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배우 Apr 15. 2019

공유 정서

한 가지 사건에 같은 생각 But 다른 반응 - 판단을 유보하기

 나 어릴 적(82년생) 교회는 유년부(1, 2학년), 초등부(3, 4학년), 소년부(5, 6학년), 중등부(중학교 1,2, 3학년) 고등부(고등학교 1,2, 3학년)로 구성되어 있었다. 유초소년부를 거치면서 늘 한 학년 밑이나 위의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왠지 2년 위의 선배들은 좀 더 좋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고 그들과 한번 교류하고 놀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그보다 더 위는 넘사벽처럼 먼 존재들처럼 느꼈었다) 그러다 중등부가 되며 자연스럽게 2학년 위의 형, 누나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돌아왔고 또 2살 밑의 동생들과도 함께 활동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다.

 그때 '각 학년별로 특유의 특징이나 색깔이 있다'는 어렴풋한 생각이 들었다. 80년 대생들은 3월의 봄 새싹처럼 각자의 독특함과 생동감이 있었지만 그들이 하나로 모이는데 큰 어려움이 없이 끈끈하게 모이는 것처럼 보였고 81년생들은 풀뿌리 민주주의처럼 파벌이 존재했지만 각 세력별 특징이 너무나 뚜렷해 보였다. 반면 82년생(내가 속한 이들)은 파스텔톤처럼 각각 힘 있게 뭔가를 해나가지 않지만 누구와도 잘 어울리고 우리끼리 함께 있어도 어색함이나 튀는 느낌이 없었다.(물론 모든 느낌은 나의 주관적인 느낌이었고 위에 나온 특징은 세대의 특징이 아니라 내가 다녔던 교회의 학년별로 가진 특징이다)




 비슷한 시대를 살아가는 80년~82년생들은 X세대와 밀레니얼 사이 어딘가의 감성을 담고 있을 텐데도 그 사이의 다름이 존재한다.

 물론 내가 속했던 그 조그마한 교회학교가 80~82년생을 대표하는 집단일 수는 없다. 그렇지만 집단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사회정서를  가지고 있는 집단 안에서의 다른 모양으로 발현되는 성격은 주목해볼 만한 시사점이 있다.


 배우가 인물을 창조할 때 흔히들 빠지는 유혹이 있다. 캐릭터를 만들 때 고민을 덜하고 싶은 욕망이 그것이다. 일상적인 일반화, 인터넷만 뒤지면 알 수 있는 세대의 특징을 가지고 흔한 반응으로 연기하고 싶은 욕망이다.

 사실 이 것은 배우들만 유혹하지는 않는다. 이 것은 모든 사람의 뇌를 유혹한다. 우리 뇌는 외부로부터 정보가 들어오면 빠르게 판단하고 분류를 해버린다. 뇌는 이런 정제되지 않은 불확실성을 잘 견디지 못한다. 오랜 시간 동안 불확실성을 견디고 일반적인 반응을 제거하면 배우는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다. 일반적이지 않지만 맞아 바로 저 거지 손바닥을 칠 수 있는 그런 연기가 가능해진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들의 이야기를 좀 더 해보면 마지막 국민학교를 다녔고 모두들 H.O.T와 젝스키스에 열광했고 태진아와 서태지와 아이들이 같은 프로그램에서 서로의 팬층을 두고 순위 경쟁을 하던 시대를 살았다. 또 광역시에 살았지만 상대적으로 발전이 디뎠던 전라도의 광주에 살고 있었으며 심지어 IMF의 경제 위기 상황을 함께 격었다. 살고 있던 동네도 비슷해서 경제적인 격차도 그리 크지 않았으니 어쩌면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배경은 동일한 부분이 너무나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 중(82년생) 누군가는 전교 학생회장을 할 정도로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친구도 있었고 친구들 사이에서 말도 잘하지 못할 정도로 수줍음이 많던 친구도 있었다.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지만 결국에 세상에 반응해 나가는 방식은 모두 달랐던 것이다. 

 좀 더 나아가면 초등학교 동창 중에 일란성쌍둥이가 있었다. 하루는 그 둘을 집으로 초대해 함께 놀았던 적이 있었는데 한 명은 우리 집에 있었던 콘솔 게임기에 미쳐 집에 가지 않으려 했고 한 명은 집에 있던 책을 보고 집에 가지 않으려 했다. 실제로 그 둘은 얼굴은 똑같았지만 하는 행동과 좋아하는 것이 너무나 달랐다. 공부보다는 나가서 공을 차는 것을 좋아했던 Y와 책을 좋아하던 S는 쌍둥이는 생각하는 것 먹는 것도 똑같을 것 같다는 내 편견을 무너뜨린 친구들이기도 하다. 

 쌍둥이는 교회학교 친구들보다 훨씬 많은 부분의 배경을 공유한다. 가정환경(부모님, 경제여건, 사는 곳 등등), 먹는 것, 보는 것 등 훨씬 더 많은 환경을 공유한다. 그러나 그들이 하는 행동(반응)은 너무나도 달랐다. 완전히 다른 인격체로 행동했고 반응했다. 




 연극 이야기로 돌아와 보면 대본을 받고 읽다 보면 초등학생이 읽어도 이해되는 상황이 존재한다. 아 이 사람이 화가 났구나 지금 화를 내고 있구나 하는 상황들이 존재한다. 그럼 배우들이 장면을 만들 때 화를 낸다고 이리저리 날 뛰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 되는 것일까? 

 아니다. 누군가는 화가 난 상황에 오히려 더 냉정하고 차가워지기도 하고 때로는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의 에너지로 화를 내기도 한다.(가끔 주변에 맥락 없이 화를 내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때로는 화가 나지만 억지로 참기도 한다. 화를 표현하는 방법은 너무나도 다양하다. 내가 표현해야 하는 인물의 섬세한 분석이 이런 디테일의 승리를 가져온다. 

 '대본을 끝까지 놓지 않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연극계에 공공연하게 전해 내려오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명언이다. 이 말의 핵심은 바로 판단을 유보하고 가능성을 열어둔 채로 계속해서 작품과 인물에 다가가다 보면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비단 이 이야기는 연극계에서만 통하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판단을 유보하고 가능성을 열어두고 진의와 핵심을 파악하기 위한 작업은 모든 사람들의 문제 해결 방식에 필요한 요소가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To be or not to b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