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의 인물창조

공감을 통해서 캐릭터 감정의 연결선 찾기 - 무대경험을 중심으로

by 김배우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너무 부러워지는 순간이 있다. 공감하려는 노력이나 이해하려는 노력 조차 필요 없이 그저 그 인물이 되어있는 배우를 보게 되면 같은 배우로 너무 부럽다. 그는 어떻게 텍스트로만 존재하던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만들어 낸 걸까?

사실 위의 질문은 내가 배우 생활을 하는 동안 계속 따라온 질문이다. 심지어 지금도 그 질문에서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처음 시작할 때 책에서 읽고 많은 연출가들에게 들은 방법으로 허우적대던 그때보다는 훨씬 자유롭다. 그때 들었던 연출가들의 말이 이제는 조금씩 이해가 된다.




인물 창조의 전통적인 방법론은 크게 2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1. 배우 개인의 개성을 없애고 새로운 제3의 인물 만들기 일명 가면 쓰기

2. 인물은 창조하는 개인의 개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 속에 있는 특정한 것들을 인물로 적용하기


위 두 가지 흐름은 지금까지도 두가 옳은가를 따지기 힘들 만큼 많은 논쟁이 존재한다. 실제로 어떤 것이 더 높은 차원의 연기인가 하는 논쟁이 뜨거운 감자처럼 배우들의 술자리의 노가리가 되곤 한다. 물론 나의 개인적 견해는 연기의 방법론보다는 연기하는 개인의 차에 훨씬 더 큰 비중으로 연기력이 평가된다고 생각한다. 가면 쓰기를 하더라도 너무 기막힌 가면을 만들어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연기자들도 실제로 존재하고 내면의 정서 기억으로 시작해 최상의 연기를 만들어 내는 배우도 실제로 존재한다.(여기서 이야기하는 자신에서 시작하는 배우는 모든 연기를 해도 자신밖에 보이지 않는 배우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좋은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배우 자신에게 좀 더 잘 맞는 옷을 선택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결국 이 둘의 사조에서 연기를 사직하더라도 결국에는 어떤 한지점에서 서로의 방법을 찾을 수 밖에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내 경우 연기는 가면 쓰기에서부터 시작했다. 키가 작고 몸집은 좀 있으나 생각보다 몸을 잘 쓰는 배우가 할 수 있는 배역의 스펙트럼은 그리 크지 않기에 처음의 시작은 감초 연기에서부터였다. 대부분은 빠른 감정 전환과 극의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 높은 에너지로 시종일관 무대를 누비는 역할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평소 목소리도 그리 크지 않고 에너지도 넘치지 않다고 생각했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방'이었다.


최대한 인물과 닮은 사람을 찾아내 그의 행동과 말투를 모방하는 것이었다. 마치 이 세상 사람 같지 않던 노홍철의 초창기 같은 모습을 많이 연구했다. 내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예상하지 못하는 반응을 하는 모습을 보며 그의 에너지를 그의 반응을 많이 따라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모방만으로는 완벽한 인물을 만들어 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소리를 지르거나 에너지 있게 무대 위에서 뛰어다녀도 인물이 가지고 있는 진의를 발견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분명 에너지가 있는데 방향성이 없어서 그 높은 에너지가 여기저기로 다 새 나가는 느낌이었다. 마치 화를 내는 사람을 만나면 나 역시 화가 나거나 그의 분노가 두렵다거나 하는 느낌이 있어야 하는데 길가다가 멀찌감치 마주친 사람을 대하는 느낌이었다. 나에게 모방은 뼈 없는 살만 있는 사람 같았다. 근육도 있고 살도 있는데 뼈가 없어 일어설 수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결국 모방은 다음은 인물의 배경에 대한 list up이었다. 그는 어디서 태어났는가? 그의 어린 시절은 어땠는가? 부모님은? 자라난 환경은? 배우의 수준은? 여성 취향은? 밥을 먹는 식습관은? 현재 상황은 어떤가? 그는 어떤 감정을 가지고 어떻게 반응하는 사람인가? 그는 여기서 왜 이렇게 반응했을까? 대본은 점점 새카맣게 변해갔다. 여기저기 이것저것 적어놓은 글들이 대사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메모하고 생각하다 보니 내가 표현해야 하는 배우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왜 화내는지 알 것 같았다. 어머어마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자신만만 하게 연습하는 장소로 갔지만 결국 나에게 돌아온 머뭇거리며 무대 위에서 우왕좌왕하는 나의 모습이었다. 생각은 분명 이해됐는데 그를 무대 위에서 표현하려 하니 꼭 한 박자씩 느리게 나오거나 여전히 에너지가 없는 연체동물처럼 느껴졌다.

연출선생님은 나에게 소리쳤다

"생각하지 마 느껴!!"

나는 속으로 '어제는 생각 없이 연기하지 말라며'라고 한숨을 쉬었지만 아무것도 표현하지 못하는 배우는 그저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연습이 중간 쉬는 시간에 연출선생님께 가 물었다.

"분명 그의 행동도 마음도 이해가 되지만 표현이 되지 않아요"

연출가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불쌍하다고 느껴서 그에게 다가가 말을 붙이고 도움을 주는 것은 크게 다른 거야"

나에게 이 말은 사람을 이해하는 것과 공감하는 것의 큰 간극이 존재함을 알려 줬다. 누군가 세상에서 가장 긴 여정이 머리에서 마음까지라고 했던 것처럼 아직 진정한 인물을 찾고 표현하는 것은 멀고도 험난한 길이었다. 과거에 내가 느꼈던 아픈 경험을 갈무리해서 그의 아픔에 공감해보기도 하고 영화나 연극을 통해서 자극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거리로 나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아픔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면서 마음속에 그의 아픔과 정서를 갈무리했다. 그러면서 내가 표현하는 인물의 아픔과 정서를 점점 나의 것으로 만들어가기 시작했을 때 봐줄 만한 인물이 창조되기 시작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인물 창조의 프로세스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모방 단계는 실패한 과정으로 처음 단계에서 제외하기로 한다)


1. 인물의 배경 분석 list up

2. 대본 분석 - 인물의 action과 reaction 이해하기

3. 인물의 전반적인 이해

4. 표현을 위한 인물의 정서 동의 단계


바로 위의 4단계에서 앞서 말한 2가지 사조(모방과 동의)의 표현방식이 나뉘게 되는데.. 경험상은 위의 방식을 따르다 보면 결국에는 2가지를 다 따르게 된다. 경험에 따르면 두가지 사조는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치이이지 Why(동의)와 How(모방)의 구분되지 않은 연결된 지점 같게 느껴진다. 나의 감정과 동의가 Why? 왜 이렇게 되는 가에 대한 감정에너지의 방향을 결정한다면 모방 같은 Mask를 통해서 정제된 표현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국엔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의 문제처럼 나에게 맞은 개인의 방식을 찾아보는 노력이 필요한 영역이다. 연기자는 최소한 그 정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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