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알바는 알바 중에서도 시급을 조금 더 받는 일이었지만, 주로 60~100만 원 선에서 나름의 균형을 맞추며 살아왔다. 그래서 많이 일해주지 못해 사장님을 아쉽게 하는 일은 많았을지라도, 나의 만족을 위해 남과 수입을 경쟁하여 불편한 상황을 만든 적이 없다. 또, 적정한 노동시간을 유지하며 과하게 해본 적이 없기에, 몸에 큰 병이 난 적도 없고 큰 사고도 없었다. 그래서 『도덕경』을 남긴 ‘노자’의 말마따나 몸에 별 탈 없이 꾸준히 노동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바로 다음 구절이다.
知足不辱(지족불욕) 知止不殆(지지불태), 可以長久(가이장구).
적당한 지위에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적당한 재물에 머무를 줄 알면 위태롭지 않나니, 그래야 오래갈 수 있다.
- 『노자』 「44장」
열심히 살아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보려는 시도를 해본 적이 없기에 불명예로 낙담하거나 치욕을 당할 일도 없었고, 적절한 수입에 만족하며 가급적 적게 일했기에 내 몸이 위태로울 일도 없었다.
그럼 위 노자의 말은 진정 나를 두고 하는 말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노자가 어떤 환경과 맥락에서 저 말을 했는지 가늠해볼 순 있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미 4천 년 전에 만들어진 책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맥락을 이어서 최대한 가까이 가늠해볼 수만 있을 뿐, 100%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렇기에 내 경험을 기준으로 고전을 이해해보려 한다.
오래 할 수 있었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지금껏 내가 하고 싶은 다른 일을 찾지 못해서였다. 찾아보려 하지도 않았다. 나 스스로 직장에 이력서를 내는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부모님께서 하시는 일이라 부득이 고등학생 때부터 시작한 일이었지만, 바람을 맞는 이 일만큼 나에게 자유로움과 시원함을 주는 일이 또 있을까 싶었다. 이거 하나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기에, 다른 걸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만을 쫓아온 사람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남들은 일상생활의 소소한 일을 가지고 저 말을 쓰지만, 나는 소확행을 내 직업에 연결한 것이다. 너무 지나치게 소소해 보이는 배달일에서, 나는 이상하게 확실한 행복감이 느껴졌다.
그럼 ‘30대 후반부를 살아가는 나는 일찍부터 행복을 찾은 사람일까, 아니면 사회 부적응자로 전락해버린 사람일까?’ 이 질문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한다면 ‘아마도 후자가 아니겠느냐’라고 대답할 것 같은 느낌이 99%다. 같이 배달일을 하는 어떤 동료도 그런 뉘앙스로 말해서, 덩달아 그런가 싶은 느낌에 내 주장이 약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역시 아니다. 내 삶을 돌이켜보면 나는 확실히 전자 쪽인 소확행에 무게를 두고 살아왔다.
『시경』의 한 구절이 있다. 집안에 걸어놓기도 하는 유명한 구절이다.
鳶飛戾天(연비려천), 魚躍于淵(어약우연).
솔개는 하늘에서 날아다니고, 물고기는 못에서 뛰논다네.
- 『시경』 「대아 한록」
솔개는 하늘에 있기를 좋아하고 물고기는 연못에 있기를 좋아하는 본성을 가진 것처럼, 나는 배달하는 일이 좋았다.
도심의 유일한 평원인 도로 위를 바람과 함께 달리고 또 막힘없이 물 흐르듯 다니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는 일이 나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