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도대체 언제 보고 배운거니?

by 김배우

4번, 하루에 거실을 정리하는 횟수다. 코로나가 시작된 후로 아이는 어린이집에 갈 수 없었다. 부부가 둘 다 프리랜서다 보니 긴급 보육이 가능한 어린이집에 가지 못한 지 벌써 4달째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밥을 챙겨 먹이고...(사실 먹이는 것도 쉽지 않다) 돌아서면 눈에 보이는 모든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 시작한다. 그리고 15분 정도가 지나면 실증 내며 눈에 닿는 장난 감을 꺼내 놓기 시작한다. 물론 좋아하는 장난감의 종류는 정해져 있지만 그것을 꺼내는 순서는 정해져 있지 않다.


외동을 키우다 보니 친구처럼 놀아주고 싶지만.. 그저 마음만 굴뚝일 뿐 1650일이 조금 넘은 아동과 재미있게 놀 수 있는 40살 아빠는 많지 않을 것 같다. 열심히 놀 수 있는 한계는 1시간 정도인 것 같다. 그리고 1시간이 지나면 가지고 있는 인내심에도 한계가 차오르고 그때부터 시작되는 아들의 실수에 인색해진다.


뜨거운 것이 있으니 주방에는 오지 마! 지금은 밥을 하는 중이니 주방으로 오지 마세요!! 아빠 칼질 중이니 발을 붙잡지 말라고!!!


'이놈!!!!!'


위의 과정이 일어나는 시간이 채 5분이 되지 않는다. 요즘 에버랜드에 새로 태어난 아기 자이언트 판다 '푸 바오'에 빠져 자기가 푸 바오라며 자꾸만 사육사 할아버지 발에 매달리는 놀이를 하자고 하는데 그때는 꼭 뭔가 자신과 놀지 않고 다른 일을 할 때다. 얼마나 관계를 하고 싶어 하는 지도 알겠는데.. 그것을 충족시켜주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머리로 아는 것을 실천하지 못한다면 그건 모르는 것일지도..)




사건은 점심시간에 일어났다. 후딱 후딱 준비해서 평화로운 점심시간을 예상했지만 아들은 예상을 뒤엎고 장난을 치다가 자신의 밥그릇을 바닥으로 떨어뜨렸고 결과는 처참했다. 산산조각이 난 밥그릇 조각은 보이지 않는 곳곳으로 퍼져나갔고 평화로운 점심시간은 차갑게 식어버렸다. 소리를 지를 뻔 한 순간을 가깟으로 참고 크게 숨을 쉬고 빠르게 정리를 시작했다.

그러자 정리를 하며 뛰어나가던 화가 조금은 누그러져 조용하지만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교과서에 나오는 소리) 훈육을 완료할 수 있었다.


보통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고 와다다 이것저것 쏟아내고 나면 아들은 마음을 닫아버렸는지 고집을 피우며 잘 못했다는 소리를 하지 않고 생각하는 방에서 한참을 나오지 못하기 일쑤였는데 조용하고 낮은 소리로 이야기하자 생각보다 빠르게 수긍하고 잘 못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아내가 점심상을 치우며 지나가듯 슬쩍 말을 던졌다. '정말 아빠하고 아들하고 똑같아~' 웃으며 이야기했는데 그 말이 오래 가슴에 남았다.

나이가 들어서도 누군가가 화내며 이야기하거나 혼내듯 이야기하면 절대 그 말을 듣지 않는데..(다들 그렇겠지만 나는 병적으로 그것을 싫어한다) 나는 그것을 아들에게 똑같이 하고 있었다니 웃긴 일이다. 아니 가슴 아픈 일이다. 그렇게 싫어하게 된 이유도 그런 일을 많이 격었기 때문인데.. 나도 동일한 방식으로 아들을 교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내가 마음에서 나온 대로 생각이란 것을 하지 않고 아들을 가르친다면 결국 관성으로 인해 윽박지르게 될 것이란 사실이다. 아들을 내가 자란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키워내는 데는 많은 에너지가 들 것 같다. 지금도 코로나라는 복병을 만나 고전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렇지만 오히려 전화위복으로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진 만큼 내 밑바닥을 자주 보게 되는 건 오히려 감사한 일이다. 감춰지지 않는 내 바닥을 보는 일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것이 흘러가버린 아들에게 더 좋을 것을 줄 수 있는 계기가 될 테니 말이다.




아 그리고 저렇게 밥그릇을 깬 아들을 30분 후에 두유를 달라더니 그것마저 엎어버렸다! 물론 그때는 호흡을 두 번이나 삼켜내야 했다는 후문이......


아들이라서 그런가요? 애들을 다 그런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