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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브 Jul 02. 2020

맥시멀리스트의 미니멀 라이프

소유하지 말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내가 이렇게 많은 물건이 필요한가?


 "환경 때문인가요?"

누군가는 그리 물어볼 수도 있겠다.

미세먼지, 수질오염, 죽어가는 동식물들, 기이한 날씨와 질병


글쎄, 내가 그렇게 자애로운 사람이던가? 내 삶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온 힘으로 지구를 지킨다는 것은 어딘가 대쪽 같은 위인들이 하는 일처럼 보인다. 나는 소시민으로 그런 모습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보통의 인물이다. 지금도 무엇인가 해 보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여전히 게으름이 커 실천할 수 있는 최소한을 고민한다. 큰일이 아니라 내 생활에 불편함 없이 혹은 귀찮아서 안 할 리 없는 정도의 딱 그 정도의 움직임. 그러니까 뭔가 대단한 게 아니라는 거다. 


그 시작은 계절이 바뀌면서 내 방을 한 차례 뒤엎은 날이었다. 나는 종종 마음이 뒤숭숭하거나 계절이 바뀔 때면 기분이 내키는 데로 대형사고를 치곤 하는데 그중 집안 구조를 바꾸겠다고 모든 물건들을 뒤엎는 일은 이제 연례행사가 되어버렸다. 그러니까 꽤 빈번하게 일어나서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그 여느 날이었다. 너무 익숙한 상황이어서 다를 리 없는 광경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생각인지 마음인지 아무튼 내 어딘가 한구석에서 일어난 작은 의구심이었다. 내가 이렇게 많은 물건이 필요한가? 갑자기 집이 아니라 짐을 얹고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잦은 이사로 몇 차례 눈물 흘리며 적잖은 양을 처분했음에도 불구하고 화수분처럼 튀어나오는 그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내가 아주 이상한 생각을 품은 것이다. 보고만 있어도 배부른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위에 더부룩하게 남은 음식처럼 부담스럽기 시작했다. 불손한 생각에 놀라 정리가 안되서라는 근거를 제시했다. 집이 정리가 안돼 너무 어지러워서 일거라고. 두 달 반을 새벽 퇴근하며 관리하지 못하게 되자 침대엔 잠들지 못하는 나 대신 바지가 누워있고, 의자엔 컴퓨터가 앉아있고, 방바닥엔 책과 노트, 옷들이 동묘 옷시장과 풍물시장을 섞은 것처럼 쌓여있었다. 프로젝트가 끝난 후, 쏟아져 나온 것들을 집안 곳곳 잘 넣었다. 깨끗했다. 반듯하게 정돈된 책상, 시원한 환기, 빼곡하게 들어간 책장.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많은 물건들은 나의 마음만큼이나 높은 산이 되어 있었다. 높아지는만큼 성장하는 것 같았고 넓어지는 만큼 풍족했다. 그렇게 흐뭇하게 보는데 그 높은 산이 곧장 산사태가 일어나 나에게 쏟아질 것만 같았다. 어, 이거 뭐지?




왼쪽부터 차례로 2012년, 2013년-(생략)-2020년




어머니와 아버지가 뒷목 잡고 쓰러질만한 사진과 함께 밝히는 것도 우습지만, 나는 이미 자타공인 맥시멀 중의 맥시멀 리스트 다. 철새처럼 집을 옮겨 다니는 1인 가구임에도 불구하고 10년을 넘도록 졸업한 고등학교의 교복을 가지고 있으며, 커피포트와 티포트가 있는 주방을 거쳐 재봉틀에 좌훈기가 놓인 거실을 너머 화분 18개와 LP플레이어, 워크맨, CDP, 아이팟, 에어팟, 카카오미니를 보유하고 있다.(나는 음악 관련 종사자도 힙한 리스너도 아니다.) 어릴 적 '보부상'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온갖 잡동사니를 안고 산지는 30년이 넘었다. 취미로 티켓을 모으고, 엽서를 모으고, 브로셔를 모으고 온갖 자질구레한 것들을 꾸물꾸물, 꾸역꾸역 늘렸다. (심지어는 모으다 못해 만들기까지도 한다.)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10만 권의 장서로 빼곡히 거실을 채우고 싶었고, 이사할 때마다 "혼자 살지만 일반 가정집 살림을 가지고 있어요."라고 설명하며 굽신거려야 하는 것은 꿈을 위한 대응책이었다. 이렇게 열거해도 다 쓰지 못해 아쉬운 것이 내 마음을 절절하게 만드는데 이쯤이면 병이 아닐까 의심스러운 지경인 거다.




1인 가구라고 해서 1톤 트럭을 불렀는데, 짐이 많아 트럭이 2번 움직여야 했던 2014년 어느 이사하는 날




장바구니에 담긴 물건만 324개


나는 물질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한다. 며칠 혹은 몇 달을 바쁘게 보내다 잠깐의 여유가 생기면 보상심리처럼 괜히 인터넷을 활보한다. 알라딘에 들어가서 신간 책도 좀 확인하고,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세상과 너무 동떨어져 살고 있었어- 하며 뉴스를 보다가 쿠팡이나 공연 티켓을 검색하고 있다. 5시간 동안 무선 키보드 2-3가지 모델을 고민하다가 아, 텀블러를 살까? 그러다 결국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시간만 지출해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알라딘 장바구니에는 책이 238권이 들어가 있고, 쿠팡 장바구니에는 32개의 물건이, 자라에는 54벌의 옷과 악세서리들이 담아져 있다. 장바구니에 담긴 물건들은 정말 갖고 싶어서, 다른 물건과 비교하고 싶어서, 당장은 아니지만 곧 필요해서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상황에 대한 정리는 정확하게 하나였다. 지금 당장 필요 없다. 정말 필요해서 구매할 땐 단순하고 빠르게 결정하지만, '그냥' 이란 이유로 얼마나 많은 곳을 목적 없이 헤매고 다녔나. 그리고 그 '그냥' 이뻐서, 혹해서, 저렴해서, 합리적이어서, 등의 의미를 부여해 손에 쥐고 등에 업고 나는 얼마나 윤택한 삶을 살고 있나. 지금까지도 여전히 내가 씌운 포장지가 멋지다며 6년에 한 번 쓸 순간을 위해 버리지 못했다. 이 모든 것들이 '물건'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그게 뭔데?




내가 줄일 수 있는 최소한은 얼마큼 일까?


<미니멀리즘: 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두 청년을 중심으로 큰 흐름이 이어지지만 여러 사람들의 삶의 형태를 보여준다. 그들이 세미나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누군가 미니멀리스트의 삶은 좋지만, 본인은 안된다고 한다는 거다. 자신은 책이 너무 좋고 그 책들의 냄새, 질감, 느낌, 그 책을 친구에게 빌려주며 후에 같이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좋다고. 청년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그럼 가지고 계세요. 그 책은 당신에게 가치가 큰 것 같아요." 이렇게 관대할 수가?! 그동안 미디어에서 본 '미니멀리스트'들은 세상에 덜렁 나와있는 것처럼 하나같이 집안 모든 물건들을 정리하고 방 한가운데 몸만 있었다. 몇 년 전, 어머니가 나에게 보내 준 기사는 캐리어 두 개에 짐을 넣고 사는 여자의 이야기였다. (어머니, 저의 짐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계시면서 28인치 캐리어 2개라니요? 저는 알라딘이 아닌걸요.) 하지만 누군가는 버리는 것이 너무 싫어 본인이 절대 버릴 수 없는 물건들을 정리하여 작은 집을 만들어 모든 것을 넣고 다닌다. 달팽이처럼! 자신이 생각하는 본인의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환경. 그렇다면 나의 최소한의 범주는 어느 정도 일까? 이건 내 인생에 큰 질문과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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