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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브 Jul 09. 2020

맥시멀리스트는 버리는 방법을 모른다

나는 아직 이별의 준비시간이 필요해

각자 자신이 원하는 방 혹은 공간의 모습이 있을 것이다. '섹스 앤 더 시티' 캐리의 옷방, 젠지 스타일의 거실, 북유럽풍의 인테리어, 해방촌 루프트 탑, 을지로 뒷골목 지하 바, 힙한 바이브 Whatever. 이게 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그래, 그런 건 사실 중요하지 않다. 알고 있으면 좀 더 내 취향을 다듬거나 변형해 나가기 쉬울 뿐이다. 아, 그래서 내 꿈의 공간은 무엇이었냐고? 음... 그러니까.... 하울의 움직이는 성.


브런치를 시작했다고는 알려야겠는데 링크를 공유하기엔 어쩐지 치부 같았다. 아니, 이게 뭐 치부일 게 있나?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이 있는 건데! 그치? 맞아 맞아. 그렇게 나는 링크를 태웠다. (오.. 나의 오른손아..) 이후, 지인들이 이사 가느냐부터 물건을 먼저 버리라는 둥의 애정 어린 안부와 걱정과 조언을 들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저는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안 하는 거죠. 애초에 미니멀 라이프를 선언하며 모든 물건을 처분할 생각이 없었다. 내 목표는 삶을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변화시키겠다가 아니다. 지금보다 조금 더 만족스러운 지점을 찾고자 함이다. 다시 말해 나는 이미 누군가의 '미니멀 라이프'를 모방하고자 함이 아니다. '나의' 미니멀 라이프를 찾고자 함이다. 저에겐 *카루시파가 없는 걸요.


*카루시파 :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오는 불의 악마. 그의 입김 한 번이면 집안 구조며 인테리어며 싹 바뀐다.






그래, 나에게 최적화된 환경을 만들어보자! 우선 거실을 좀 정리해 볼까?


아.. 아니, 방부터 정리하자.

(이 비누에 대해선 다음에 더 자세히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정리의 첫 번째는 버림/비움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하야 시작된 '보물찾기'시간! 그러나 당차게 소리친 것이 민망할 정도로 구석구석 찾지 않아도 되었다. 금광 노다지 같은 내 방은 발이 차이도록 사금이 굴러다니고 있었으니까. 이번 주에 정리한 그 사금 몇 가지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1. 사우디 친구가 남기고 간 세상 요지경 방석 2개

석유 왕자와 함께 한 행사가 있었는데, 당시 사우디 친구가 가지고 온,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이 배송한 물건 중에 하나다. 행사가 끝나고 요란한 패턴과 방울들이 마음에 들어 집으로 가지고 왔다. 데코로도 좋고 아주 흡족하게 잘 사용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테이블과 높이가 맞지 않았다. 방석 위에 앉아있으면 등을 굽히고 밥을 먹어야만 했다. 눈요기로 계속 두고 있다가 벽에 세워만 두는 것이 아쉬워 큰맘 먹고 정리하기로 했다. 안녕, 미셀(가명)! 너와의 추억은 이제 다음 만남까지 이 사진으로 잘 간직하고 있을게!



2. 멋진 꽃다발에 묶음 끈

그러니까 왜, 왜 가지고 있었느냐고 묻지를 마라. 그땐 너무.. 멋져 보였으니까! 흔히 비단 꽃주름 잡힌 혹은 반짝반짝 은박지 빵끈이 아닌 이름 모를 풀떼기로 스윽스윽 묶어주는 스웨그에 반해서 고이고이 모셔놨다. 다음번 누군가의 선물에 묶어 활용하려던 계획과는 달리 화단에 툭, 테이블 위에 툭, 방 여기저기 툭툭 바삐 옮겨다녔다. 올려놓기만 해도 없던 '힙'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굉장하지 않은가? 자연의 힘이 이렇게 위대하다.



3. 선물 받은 조말론 향수 케이스

누군가에게 처음 받아 본 선물은 잘 사용함과 별개로 허투루 버리기가 망설여진다. 심지어 그게 속 빈 케이스라 할지라도. 특히나 나는 이 '케이스'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수집력이 있는데, 아직 애플 4 총사 케이스, 옛 사수가 출장 중에 사다 준 프라다 지갑 케이스, 오른쪽 어금니 임플란트 후 눈물 흘리며 구매한 워터픽 케이스 등 구구절절 사연이 붙어있는 케이스가 선반 위에 각 잡고 모셔져 있다. 아직 어딘가 '쓸모가 있어 보이는' 이 빈 사각형들과 곧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 



많은 것을 정리하지 못했는데도 벌써 방한 켠 휑한 기운이 쓸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리해봄직한 물건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다음에 곧 읽어야지 했던 책들, 아직 아까워- 하며 족히 2년 넘게 입지 않은 옷들, 10여 년간 모아 온 브로셔, 앞으로도 영영 풀지 않을 문제집. 여러분들의 집엔 어떤 사연의 물건들이 있을지 사뭇 궁금해지는 날이다.



처벌에 가까운 눈물겨운 정리 과정은 인스타그램의 계정으로 남기고자 한다. 나의 빵부스러기 같은 흔적들은 물질이 아닌 데이터로 정리하여 기록하여 추억할 예정이다.

@iyob.maxminim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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