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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병선 Oct 05. 2019

범칙금 끊을까요

논어 위정편

도로 위에서 행해지는 배달일은 도로의 감시자인 경찰들과 맞닥뜨리지 않을 수 없는 직업이다. 친절한 공무원 마인드를 가지신 분들도 계시지만, 내가 겪어 본 몇몇 경찰 마인드는 정해진 법에 따라 위반 시 딱지를 끊는 기계적인 일만을 할 뿐이었다. 나는 위반하는 라이더를 붙잡고 공손한 말로 계도의 말을 하는 경찰을 별로 보지 못했다. 계도 이벤트 기간은 제외하고.     


계도 이벤트 기간이 아닌데, 한 번 계도를 받은 적이 있었다. 비록 거친 방법이었지만 말이다. 혜화역 3, 4번 출구 쪽으로 나와 성균관대학교로 향하는 두 길목을 보면 각각 일방통행으로 정해져 있다. 대학로 CGV가 있는 4번 출구 쪽은 늘 사람들로 붐비고 사람과 자동차가 구분 없이 함께 다니는 길이다. 그에 반해 3번 출구 쪽 소나무길은 늘 한산하고, 인도와 차도가 구분되어 있어 서로가 안전한 통행이 가능한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주로 소나무길이 일방통행임에도 불구하고, 역주행하는 라이더들이 많다.     


그날 나도 한산한 소나무길을 역주행하고 있었다. 맞은편에서 차가 오더라도 한쪽에 붙어 비켜주면 차가 여유 있게 지나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은 맞은편에서 경찰차가 오고 있었다. 속으로 뜨끔했지만, 늘 하던 대로 자연스레 한쪽에 붙어 지나가도록 길을 내주었는데, 그분은 굳이 경찰차를 내 앞으로 바짝 몰면서, 나를 점점 몰아세웠다. 그렇게 경찰차는 10초간 내 앞길을 막고 서서 나에게 무안을 주는 상황을 연출했다. 10초 정도가 지나 방향을 틀어, 내 옆으로 지나가면서 창문을 내리고 말하셨다.      


“여기는 일방통행 길(=법령)이에요.”

“네 죄송해요. 저쪽 길은 사람이 붐벼서 그랬어요.”

“범칙금(=형벌) 끊을까요??!”


순간 분이 올라옴을 느꼈다. 범칙금을 끊을지 말지 나한테 묻는 것도 이상하지만, 또 나한테 강압적인 목소리로 물어보는 건 왜일까? 봐주려는 것일까 아니면 변명하지 말고 그냥 잘못했다고 말하라는 것일까. 그 말에서 나는 위에서 강압적으로 누르려는 그의 권위의식이 느껴졌다. 속된 말로 ‘당신 사정은 관심 없고, 법령을 위반했는지 안 했는지만 인정하세요’라는 듯한 말로 들렸다.     


길 사정상 그렇게 행동했던 면도 있는 건데, 그분은 그저 정해진 법의 잣대로만 판단하고 나를 누르려고 할 뿐이었다. 사실 대다수의 일방통행 길은 사실상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서로 같이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하지만 법은 이륜차든 사륜차든 둘 다 일방으로만 다니라고 정해놨기 때문에, 불만이 있더라도 지켜야 한다. 보행자들과 서로 불편해지고 싶지 않다고 해서, 이 소나무길을 역주행하는 것도 안된다.      


하지만 그 경찰의 신경질적인 발언은 나를 분노에 휩싸이게 했다. 그럼 이제 일방통행에 맞게, CGV대학로 앞의 붐비는 사람들 사이사이를 지나가야 한다. 그 길은 사람과 차가 함께 다니는 길로 법령이 정하고 있으니, 나 또한 그 길로 다녀야 한다. 어떤 사람은 불편해하기도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놀라기도 할 것이다. 또, 본의 아니게 우연히 사람과 접촉이 있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법령에 맞는 길로 진행 중이었고 우연한 사고였을 뿐이니까. 시비가 붙더라도 법령에 근거해서 나를 최대한 보호하려는 노력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논어』에 ‘형벌을 피하려고만 하고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경우이다.

권위적인 말투에 분이 오른 나머지, 이런 생각이 떠오르지만, 현재는 그 두 가지 길을 포기하고 큰 도로로 돌아서 다니는 중이다.           


만약 경찰관들이 상대방의 말을 들어보고 그렇게 처신한 입장을 ‘덕(德)’과 같은 넓은 포용력으로 이해하는 모습을 보이고, 현실 법령의 부득이함을 설명하는 ‘부드러운 예’로 라이더를 대한다면, 우리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논어의 말처럼 ‘부끄러움을 알고 스스로 바로잡으려’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것이 이상에 불과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우리는 사람을 온전히 믿어줄 수 있는 사회가 아닌 법가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경찰들이 이런 선의를 가지고, 모든 위반자를 방관하기를 나 또한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적어도 이해하려 들어주고 현 법령의 부득이함을 부드러운 말로 고객 대하듯이 하고 나서, 그러한 후에 단호히 딱지를 끊으면 어떨까 싶다. 경제적인 고려 없이 완전평등이 적용된 4만 원 딱지의 현실은 일단 차치하더라도, 정신적인 충격을 받을만한 형편에 있는 사람을 고려해서 최대한 마음만은 상하지 않게 해 주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정해진 법령만을 말하고 법 위반을 범칙금으로만 바로 잡으려고만 하면, 라이더들이 합법적인 길로 달리겠지만, 합법이라는 미명 하에 행인에게 위협을 가하게 되더라도 부끄러움이 없게 될 것이다. 반면에 넓은 포용력의 덕으로 대하고 정중한 예의로써 법을 지켜야 함을 설명하면,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껴 스스로가 바로잡으려는 마음이 싹틀 것이다. 다음 논어의 구절과 같다.     


子曰(자왈) 

道之以政(도지이정) 齊之以刑(제지이형), 民免而無恥(민면이무치). 

道之以德(도지이덕) 齊之以禮(제지이예), 有恥且格(유치차격).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법령으로 다스리고 형벌로 바로잡으면, 백성이 형벌을 피하려고만 하고 부끄러움을 모른다.

덕으로 다스리고 예로 바로잡으면, 백성이 부끄러움을 알고 마음이 바르게 될 것이다.”



법령과 형벌을 쓰는 것은 사람들에게 법에 맞게 처신해야 한다는 인식만을 머리에 심어줄 뿐이고, 덕과 예를 쓰는 것은 고쳐야 한다는 사실을 가슴에 심어주는 일이다. 그렇기에 껍데기 효과만 있는 법령과 형벌만을 쓰려 하면 안 되고, 근본적인 효과가 있는 덕과 예를 써야 한다는 말이다.      


공자는 마지막까지 인간에 대한 믿음을 져버리지 않은 사람이다. 적어도 예의로써 상대방에 대한 믿음을 져버리지 않은 후에, 범칙금을 끊어도 늦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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