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에 대한 불안
이가 아팠다.
이가 아파 말이 안 나왔다.
이가 아파 말이 안 나왔다.
몸을 쓰는 일엔 영 재주가 없다. 내 신체 발달 과정 중에 근육신경은 눈, 코, 입 그리고 뇌로만 연결된 것이 분명하다. 귀로 듣는 신호를 뇌에서 어떻게 해석해 내보내는지 2년 넘게 살사를 배우며 매주 선생님이 외치는 구령과 반대로 발과 팔을 휘저었다. 평소 걷다 보면 같은 팔과 다리가 움직일 때가 있는데, 예능을 보고 그게 재미 요소라는 것을 알게 되어 유감이었다. 그나마 체육이라면 장거리 달리기는 1등을 놓친 적이 없어 자부심이 있었건만 몇 달 전, 친구가 찍어 준 영상 속에서 나는 한 마리 히말라야산양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달리기는 좋아해 계절을 가리지 않고 가끔 밖으로 나가지만 어렸을 때 달리기란 끔찍한 형벌 같았다. 특히나 체력장이나 운동회는 아무리 생각해도 공개 처형장과 다를 바가 없었다. 강제로 모두 참여하는 사생대회도 있지만 미숙한 사람들의 과장됨으로 웃음을 주거나 놀림거리가 되는 이벤트는 없었다.
여느 때와 같은 운동회였다. 학생 수가 적어서인지 모든 학생의 단거리 대회가 있었다. 흰색 출발선 앞에 섰다. “한 발 앞으로!!” 너무 긴장하면 심장이 아플 수도 있는 걸까? “무릎 떼고!!” 정말로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게 아닐까? “준비!!” 거칠게 뛰는 심장과 미칠 것 같은 기분은 오히려 아무 생각이 나지 않게 했다.
탕!
뭐야, 달리는 거야? 오로지 결승지점만 바라보고 열중하는데도 다른 목소리가 선명하게 귀에 들어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내가 그만큼 집중을 못 했던 것일까, 아니면 너무 집중해서 모든 감각이 예민해져 있던 것일까.
출발선에서 몇 걸음 떼지 못하고 앞으로 넘어졌다. 성급한 마음과 느린 몸 사이에서 일어나 충돌이었다. 마음이 멀어지면 몸도 멀어지는 거라고, 자유로운 영혼은 저 멀리 먼저 떠나고 영혼을 잃은 몸은 중심을 잃고 데굴데굴 땅을 굴렀다.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던 것 같다. 끝났다. 휴. 무릎을 털며 일어나 끝까지 달렸는지 중간에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저 이 끔찍한 게임에서 해방되었다는 편안한 기쁨이 또렷이 기억이 난다. 벤치로 들어가는 길에 잠깐 가족들에게 부끄럽고 민망한 머쓱함이 있었지만 이제 끝이라는 안도감이 가득 찼다.
그날이었는지, 그다음 날이었는지 정확한 일자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빨래를 개는 어머니 옆에 앉아있는데 아직 운동회 때의 민망함이 남아 있을 때라 뜬금없이 그날 달리기에 대해서 투덜거렸다. 모래가 어떻다는 둥, 신발이 어떻다는 둥의 괜한 핑곗거리를 찾았다. 어머니는 내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네가 뛰려고 하지 않았잖아. 끝까지 노력하지 않은 넌 다 핑계고 변명이야.”
나는 그날 출발선에 있던 것처럼 심장이 요동쳤다. 코가 시렸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게 사실이었으니까. 엄마는 엄마라는 말이 그날처럼 무섭게 느껴진 적도 없었다. 그녀는 내 모든 행동을 꿰뚫어 보는 사람 같았다. 나는 너무 부끄러웠지만, 한편으로 서러웠다. 그리고 평생 그녀가 나를 한심하게 생각할까 봐 절망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