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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균 Oct 09. 2023

우리는 왜 행복을 느끼는가

<행복의 기원>, 서은국


<행복의 기원> 완독, 주말 아침에 일어나 후기를 남긴다.


행복, 하면 어떤 것들이 떠오르는가? 말랑말랑하고 붙잡고 싶은, 하지만 지금은 놓치고 있는 것 같은 무엇이 떠오르는가? 훌쩍 떠났던 여행이나 친구들과 보냈던 크리스마스, 지난 달에 배우자와 함께 했던 파인 다이닝이 떠오르는가? 혹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오늘도 야근을 해야 하는 현실이나, 도무지 잔고가 늘지 않는 통장이 떠오르는가? 정글을 모르는 나약한 자들의 도피처 같은 것으로 들리지는 않는가?


대한민국의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은 다섯가지다. 평등권, 자유권, 참정권, 사회권, 청구권인데, 이 다섯가지 기본권은 두 가지 기본 이념을 기반으로 한다. 하나는 인간 존엄권, 다른 하나는 행복 추구권이다. 무려 대한민국이 존재해야 하는 명분 기반엔 국민들의 행복 추구가 있다. 우리가 행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국가는 행복이 이렇게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이라고 말한다. 목적, 즉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존재한다. 다른 모든 것들은 수단이다. 윤리, 철학, 예술, 과학은 물론이고 우리가 돈을 벌거나 일상생활을 하는 것, 궁극적으로는 살아 있는 이유는 모두 행복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행복론이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행복론은 그의 사후 수천년 동안 세상을 지배했고, 지금도 지배하고 있다.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목표로 하고, 칸트는 도덕과 행복을 종합하려 하며, 프로이트는 행복의 원리를 쾌락원칙으로 정립하고, 쇼펜하우어는 오히려 행복을 거부함으로써 행복을 추구하려 한다. 저마다 의견과 논리는 다르지만, 행복론을 말하는 수많은 철학자들은 행복이 지고지순의 가치라는 목적론적 행복론에 동의한 채 철학을 하고, 이렇게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에 기반하여 대한민국 헌법도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 책, <행복의 기원>은 바로 이 목적론적 행복론을 현대 진화심리학으로 깨부수는 책이다. 그렇다. 이 책의 저자, 행복학의 세계적인 권위자이자 서은국 교수에 따르면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나는 행복하려고 오늘도 돈을 벌고 있는데? 선뜻 동의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우선은 서은국 교수님의 생각을 따라가보자.


매년 캘리포니아 헌팅턴 비치에는 이색적인 대회가 열린다. ‘Surf City Surf Dog’이라는 대회는 윈드보트 서핑을 즐기는 개들의 대회다. 개들의 놀라운 서핑 실력에 혀를 내두르는 한 편, 수많은 관람객들이 망원렌즈를 장착한 사진기를 들고 이들의 위용을 찍는다.





대체 이 개들은 어떻게 서핑을 할 줄 알게 된 걸까? 설마 개들이 스스로 서핑을 배웠을 리는 없다. 아마 주인이 의도를 가지고 개에게 서핑을 가르쳤을 것이라 추측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물가에 가기 싫어하는 개가 있다면 바닷물에 발을 담그는 것부터 가르쳤을 것이다. 발 한번 담그고, 간식 하나 주고. 또 한 번 담그고, 간식 하나 주고. 그 다음엔 발목까지, 어깨까지. 이런 식으로 차근차근 물에 익숙해지게 한 후 결국 윈드보트 위에 개를 올렸으리라 우리는 추측할 수 있다.


그럼 이제 한번 생각해보자. 개가 원한 것은 서핑이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오라면, 개는 어쩌다 서핑을 할 수 있게 된 걸까? 그렇다. 개는 그저 간식을 원했을 뿐이다. 물에 발을 담그는 것으로 얻을 수 있었던 그 간식. 간식을 먹기 위해 주인이 하라는 것을 하나 하나씩 하다 보니 어느새 짜잔, 서핑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개는 서핑을 의도한 적이 없지만 서핑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서은국 교수님은 행복은 바로 간식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행복을 위해 사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지만, 실은 행복은 간식에 불과하다. 진화심리학에 의하면 DNA에 적혀 있는 우리의 진짜 목표는 생존이다. 우리의 주인(DNA)은 우리에게 생존을 가르치기 위해 우리가 생존에 유리한 행동을 할 때마다 간식을 준다. 그 간식의 이름이 바로 행복인 것이다.


이 다음 논리는 그러니까 행복을 추구하지 말아라, 같은 것은 전혀 아니다. 간식이라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행복을 원한다. 그렇다면 이 간식의 특징을 잘 알아야 더 많은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우선 행복은 빠르게 사라지는 특징을 가졌다. 강아지들에게 간식을 줄 때, 엄청나게 큰 간식을 주나, 작은 간식을 주나 강아지들이 느끼는 만족감은 같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인간이 느끼는 행복도 똑같다. 소고기 등심 한 점이 주는 행복은 대단하지만, 그 행복은 먹고 나서 십여 분이 지나면 사라진다. 다음 날이 되면 그 행복은 완전히 소멸한다. 행복은 생존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트에서 고기를 얻지만, 우리의 조상들은 그렇지 않았다. 만약 고기를 먹고 난 행복감이 다음 날까지 이어진다면 그는 사냥을 나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감을 빠르게 잊도록 진화했다.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을 때의 기쁨을 기억하는가? 그 기쁨은 언제까지 가는가? 1학년 1학기 첫번째 중간고사 시험 공부를 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기초 전공책을 뒤적거릴 때, 여전히 기뻤었나? 이렇게 세상 모든 행복감은 반드시 빠른 시간 내에 소멸한다. 만약 로또에 당첨되어 수십억의 재산이 갑자기 생기더라도, 그 행복감은 몇 주 이상 가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행복은 빠른 속도로, 반드시 소멸한다.


그래서 행복에 있어 중요한 것은 양이 아니라 빈도다. 행복은 얼마나 큰 것을 느끼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자주 느끼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 서은국 교수님의 설명이다.


두번째, 궁극적인 행복은 관계에서 발생한다.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반드시 사회가 필요했다. 인간에게 타인은 생존 필수품이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관계에서 행복을 느끼도록 진화했다. 서은국 교수님은 작은 사회 실험 결과를 예제로 드는데, 학생들에게 5달러, 혹은 20달러 정도의 돈을 나누어 주고 A그룹은 자신을 위해, B그룹은 타인을 위해 돈을 쓰도록 했다. 돈의 양과 실험을 한 국가와 관계없이 늘 실험 후엔 타인을 위해 돈을 쓴 그룹의 행복감이 높게 나타난다.


왜 친사회적 행동은 행복감을 유발할까? 진화심리학자들은 장기적으로 친사회적 행동은 타인과의 결속을 높이고, 생존에 필요한 사회적 자원을 확보하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단기적 관점에서 보면 나는 일부 자원을 상실했다. 누군가와 고기를 나누어 먹었다면, 혼자 먹을 때 보다 적게 먹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뇌는 이 손실을 만회하는 강력한 보상을 제공한다. 그것이 바로 행복감이다. 뇌는 우리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행복감을 제공함으로써 우리의 사회화를 유도한다.


세번째, 행복은 거창한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이다. 행복은 쾌락에 뿌리를 둔, 기쁨과 즐거움 같은 긍정적 정서를 느끼는 사건이다. 돈을 많이 모아 부자가 된, 미래에 누릴 행복한 삶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명해져서, 인기나 지위를 얻어서 영위하는 행복한 삶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행복은 순간이다. 상태가 아니다. 


서은국 교수님의 주장은 이러하다. 행복은 사건이므로 행복하고 싶다면 계속해서 우리 스스로를 위해 행복할 만한 사건을 준비해야 한다. 즉, 우리는 행복을 능동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행복할 만한 사건을 계속해서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서은국 교수님의 설명은 이를 테면 소확행에 대한 강력한 지지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매일 저녁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저녁을 먹으며 맥주 한 잔을 곁들이는 것,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 둘레길을 산책하거나 근처 공원으로 소풍을 가는 것. 가끔 좋은 친구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 이러한 소소한 이벤트를 최대한 많이 만들라는 것이 평생 행복론을 연구한 교수님의 조언, 혹은 결론이다.


어떤가, 동감이 되는가? 20대나 30대의 나였다면 나는 이 책에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형태는 이렇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곧 50대가 되는 나는, 행복은 구체적인 사건이라는 서은국 교수님의 결론에 공감한다. 그리고 행복이 절대적으로 관계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도. 내 경험으로는, 가장 치명적인 상처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준다.


퇴근 후 나의 저녁 일과는 대개 마나님과 반주를 곁들여 저녁식사(라기 보다는 안주의 형식에 가까운)를 하며 그 날 있었던 일이나 읽은 책에 대해 얘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대개 있었던 일은 마나님이, 읽은 책에 대해서는 내가 얘기한다) 마나님에게도 내게도 이 시간이 매우 소중한데, (아이들을 다 키웠기에) 이런 시간을 남들 보다 먼저 누리고 있는 것이 참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트레바리도 마찬가지다. 시작하기 전엔 독서 모임이 이렇게 즐거울 줄 몰랐는데, 행복의 레벨이 하나 오르는 체험을 하고 있다. 만약 계획보다 인생이 덜 행복하다면 독서모임을 한번 해 보시기를. 좋은 사람들과 내가 관심있는 분야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독서모임의 본질이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라는 건, 나도 해보기 전까지는 몰랐다. (결론이 묘하게 나네?) 





코로나로 중단됐던 Surf City Surf Dog 대회가 돌아왔다는 뉴스



https://www.foxla.com/news/huntington-beach-incredible-dog-challenge-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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