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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병선 Aug 10. 2019

이거 받아도 되는 거예요?

장자

2017년 겨울, 문래동에서 사주 전문가로 활동 중인 아는 형의 의뢰를 받고, 그곳에서 장자 강의를 했던 적이 있다. 주제는 장자에 나오는 두 캐릭터인 ‘섭공자고와 지리소’의 비교였다. 캐릭터의 특징으로 다시 구분한다면, ‘생각이 많아 걱정과 불안에 휩싸인 섭공자고’와 ‘심플한 생활의 지리소’라고도 할 수 있다. 

이 글은 지리소를 닮지 못해 섭공자고처럼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나를 캡처해 본 것이다.     


2019년 8월의 어느 날, 밤 9시가 넘어 대학로 KFC에 갔다. 배달일을 하다가 그쯤 되면 KFC의 치킨 1+1 이벤트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치킨을 맛있게 먹으며 잠시 쉬는 시간을 즐기다, 콜 하나를 잡았다. 밖으로 나와 출발하려고 시동을 건 순간, 마침 고객센터에서 톡이 왔다.     


“고객님이 배달지연으로 취소한다고 하시네요. 픽업 완료 누르시면, 취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배차 시스템상 픽업 완료를 누르면 배달료 3,500원이 나에게 들어오는 구조다. 그래서 고객센터 분은 나에게 픽업 완료를 먼저 누르라고 한 것이다. 순간 눌러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여졌다. 가려고 마음먹고 시동만 건 상태인데, 이걸 받아야 할까 말아야 할까...

일단 하라는 대로 픽업 완료를 눌렀는데, 이런 걸 도덕적 해이라고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일하는 1시간여 동안 마음이 찝찝했다. 마침 지나가는 길에 아이스크림 할인전문점이 있어 아이스크림을 하나 입에 물고 찝찝한 마음을 달래던 도중, 『장자』에 나오는 ‘지리소’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지리소는 장애인이다. 그런데도 자기 할 일을 찾아 나선다. 자기 몸에 맞는 일을 찾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빨래 빠는 일을 하고, 가만히 서서 곡식을 키질하는 일을 한다. 이런 일들이 자기 몸에 맞는 것이다. 또, 그분 수입이 보통이 아니다. 자기 먹고살건 충분히 벌고, 또 대여섯 식구를 먹여 살릴만한 정도이다. 그런 장애 있는 몸에도 불구하고, 그런 경제력을 갖추고 있다. 

당시 전쟁에 남자들이 징집되어 끌려갔지만, 지리소는 면제였다. 하지만 미안하니까, 가서 빨래라도 빨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또 나라에서 주는 곡식과 장작 등 후생복리도 다 받아간다. 미안하니까 ‘나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주라거나, 자신이 받아가도 되나’라는 자의식의 도덕적인 세계관이 없다. 그는 그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 안에서 선택을 할 뿐이다.

그 선택에 있어, 남의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다. 남들이 징집되어 끌려가거나 말거나 자신은 징집대상이 아니기에, 그들 사이를 지나갈 때도 팔을 걷어붙이고 당당히 다니면서 자기 할 일을 할 뿐이다.     


그럼 내가 받은 3,500원이라는 꿀은 도덕적으로 합당한가, 합당하지 않은가? 이런 걸 따지는 거 자체가 지리소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는 그런 자의식의 도덕에 맞춰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지 않는다. 그냥 자기에게 주어진 선택지 안에서 이로운 선택을 할 뿐이다.     


아마도 고객센터 분은 룰에 맞춰 나에게 픽업 완료 해달라고 말했을 것이다. 룰이 그렇다면 그 룰은 어디까지를 배달료 할당으로 칠까? 바퀴를 움직이기까지 한 상태? 아니면 가려고 콜을 잡은 그 상태? 아니면 그냥 내가 불쌍해서 한 몫 챙겨주려던 천사 상담원이었을까?     


자의식 없는 지리소를 생각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또다시 자의식의 세계로 들어가려 한다. 나는 지리소를 닮지 못해, 이런 의문들이 계속해서 떠오르기만 할 뿐이다.     


그래서 지인 라이더에게 톡을 날렸다.

“이거 받아도 되는 거예요?”

“저라면 올레~~ 하죠. 돈이 들어오는 거니 ㅋ”     


그분은 나처럼 이런저런 의문이 없었다. 지리소가 동화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닌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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