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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병선 Aug 16. 2019

여성 잔혹사

자본주의

실비아 페데리치의 ‘캘리번과 마녀’라는 책은 가진 자와 빼앗긴 자의 계급투쟁을 계급의 차원에서만 고찰했던 마르크스를 넘어서, 자본주의 하에서 이루어진 계급투쟁에서조차 지위가 철저히 소외되고 무시되었던 여성의 참혹한 현실을 드러내려고 하는 책입니다.

쉽게 말해, 중세 시대에 계급투쟁 안에서 이루어진 여성에 대한 잔혹사입니다.     


이 책을 읽은 느낌을 먼저 간단히 말하면, 자본주의 체제는 언제나 약자들의 피를 빨아먹는 기생충이다 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많이 가진 자들이 못 가진 자들을 쥐어짜고, 못 가진 자들은 약한 자들을 억압하고, 약한 자들은 더욱 약한 여성들을 통제한다는 게, 몸으로 체감되던 책이었습니다.


그럼으로써, 남성인 저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서양 고전이었습니다.      

    



@여성은 남성의 재산에 불과할 뿐     


모든 생산수단의 결과물이 화폐로 통합되는 시대가 왔을 때부터, 자본주의 시대에 가장 핵심적인 건 돈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대부분의 지배계층들이 여러모로 노동자를 위한다는 말과 행동을 하지만, 결국 핵심은 돈입니다. 노동자들이 반란이나 일을 그만둘 기미가 보여야, 그때 조금 더 줄 뿐입니다. 똑똑한 지배계층들은 우리들이 반란을 공모하기 전에 타이밍에 맞게 달래려 주는 것이고, 멍청한 지배계층들은 반란이 일어난 후에 긴급복구를 위해 이익을 주는 것입니다.

물론 반성의 기미를 보이면서 말이죠. 이래나 저래나, 그저 자신의 생산수단인 노동자들을 달래려고 주는 마취제에 불과할 뿐이죠. 자신의 ‘부’를 유지해야 하니까요.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한 가정 내에서 남성의 위치도 비슷합니다.     

“결혼하면 자신의 노동에 부인의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데다, 집안일도 해결되고, 성욕도 해결되고, 자식도 생기는데, 자식들은 아주 이른 나이부터 베틀을 돌리거나 잡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략>.... 부인이 남편과 나란히 서서 시장에 내다 팔 물건을 똑같이 만들어도, 그에 대한 보수는 남편이 독차지했다는 것이다.”   

  

중세시대를 논한 인용문의 핵심은 부인이 생산한 노동의 대가도 결국 남편의 소유로 간주되었다는 것입니다. 법률상 여성의 대리인은 남성이었기 때문입니다.

법률상 자격의 박탈은 곧 경제적 박탈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성에 대한 경제적 박탈은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경제적 박탈은 또, 곧 남성에 대한 경제적 종속으로 이어집니다.

자본주의의 핵심인 ‘돈’을 취급할 수 없다는 것은 곧 종속을 의미하기 때문이죠.          


“매춘부는 프롤레타리아화의 초기단계에 남성 노동자 곁에서 요리나 빨래와 같은 일도 하면서 부인의 역할을 했다. 게다가 매춘부는 가혹하게 처벌하면서도 남자 손님은 거의 손대지 않는 방식의 불법화 때문에 남성의 권력이 강화되었다.
모든 남성은 이제 창녀라는 선언만으로 한 여성을 간단히 파멸시킬 수 있었다. 여성은 마치 봉건영주처럼 그들의 생사여탈을 손에 쥐고 있는 남성들에게 ‘(유일하게 남은 재산인) 명예를 빼앗지 말라고’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경제적 박탈 또는 저임금으로 여성이 자립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자, 매춘이 성행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법률은 언제나 남자의 편이었기 때문에, 성매수를 시도한 남성을 처벌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궁지에 몰린 상황 안에서조차 경제적 자립을 시도해보려는 여성들의 도전은 번번이 남성 권력에 의해 막힐 뿐입니다.

그런 여성의 최후의 경제적 자립조차 법률을 고쳐가며 가혹하고 더 철저하게 짓밟았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 창녀를 성폭행해도 법률상 처벌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 여성의 존엄까지도 손쉽게 파멸시킬 수 있었던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최후의 보루인 명예, 즉 인간적 존엄성까지 파괴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중세 시대의 작태를 책을 통해서 보고 있노라면, 만감이 교차하여 울분이 일어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현재 남성들이 여성을 대하는 인식과 법률상의 자격이 얼마만큼 달라져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가진 자인 지배계급층이 빼앗긴 자들을 계층적으로 분류해서 서로 견제하게 하고, 더 나아가 남녀가 서로 싸우도록 만들어서 지속 가능한 부를 축적하는, 이 자본주의 구조가 좀 얇아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대립구도가 좀 얇아져야, 위기가 왔을 때 자본가들이 손쉽게 뭉치는 것처럼 우리도 어느 정도 손쉽게 대응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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