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무도 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한 달을 넘게 쓰고 있는 하이데거 시리즈의 마지막 편 제목은 [시간과 존재]이다. 하지만 하이데거가 말하는 시간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2026년 3월 31일 오전 10시, 같은 시간이 아니다. 기계적으로 분할된 시간을 가리켜 하이데거는 '비본래적 시간'이라고 말한다.
하이데거와 아인슈타인은 비슷한 시대를 살았다. 하이데거가 아인슈타인을 읽었을지는 모르겠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이론은 1915년에 출판되었고, 하이데거는 자신의 주저인 <존재와 시간>을 1927년에 썼다. 하지만 하이데거가 말하는 시간성은 아인슈타인을 닮은 점이 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의 핵심 아이디어는 우리가 흔히 고정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절대 시간과 절대 공간이 실은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실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시간을 살아간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물로 가득한 밀러의 행성에 내려가기 전, 주인공 조셉 쿠퍼(매튜 매커너히)는 "이곳의 1시간은 지구의 7년"이라고 말한다. 밀러의 행성은 블랙홀에 가까이 있어 블랙홀 중력의 영향을 받는다. 중력이 강한 곳에서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우리는 중력의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지구 중력에 이끌려 땅에 발을 붙이고 살고 있다. 고도 2만km 상공의 GPS 위성은 지상에 발을 붙인 우리보다 지구 중력의 영향을 덜 받는다. 그래서 GPS 위성의 시계는 지상의 시계보다 1년에 0.014초 빠르게 간다. 그래서 GPS 위성들은 늘 상대성이론 방정식을 이용해 자신의 시계를 수정한다.
태양을 제외하고 태양계에서 가장 무거운 행성은 목성이다. 목성의 질량은 지구의 300배가 넘는다. 목성 표면의 시간은 그래서 지구보다 느리게 간다. 목성의 시간은 지구와 비교하여 1년에 0.62초가 느리다.
그렇다면 재미있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우주에서 시간이 가장 느리게 가는 장소는 블랙홀일 것이다. 무한대에 가까운 중력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블랙홀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 은하 중심에도 거대한 블랙홀이 있고, 태양계는 그 블랙홀을 중심으로 회전한다) 그렇다면 우주에서 시간이 가장 빠르게 가는 곳은 어디일까?
당연히 중력이 없는 곳이다. 마이너스 중력, 그러니까 밀어내는 중력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중력이 가장 낮은 곳은 중력이 0이 되는 위치다.* 은하와 은하 사이, 별도 가스도 암흑물질도 거의 없는 거대한 빈 공간인 우주 공동(Cosmic Void) 한 가운데다. 물질이 없는 곳은 중력도 없다.
그렇다면 은하 사이의 우주 공동과 지구의 시간 차이는 얼마나 될까? 이것도 재미있는 생각인데, 결론부터 얘기하면 지구의 시간이 우주 공동에 비해 1년에 16.5분이나 느리다.
우리는 지구에 발을 붙이고 있기 때문에 지구의 중력이 꽤나 강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우주의 수준에서는 지구의 중력은 무시할 정도로 미미한 것이다. 태양계 대부분의 질량은 태양에 있다. 태양의 중력, 우리 은하의 중력, 우리 은하가 속한 은하단의 중력을 모두 계산하면 우주 공동에 비해 지구의 시간은 1년에 무려 16.5분이나 느리다는 계산이 나온다.
또한 지구와 태양은 지금으로부터 45억년 전에 탄생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1년에 16.5분의 차이는 엄청난 차이가 된다. 우리는 우주 공동과 비교하여 무려 14만년 뒤쳐진 우주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14만년 전 지구는 빙하기였다. 북미와 유럽은 거대한 얼음 덩어리였고, 사하라 사막은 사막이 아니라 초원지역이었다. 아직 현생 인류인 사피엔스가 형제들을 살해하지 못하고,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 플로렌스인들과 함께 살았다. 하나의 지적인 종이 태어나 이정도 문명을 구축할만한 시간, 돌창을 깎아 매머드를 사냥하던 인류의 조상들이 스마트폰을 발명하고 뉴턴 물리학으로 로켓을 발사하고 상대성 이론과 하이데거의 존재를 이해하기까지 걸린 문명과 역사의 시간만큼의 차이가 있는 곳이 우주 어딘가엔 있는 것이다.
*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밀어내는 힘은 있다. 우주는 지금도 가속 팽창하고 있는데, 우주를 밀어내고 있는 이 힘을 암흑 에너지(Dark Energy)라고 한다. 다만 이는 중력과 다른 힘이고, 이를 언급하기에 이 글은 엄밀한 물리학 텍스트는 아니어서 언급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