘을 사는 것을 감정으로부터 도망치지 않는 것으로 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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