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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병선 Feb 25. 2022

우울증 대처법

아는 지인의 전화가 왔다. 그는 요즘 어느 잡지 매체에서 운영진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자신이 일하고 있는 그 잡지 매체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내가 그 잡지 매체에 대해 그토록 자세히 알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 그는 계속해서 설명할 뿐이었다. 첫 통화 5분가량을 그렇게 그는 서론을 늘어놓는데 바빴다.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스피드 하게 이루어지는 그의 목소리에 도저히 끼어들 틈이 없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여전히 빠른 결말 부분을 먼저 듣고 싶어 하는 내 기질이 고개를 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기질을 누르고 천천히 들어주고만 있었다.

"어? 아.... 응..... 응...... 응...... 응"

그는 결국 결론 부분에 이르러 나에게 원고 청탁을 부탁했다. 나름 아는 동생의 부탁인지라 거절하기가 뭣해서 일단 수긍의 말을 해버렸다. 사실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요즘, 어떤 새로운 뭔가를 해보고 싶지 않았는데 차마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아주 명랑하고 힘 있게 밀어붙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출판사의 정식 원고 청탁 메일을 받았다. A4 3장짜리 분량의 산문이었다. 나는 3장 이상이라는 메일 내용에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다.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3장을 써본 적이 없어서다. 또 나는 지금 우울증으로 내 일상생활을 버겁게 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이 두 복합적인 문제가 얽힌 상황에서 그 3장 이상을 써낸다는 건 나에게는 분명 힘겨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수락을 해버렸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나는 당일날 바로 못하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근데 또 차마 말하지 못하고 이틀을 고민에 들어갔다. 하지만 내 결론은 같았다. 이건 지금 내 상태에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여야만 했다.     


이제 거절의 말을 준비할 차례였다. 한큐에 긍정의 말을 받아낼 수 있는 하소연을 해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내가 3장 이상을 써본 경험이 없다는 것, 현재 우울증으로 내 글도 제대로 못 쓰고 있다는 점을 어필해 최대한 불쌍한 모습으로 자세를 낮추면 흔쾌히 수긍의 말을 돌려받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장문의 카톡을 그에게 남겼다. 전화로 하기에는 내 말발이 내 글의 논리를 따라가지 못할 듯해서였다. 카톡을 보낸 나는 뿌듯했다. 이제 그가 내 거절을 수락하면 나는 미안한 마음에 스타벅스 기프트콘을 하나 보내줄 계획이었다.   

   

하지만 내 계획은 실행되지 못했다. 내 장문의 카톡을 본 그는 곧바로 폭풍 카톡을 날렸다. 이미 출판사에 알렸고 청탁 메일도 보낸 걸로 아는데 안된다는 것이었다.(젠장...ㅠㅠ)  그러면서 원고를 만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그는 나에게 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돕겠다는 말을 남겼다.(아... 이게 아닌데...) 기똥차게 밀어붙이는 그의 말에 나는 도저히 후진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2~3편을 써서 3장 이상을 만들자는 방법에 나는 동의했다.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주제로 3장 이상이 불가할 뿐이었다.


후진 좀 해보려던 나의 우울증이 겁을 집어 먹었는지 발등에 불 떨어져 버린 그 상황에 그 우울증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내 머리는 그 글을 써낼 방법을 찾아 바쁘게 돌아가기만 했다.

이 우울증에 침잠해 가라앉아 있고만 싶었는데 그는 내 상황을 이해해주지 않고 나를 계속 몰아붙이기만 했다. 그렇게 우울증에서 헤엄치고 놀려던 나는 한방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빠꾸 없는 돌진력에 나도 덩달아 돌진해야만 했다. 그렇게 우울증 놀이를 잠시 접어야 할 듯하다. 


우울증을 이겨내는 건 결국 성실함이다. 실연으로 생긴 우울함이든 뭐든 간에 그런 깊은 어둠을 이겨내는 건 그저 눈 앞에 일을 계속 벌여놓고 나아가는 '성실함' 뿐 인듯하다.


바로 [중용]의 키워드인 誠(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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