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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균 Oct 15. 2023

90년대의 칵테일 이야기

낭만의 시대가 남긴 칵테일 '동해'


'동해'의 레시피는 바텐더마다 조금씩 다른데, 기본은 블루큐라소와 과일주스다. 




최근 집 앞에 전통 클래식바가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어 열심히 다니고 있는데, 어제 칵테일 리스트를 맨 뒷장까지 넘겨 보고 빵터졌다. 무려 '동해'가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바의 90년대는, 창작 칵테일들의 시대였다. 바텐더 마다 창작 칵테일을 만들었고, 유명해진 칵테일들은 주변 바로 퍼져나갔다. 단골들에게 최근에 개발한 칵테일을 제공하고, 이름을 공모하는 낭만이 유행했던 시절이기도 하다. 


그 중엔 내가 이름을 붙여준 칵테일도 있었는데, 딸기우유, 캄파리, 그레나딘시럽 등이 들어가서 연분홍>빨강으로 색깔이 그라데이션되는 예쁜 칵테일이었다. 바에 앉은 사람들이 다들 '엔젤', '러브', '키스' 따위가 들어간 이름을 내 놓던 중, 내가 그 칵테일에 '헬로 키티'라는 이름을 제안했고, 그 순간 칵테일의 이름이 결정되었다. (바텐더들과, 주변 술꾼들의 열광적인 반응과 함께) 


그 외에도 당장 생각나는 것만 홍대에서 유행하던 '벌목공', 압구정에서 유행하던 '휴먼 브레인' 같은 칵테일들이 기억나는데, 이제는 다 없어졌거나 레시피가 실전되어서 어떠한 바에 가도 그 시대의 칵테일은 주문할 수가 없다. 


여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제 이 칵테일을 만났다. 이 칵테일, '동해' 만은 30년의 세월을 넘어 이 시대에까지 살아 남아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봐도 30대 밖에 되지 않은 것 같은 바 오너에게 이 칵테일을 어디에서 배웠냐고 물어보니 유튜브 보고 만들었다고 한다. 아아 위대한 유튜브의 힘 이라니. 


칵테일을 한참 마시던 90년대에도 이 '동해'는 시켜보지 않았었다. 블루큐라소가 들어가는 시큼한 계열 칵테일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제 만큼은 너무 반가와서 주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새콤 달콤한 칵테일 때문에 잠시 그 시절이 생각난 순간. 흥청망청 취해서 함께 길거리를 굴러다니던, 지금은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 시절 친구들은 다들 뭘하고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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