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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배우 Apr 10. 2019

To be or not to be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덴마크의 한 성벽 호위병들에게 나타난 '유령' 자신의 죽음의 억울함을 이야기하는 그의 이야기가 성 전체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동생에게 죽음을 당한 자의 억울함. 놀랍게도 유령은 자신을 '왕'이라고 이야기한다. 

 현재의 왕이 형을 죽이고 왕이 된 것인가? 그렇다면 햄릿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에게 충성하고 전쟁을 한 것인가? 이제 그는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햄릿의 시작은 유령의 등장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너무나도 유명한 저 대사가 마음에 와 닿지 않았던 건 나뿐이었을까? 마치 아버지의 복수를 해야 하는 자신의 운명 앞에 자신의 죽음과 삶을 고뇌하는 듯한 뉘앙스였지만... 

 나중에 'be'의 쓰임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에 햄릿의 고뇌가 공감이 가기 시작했다. 

 햄릿은 내가 죽느냐 삼촌이 죽느냐 하는 고뇌를 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물론 복수가 시작된다면 그런 고민이 맞을지도 모르겠다)그러나 좀 더 자연스럽게는 앞서 이야기한 성벽에 나타난 유령의 존재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대한 고민이었다..

 'be, 존재하느냐 not to be, 존재하지 않느냐'

 피의 복수 앞에서 그는 삼촌에게 복수해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유령'의 실제와 비 실제를 놓고 고민하는 것이다. 믿을 것인가 말 것인가?

 복수와 억울함의 감정이 타오른 상태에서 그 폭발적 에너지가 흘러갈 방향을 결정하는 그 지점에서 햄릿은 고민하는 것이다. 유령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처음 번역하신 분이 아마도 많은 생각을 가지고 계셔서 생각의 흐름을 두 번이나 건너뛴 느낌이다.

 어쩌면 일반인의 희곡 읽기가 어려워진 이유가 이런 곳에 있지 않나 싶다. 텍스트 안에 생략된 부분이 많아 그것을 상상력으로 채우지 않으면 좀처럼 살아나질 않는다. 특별히 희곡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안톤 체호프', '셰익스피어', '아서 밀러', '사무엘 베케트' 등등 이름 좀 있는 희곡작가들의 작품에는 특별히 숨어있는 context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고전작품들은 문턱이 높은 대신 재미를 붙이면 좀처럼 헤어 나오기 힘든 마성이 있다. 국가가 허락한 마약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사람들이 글을 읽지만 독해능력이 현저히 떨여졌다는 평가를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었다. 마치 티브이를 틀어 놓고 이것저것 하면서 프로그램이 끝이 나면 나는 그것을 본 것처럼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이야기이겠지... 사실 나도 티브이를 켜놓고 여러 가지 작업을 동시에 하는 경우가 많다. 나중에 뇌과학자가 사람의 뇌는 멀티태스킹을 하지 못하고 그저 빠르게 기능을 전환하는 것이라고 알려주고난 다음 왜 이렇게 여러 가지 일을 한 번에 처리했을 때 피로감이 빨리 오는지 알게 됐다. 


 각설하고 직업(연출과 배우)이 직업이다 보니 희곡을 읽을 일이 참 많다. 그래서 문장과 문장 사이의 숨어진 내용을 추적하고 찾아내는 것은 필연이 되고 말았다. 의미 없이 주고받는 대사 속에서 6명이 넘어가는 등장인물들의 속마음을 추적해서 죽어있는 장면의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작업은 정말 예술에 가깝다. 집중해서 문장을 읽어나가고 문장과 문장 사이의 비어있는 감정 '(사이)'라고 적혀있는 대본 지문은 정말이지 멀미가 날 정도로 재미있다. 


 이런 비슷한 택스트를 가지고 있는 책이 '성경'이다. 예를 들어 보자. 공간 복음서에 나오는 수가성의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의 대화는 선문답에 가깝다.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 수:  물을 좀 달라


사마리아 여자: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예수 :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여자 :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예수 :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자 :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예수 :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여자 :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예수 :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여자 :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 소이.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가 물을 달라고 하자 여인이 유대인이 어찌 사마리아인에게 물을 달라 하냐고 한다. 그리고 예수는 자신이 샘물이라고 한다. 그리고 남편을 데려오라고 한다. 여인은 남편이 없다고 하고 예수가 맞다고 이야기하자 여인이 갑자기 어디서 예배를 해야 하냐고 묻는다. 이 대화의 주제가 하도 변화무쌍하다. 

  그렇다면 여기서 여러 가지 콘텍스트를 대입하여 읽어보자 그러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자 

사마리아 정오는 40도가 넘어가는 날씨라 아무도 물을 길으러 나오지 않지만 여인은 굳이 그 시간에 물을 길으러 나온다. 

Why? 뒤에 나오지만 여인에게 남편을 4번이나 바꿔서 주변에서 평판이 나빴고 사람 들고 마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는 곳에 물을 뜨러 왔으나 우물가에 사람이 있었다. 사람을 마주치기 싫었으니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물을 달라고 하고 자꾸만 말을 시킨다. 그녀는 어떻게 반응을 할 것인가?

자신의 조상인 아브라함(시조 같은 존재 마치 박혁거세나 김수로 같은 존재) 보나 높다는 투로 이야기한다. 이 미친 사람 뭐임?

그러더니 내 가장 수치스러운 부분을 물고 늘어진다. 남편을 데려오라네 꼭지가 팍 돌았다

빨리 자리를 피하려 대답하고 가려했더니 내 속사정을 알고 있어 헐 대박 님 뭐임!! 점쟁이임??


 이렇게 이야기의 서브텍스트를 넣어보면 이 이야기의 흐름은 긴장감 넘치고 흥미진진 해진다. 여기저기 넘쳐나는 독서교육이 참 많은데 나는 단연코 희곡을 제대로 읽기 시작하면 사람들의 독해력에 어마어마한 진보가 있을 것을 확신한다. 


 요즘 들어 배우(정확히는 연예인 또는 인플루언서)가 아이들의 선망의 직업 중 하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통계에도 자주 등장하고 그래서인지 최근 배우를 하겠다는 친구들을 많이 보는데 역시나 독해력이 많이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독해력을 높이고자 하는 의지는 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체계적인 희곡 읽기 수업을 받으면 참 좋겠다. 단순히 무대를 위한 희곡 읽기가 아니라 글을 읽기 위한 희곡 읽기를 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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