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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영어공부를 해야 하는데 영- 하기가 싫고, 그래서 좋아하는 것들을 섞어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시작되었습니다. 가벼운 낙서와 함께 제가 남겨두고 싶은 소소한 이야기 혹은 그 문장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에 대해 풀어냅니다. 그러니까 영어공부를 목적으로 쓰는 글이지만 영어보다 한글이 더 많은 글입니다.
나를 제일 먼저 알아봐줘야 하는 사람은 '나'지만 그렇지 못하는 날들이 많다. 아주 간단하게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내가 나를 잘 안다'라고 생각하는 까닭에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멍청이, 이 게으른 생물아 라고 생각해버리는 순간, 나는 당장 콧물이라도 흘려야 할 것 같다.
2m를 뛸 수 있는 벼룩을 0.5m 컵에 10분만 덮어두면 컵을 벗어나서도 0.5m만 뛴다고 한다. 운이 나쁘면 평생을 0.5m의 가능성으로만 살다 죽을 수도 있다.
미래의 나를 가두는 벽은 정말 남이 만든 것일까?
나는 늘 게으르고, 소름 끼치는 창의력도 없고, 재능이라곤 쥐어짜도 3그램 남짓이 겨우 일거라 생각했다. 인정받지 못했던 오랜 시간들이 그랬고, 몇 년 간 회신되지 않는 이력서의 거절들이 그랬고, 답답한 마음에 찾아간 신촌 사거리에 사는 점집 도령이 전생에 재주가 없는 목수였다는 말이 쐐기를 박았다.
신촌 도령의 말처럼 재주가 없는 목수라 그래도 빌어먹고는 살아야 해서 연장을 손에 쥐고 꾸역꾸역 그 팔자를 이어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떤 일이든지 독기로 악으로 버티는 것 외엔 방법을 몰랐다. 남들 눈에 보이는 순간적인 화려함이 빛을 잃고 텅 빈 속이 들킬까 봐 매일 전전긍긍해가며 붙잡고 살았다. 운이 좋게 드문드문 쌓은 이력들로 내세울 건 경력뿐이라, 경력에 비해 일을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일에 대한 자격지심이 늘 따라붙었다. 그래서 서로 상쇄되어야 하는 불안감과 자신감이 같은 크기로 커졌다.
이런 나의 마음을 녹였던 강렬한 사건은 마지막 도전이라고 생각한 면접 자리에서였다. 그는 내 포트폴리오와 출력된 이력들을 주욱 훑어보고선 툭 이런 말을 던졌다.
'요브씨, 진짜 대단하네요. 그동안 고생했겠어요'
예상치 못한 멘트에 놀라 하하- 멋쩍게 웃었다. 그는 정말 나의 그 긴 시간들과 함께한 고민들을 알아봐 주었을까? 그저 상대방을 배려해 가볍게 던진 말일 수도 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면접을 마치고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내가 들었던 말을 되뇌며 입을 꾹 다물고 눈만 껌뻑이며 서럽게 울었다.
내가 나를 잃어버렸을 때, '나'를 알아봐 주는 낯선 타인의 말은 따뜻한 온기로 마음을 데운다. 어둠에 잠긴 눈을 뜨게 하고 멈췄던 걸음을 걷게 한다. '욥, 내가 친구한테 네 글을 보여줬는데 재밌데-', 라던가 '에세이가 제법 기다려집니다'라는 말을 듣는 날이면 심장이 머리에 가 두근거린다. 심장이 사라진 무게만큼 몸이 낭창거리고 귀는 윙윙거리지만 좋다. 정말 좋다.
그러니까, 오늘도 나를 알아봐 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낯간지럽지만 서툴게 전한다. 오늘의 당신에게도 부디 나의 인사가 따뜻하게 가 닿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