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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병선 Aug 07. 2019

몸가짐은 경건히, 행동은 간략히

간략함에서 공경스런 마음으로

2019년 8월. 아침부터 비가 온다. 늘 쉬는 날 안 쉬는 날 구별 없이 주로 배달하기를 즐겨 하는지라 정해놓은 휴무일은 없다. 하지만 비가 오는 걸 보고 있으니, 오늘은 임의로 정해놓은 스케줄에 맞게 쉬어야 할 것 같다. 비 맞으며 일한다는 건 썩 내키지 않는 선택이니까.     


아침부터 집 근처로 이사 온 ‘눈 내리는 집’ 카페에 갔다. 이 카페는 원래 광희동 시장통에서 조그만 공간을 차지하고 있던 업소였는데, 최근에 필동으로 이사와 이곳저곳을 이쁘게 꾸민 제대로 된 카페 공간이 되어있었다.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아는 지인 건물인데 지인 추천으로 옮기게 되었다고 하셨다.         

     

이 업소의 특징은 조리시간이 유난히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조리시간만 30분이다. 보통 5~10분 정도의 업소 콜이 라이더에게 인기가 많다. 그래서 이 업소는 인기가 없는 편이다. 하지만 이사 가기 전에는 배민 센터 바로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라이더들이 조리요청을 하고서 30분간 휴식을 하며 종종 출발 콜로 잡기를 즐겨 했던 곳이다.     


그런데 이제 필동으로 이사 왔으니, 라이더들에게 인기 없는 업소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아주머니는 가게 옮기고서 라이더들이 안 온다고 아쉬워하고 계셨다. 나는 대학로가 주 서식지라서 필동을 올 일이 거의 없지만, 사실 나도 일할 때는 오기가 꺼려지는 가게다. 30분이면 두세 콜은 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왠지 모르겠지만, 이런 가게가 나는 끌린다. 음식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만들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다. 재료관리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아주머니의 스피드를 보고 있으면 아마 대기 중인 라이더들은 속이 터져 돌아가실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고객에게는 좋지만, 라이더들에게는 별로다.     


이제 메뉴를 골라야 하는데, 늘 그렇듯 결정장애가 있어 한참을 고심한다. 아무리 고심을 해도, 이 많은 메뉴 중에 무엇을 골라야 할지 도대체 알 수가 없어서, 이리 재고 저리 재다가 결국 따뜻한 매실차를 한잔 주문했다. 뭘 하나 고른다는 게 나에게는 너무너무 힘든 일이다. 아주머니는 음식 날라주는 사람이라고 5천 원인데 4천 원만 받으셔서 괜스레 미안해졌다.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며 내일 있을 ‘캘리번과 마녀’라는 책을 읽고 브런치의 글도 정리했다.

마침 어제 친구와 유니클로 불매에 관한 논쟁을 하다가 나온 주장을 친구의 권유에 따라 정리한 브런치 글에, 누군가가 ‘좋아요’를 눌렀다. 별거 아니라고 머리는 생각하는데, 무언가 가슴이 따뜻해짐이 느껴졌다.     


내가 독서를 하고, 글을 정리하는 동안 아주머니는 판매되는 비스킷을 주시기도 하고, 주문 음식을 만들다가 내 거까지 만드셨는지, 잘 구워진 바삭한 식빵 안에 치즈같이 생긴 무언가가 들어간 간식까지 가져다주셨다.              


아주머니는 “장사가 잘되면 다른 사람도 고용할 텐데”라고 하시며 아쉬운 듯, 그러면서도 뭐 괜찮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신다. 장사가 예전만큼 안돼서 오래 못할 것 같다는 말씀까지 하신다. 그 말에 나는 내심 놀랐다.

‘어? 없어지면 안 되는데...’


그리고선 아주머니도 할 일이 있으신지 노트북 앞에 앉아 나와 똑같이 자판을 두드리신다. 그렇게 우리 둘은 자판을 두드리며 조용히 각자 할 일을 한다. 그러다 방금 다른 라이더가 가져간 음식이 다른 거로 잘못 조리되었다는 고객의 전화가 왔다. 아주머니는 다시 가져다드리겠노라고 하시며, 배민 고객센터로 전화해 자초지종을 설명하셨다.

마침 비도 그쳤고, 머리도 식힐 겸 콜을 잡아보려고 했던 내 핸드폰에 이 카페의 재주문 콜이 떴다. 나는 냉큼 가져다드릴 요량으로 그 콜을 잡았다. 아주머니는 전화를 끊으시고는 재발생된 배달비 3,600원을 부담해야 한다고 나에게 말씀하셨다.

“어? 그래요? 업소 잘못으로 인한 재배달 정책이 업소 부담으로 바뀌었나 보네요!!?”     


사실 지금까지 사유에 관계없이 재배달료도 배민에서 부담하고 있었는데, 합리적으로 바뀐 것이다. 그 사실을 안 순간, 나는 또 괜히 미안해졌다. 싸게 먹고 얻어먹은 것도 있어서, 그냥 배달해드려도 되는데, 배달료까지 챙기게 된 꼴이 되어버려서다.     


안 그래도 마진도 적은데, 남는 것도 없고 오히려 손해겠다는 아주머니의 말은 나에게로 날아와 비수로 꽂혔다.

“아주머니...그.. 제가 이제 갈려고 잡기는 잡았는데...” 나는 괜히 말이 작아진다.     


아주머니는 개의치 않으시고 가볍게 대답을 해주셨다.

“그래요? 이제 갈려고요?”     


저렇게 시간에 쫓기지 않고 정성스레 음식을 만드시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에 얇아져 있던 무언가가 다시 두꺼워짐을 느낀다. 시간 절약이 몸에 배어 있어서 그런지, 나는 일을 대함에 있어 늘 빠르고 간략하다. 배달을 민첩하게 해야 하기에 간략하게 행동하다 보니, 마음까지 덩달아 거기에 쏠려 간략해져 얇아져 버리기 일쑤다. 그러니 일 처리는 빠른데, 늘 정성이 부족한 모양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가끔 글도 너무 간략해져 버린 날에는 글도 일기처럼 단순한 사실 나열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그러고선 빠른 글쓰기에 스스로 흐뭇해한다. 

‘음. 글쓰기 속도가 많이 좋아졌네.’     


저 아주머니처럼 늘 일을 함에 공경스럽고 정성스러운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너무 빨리빨리만을 생각하고 있어서 잘되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이런 사람들 옆에 있으면 나도 덩달아 몸가짐이 차분해져 공경스럽고 정성스러운 마음, 즉, 얇아졌던 마음이 다시 두꺼워짐을 느끼는 것이다. 다음 『논어』의 말과 같다.     


仲弓曰(중궁왈) 

居敬而行簡(거경이행간), 以臨其民(이림기민) 不亦可乎(불역가호). 

居簡而行簡(거간이행간), 無乃大簡乎(무내대간호).

子曰(자왈) 雍之言(옹지언) 然(연).

중궁이 말했다. 

“몸가짐은 경건히 하고 행동은 간략히 하여, 백성을 대한다면 괜찮지 않습니까? 

몸가짐도 간략하고 행동도 간략하면, 지나치게 간략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옹의 말이 옳다.”



중궁은 공자의 제자인데, 그 마음이 너그럽고 도량이 넓어 군주의 자리에 오를만한 사람이라고 공자가 칭했던 제자다. 중궁의 말은 몸가짐은 경건하게, 다만 행동은 간략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몸가짐과 행동이 모두 급박하기만 하다면, 정성이 부족해 거칠어져 일이 꼬이기만 할 것이다. 반대로 둘 다 여유롭기만 하다면 일의 진행이 너무 더딜 것이다. 그렇기에 몸가짐은 경건히 차분한 상태로, 행동만 간략히 민첩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가게가 없어지면 안 되는데, 나도 덩달아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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