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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병선 Oct 05. 2019

더 먹어 더, 안 그럼 죽어

시경 패풍 <격고>

2019년 10월. 오늘도 서울대병원 식당을 갔다. 여기는 이 건물 저 건물에서 배민을 자주 이용하는 단골들이 많은 편이다. 점심시간만 되면 병원 곳곳에서 주문이 쇄도하기 시작한다. 또 다 같이 드시느라 10만 원에 육박하는 음식량을 시키시는 분도 있다. 그래서 요령이 생긴 나는 가급적 점심 피크 때 서울대병원 콜을 경계한다. 5만 원 이상 많은 음식을 주문했거나 병원 본관에서 주문한 콜은 잡지 않는다. 왜냐하면, 음식량이 많으면 조리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무겁기까지 하고, 또 본관 엘리베이터는 사람이 붐벼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종종 점심 저녁은 서울대 병원에 가서 먹는다. 환자가 있어서 그런지 알찬 구성에 맛도 강하게 하지 않아 내 입맛에 맞아서다. 그리고 가격도 4,800원으로 저렴하다. 그래서 오늘도 대학로에서 일하다 한가해져 저녁을 먹으러 병원식당에 간 것이다.     


 서 있는 사람이 없어 여유롭게 배식을 끝마칠 때쯤, 환자복을 입은 할아버지 한 분이 느린 걸음으로 몸을 끌며 걸어오셨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는 배식을 역주행하셨다. 배식 아주머니들이 저쪽에서부터 하셔야 한다고 말해도 할아버지는 안 듣고 싶은 건지 못 들으시는 건지, 그렇게 할머니 한 분과 함께 역주행을 끝마치셨다.     


뭐 어차피 배식하는 사람도 없고 하니, 정해진 룰을 어기고 반대로 역주행하셔도 뭐 괜찮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한가한 일방통행 길을 역주행할 때가 있어서다. 하지만 배식 아주머니와 자동차 운전자들은 그런 질서위반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실질적 피해는 없지만, 잘 지키며 살아가는 모범시민들의 심리를 불편하게 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실질적 피해만 없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지만, 요즘은 룰에 맞춰 살아가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그런 할아버지를 보며 나는 슬며시 혼자 미소를 짓고는, 한적한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 역주행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내 앞자리에 앉으셨다. 사람은 두 분인데, 식판은 하나였다. 바로 할아버지 저녁밥이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좀 드시더니, 먹기 싫다며 숟가락을 놓으셨다. 오늘 밥은 없던 입맛도 돋우는 곤드레밥에 간장 기름과 빨간 양념의 고등어 조림임에도 불구하고 드시는 게 영 신통치 않으셨다. 그러자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더 먹어 더, 안 그럼 죽어!”      


짧고 강렬한 한마디에 오히려 내가 흠칫 놀라긴 했지만, 듣는 둥 마는 둥 하시는 할아버지는 그렇게 한두 숟갈을 더 드시고, 또 안 드시고의 반복이었다. 계속되는 할머니의 재촉에 그 행동을 반복하시다가, 결국에는 그냥 의자에서 일어나 뒤에 서 계셨다. 그러자 할머니는 자기도 먹기 싫은데 이렇게 먹지 않냐며 밥 먹는 시범을 보이셨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앉을 생각을 하지 않고 의자를 짚고, 서 계신다. 할머니는 포기하신 듯 그렇게 마저 식사를 마무리하셨다.

식사가 끝나자, 할아버지는 오셨을 때처럼 다시 식판을 들고 느린 걸음으로 퇴식대로 걸어가셨다. 아파서 느린 걸음으로 걸으시는 할아버지가 몸소 식판을 들고 가시는 뒷모습을 보니, 내 머리에 생각이 스쳤다. ‘혹시 밥이 맛있어서 안 드신 건가.’     


할아버지의 밥투정은 병간호하느라 힘든 ‘당신의 손을 잡고 함께 살아가겠다’는 할머니에 대한 마음이었던 것이다. 아래 시 화자의 마음과 같다.     


執子之手(집자지수), 與子偕老(여자해로).

그대의 손 잡고, 그대와 백년해로하자고 하였노라.



우리가 흔히 결혼식 할 때 쓰는 백년해로라는 말의 원 출전이 바로 저 시이다. 함께 늙어가겠다는 ‘해로(偕老)’라는 말 두 글자에 이미 평생이라는 시간적 개념이 들어있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말들의 뿌리는 사실 고전에 이미 다 나와 있는 것들이다. 2천 년이나 된 오래된 고전을 읽다가 내가 현재 쓰고 있는 글자를 만나면 기쁘다. 이렇게 글자의 뿌리와 만나는 것도 고전을 읽는 하나의 매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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