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병선 Aug 01. 2019

일상적 저항

캘리번과 마녀

오늘 세미나 시간에는 실비아 페데리치의 ‘캘리번과 마녀’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의 요지 중의 하나는 인류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계급투쟁이라는 것은 가진 자들의 횡포에 맞서 못 가진 자들의 반란을 말한다.  


그러한 계급투쟁은 지금도 파업이나 시위로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계급투쟁의 나날이 없는 게 이상한 것이다. 늘 불평과 불만을 표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용주와 노동자의 평화란 없는 것이다.

그때서야 그들은 눈치껏, 없는 자들의 편의를 조금씩 봐줄 뿐이다. 가끔 못 가진 자들의 세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내부 분열, 즉 직장 내 계급 대결, 남녀 대결로 이슈를 끌고 가는 형태를 보여왔다. 우리끼리 싸우게 만드는 꺼리를 제공해왔던 것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늘 계급투쟁의 연속일 뿐이라는 것을 이 책은 증명한다.   

  

그런데 책 중에 마치 지금의 나를 보는 듯한 재미난 구절이 있었다.     

“소작인은 추수기에 소환될 경우 영주 직영지에 일하러 가지도 않았고 자식을 보내지도 않았다. 아니면 농작물이 상할 만큼 늦게 가거나, 대체로 반항적 태도를 견지하면서 많이 쉬어가며 어물어물 일했다.”
“눈에 띄지 않는 저항의 형태로서 꾸물거림, 시치미, 거짓 순종, 무식한 시늉, 의무 방치, 좀도둑질, 밀렵이 있었다.”     



일시적인 저항 형태인 파업이나 시위 말고도 저런 ‘저항의 일상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저런 일상적 저항의 형태는 지금 배달의 민족에서 일하면서도 종종 보는 일이다.     


내가 일하는 곳을 기준으로 말해보자면, 라이더들은 점심, 저녁에 주문이 몰리는 피크타임 때는 돈이 안 되는 명동이나 서울역 같은 교통 밀집지역에는 잘 가려하지 않는다. 관제를 보고 있는 관리자가 강제로 가게 하면, 가게에 음식을 픽업하러 늦게늦게 가거나, 갑자기 차선을 올바르게 지키면서 다른 차를 추월하지 않고, 교통신호를 하나하나 잘 지키면서 어물어물 일한다. 

어떤 동생은 관제에서 오는 전화를 아예 받지도 않는다. 모르고 못 받은 척,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기도 한다. 이런 고도의 일상적 저항은 관제를 보는 매니저들을 매우 난처하게 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 현재 배달 시장의 성장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배달의 민족, 요기요, 쿠팡 이츠, 우버, 부릉, 생각대로 등등의 대행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중이다. 덕분에 안그래도 부족한 배달원들은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하면서 자유롭게 일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배달 시장은 커지고 있지만 배달원은 늘 부족한 상황인 것이다. 


이렇게 라이더가 부족한 상황이 지속되는 한 우리들의 자유로운 저항은 계속되야 한다. 

라이더 공급이 넘칠 때는 어차피 주도권이 고용주에게 넘어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또 하나의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