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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병선 Aug 09. 2019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사람들

공자대왈 군사신이예 신사군이충

어제 목요일에 열리는 이야기 역사 세미나에서 『캘리번과 마녀』 2장을 읽었다. 그중에서 나를 사로잡는 강한 문장을 만났다.     


밭갈이파의 지도자 윈스턴리는 임노동을 하는 이상 적의 지배를 받으나 동포의 지배를 받으나, 다를 것이 없다고 선언했다. 임노동을 하느니, 차라리 방랑하며 ‘피비린내 나는’ 법안이 규정한 대로 노역하거나 사형당할 위험을 감수하는 쪽을 택했다.

- 『캘리번과 마녀』(갈무리), 117쪽.     


29살 옥탑방 시절에 ‘직장이라는 게 뭘까’라는 생각을 잠깐 한 적이 있다. 그때의 내 단순한 결론은 ‘직장인이라는 직업은 그냥 그만큼 더 일하고 돈을 더 받는 정도일 뿐’이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한 밑거름으로 직장을 다니는 사람도 있기에, 단순히 결론지어 버릴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그저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뿐이었다.     


지배계급들은 예나 지금이나 결국 자기 편의와 이익의 증대를 위해, 남의 시간을 돈으로 손쉽게 사서 편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아닌가? 나는 한정된 내 인생의 시간을 그들에게 많이 팔고 싶지 않았다. 그만큼의 값어치를 쳐주는 것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한 시간에 얼마를 줄까를 가지고 몇십 원, 몇백 원으로 매년 줄다리기하는 모습을 뉴스에서 보고 있으면 나는 치사하고 자존심이 상함을 느낀다. 조금이라도 더 앓는 소리를 해야 그들은 그때 조금! 더 줄 뿐이다. 그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듯,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하지만 곡식을 일굴 땅도, 집을 지을 땅도 다 잃어버린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속한 나는, 시간을 팔아야만 한다. 그래야 먹고살 수 있다. 그래서 내가 한 최선의 선택은 적절한 시간만을 파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알바를 오래 하게 된 면이 있다.     


다행히도 지금 시대는 저 책에 나온 사람들처럼 당장 먹을 곡물이 없어서 폭동을 일으킬 정도의 시대는 아니다. 지금 시대는 쌀이 지겨워 다른 음식들을 찾아가며 먹는 풍요로운 시대라고 생각한다.

이 풍요로운 시대를 맞이한 만큼, 나는 저들에게 무언가를 더 요구하고 싶지도 않고, 저들의 요구대로 움직여주고 싶지도 않다. 여기서 배달하다 안 되면, 저기 가서 하고, 또 안되면 다른 데 가서 하면 그뿐이다.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나는 배달일을 할 수 있고, 쌀통에 쌀이 떨어질 일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지금 시대가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자유를 추구할 때라고 생각한다.      


나는 저들이 반성하지 않고 몇십 원 몇백 원으로 우리를 계속 농락하는 한, 저들이 동포라고 여기지도 않을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애국심이란 요원할 뿐이다. 프롤레타리아 계층이 있기에 본인들이 먹고살 수 있는 것인데, 그들은 예나 지금이나 그런 건 망각한 채 염치없이 살아간다. 그렇기에 젊은 세대들의 애국심이 점점 희미해져 가는 것은 당연하다. 『논어』에 다음 구절이 있다.     


孔子對曰(공자대왈) 

君使臣以禮(군사신이예), 臣事君以忠(신사군이충).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임금은 신하를 예로써 부리고, 신하는 임금을 성의를 다해서 섬깁니다.”

 


여대림이라는 학자가 이 논어 구절을 해석할 때, 임금과 신하가 서로 부족함을 보이더라도 각자 본연의 임무인 ‘예’와 ‘성의’를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설명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공자의 대답 순서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공자는 임금의 역할을 먼저 얘기했다. 임금이 신하를 대하는 예가 먼저 실행되어야, 신하가 성의를 다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윗사람이 적절한 보상으로 예를 보일 때 아랫사람이 충으로써 보답하는 것이지. 결코, 아랫사람이 먼저 충으로써 힘을 다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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