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과 용서

그때는 긁혔고 지금은 돌아보게 하는..

by 김배우

이창동 감독의 '밀양'은 개봉당시 보는 내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크리스천 대학생이었던 내게 용서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기도 전에 크리스천에 대한 비난으로 들렸다.

내가 배웠던 기독교의 용서는 값없이 주시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것은 면죄부도 아니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게 만드는 은혜다. 부끄러움에 죄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고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이 기독교의 용서에 대한 교리였다.

그 당시에는 이런 진심이 오도된 것 같은 느낌에 분하고 화가 났다. 진심을 오해받은 것 같아 배신감마저 느껴졌다.


그런데 요즘엔 많이 미안하다. 밀양에서 보여주던 용서의 뻔뻔함이 교회에 의해서 자행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부여하고 용서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용서를 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윽박지르는 모습은...


그리고 은혜라는 이름으로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기다 기리 보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힘으로 그것을 감춰버리고 해결해버리려고 한다. 기도의 무릎이 필요한 때 암실의 전화와 청탁으로 하나님이 하시기도 전에 모든 일을 해결하려 한다.


적어도 내가 경험해 오고 내 주위의 사람들의 삶에 기도의 응답이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기도로 매달릴 때 내가 원하던 방법을 뛰어넘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일을 해결하시는 분이었다. 당장 눈앞의 위험을 넘기기 위한 사람의 방법이 아니라 말이다. 심지어 은혜를 구할 집단이 카르텔이 되어서야 말이 되는 일이 아니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안하기는 해도 이제 더 이상 밀양에 의해 마음이 긁히지 않는다.


그것은 많은 이들이 아무리 호도하고 깎아내려도 결코 진리는 변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아무리 비난해도 그 가치가 깎여 내리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결국 나도 감추고 화내는 것보다 내 안의 진리를 진리로 살아내는 것이 나의 삶에 대한 예의이고 최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 사과를 전하고 싶다.

내가 기독교를 대표할 수는 없지만 크리스천의 한 사람으로

'용서'란 이름의 폭력으로 상처받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사과와 위로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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