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균 Feb 01. 2024

50세 생일에

인생 반 세기 돌아보기

사진: Unsplash의Raychan



생일입니다. 생일이라고 뭔가 포스팅을 해보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 약간 감회가 새로운 생일이라...


오늘 생일로 저는 공식적으로 50살이 됐습니다. 개편된 한국 만 나이로요. 50년이면 반세기를 살았네요. 새삼 놀랍습니다. 


<하얀 로냐프강>을 출간한 건 대학생때였습니다만, <하얀 로냐프강>의 뼈대는 10대 때 이미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저는 교실 앞에서 두번째 줄, 가장 가운데 자리, 그러니까 선생님의 시선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천연덕스럽게 대학 노트에 소설을 썼습니다. 


그 시절에 쓴 것들 중에 완성된 것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백편에 가까운 소설들의 뼈대가 그 자리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중학교 3년 동안은 엄청난 양을 읽었고, 고등학교 3년 동안은 엄청난 양을 썼습니다. 제 10대는 읽고 쓰는 것에 몰두했던 시기였습니다. 


20대는 프로그래머로 살았습니다. 저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했습니다. 주변에 함께 공부하는 좋은 동기들이 많았기 때문인 것도 같지만, 학생 때는 나름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 대개는 장학금을 받았고, 이게 내 길인 것 같아서 대학원에도 진학했습니다. 


대학원 졸업 후에는 삼성전자에 취업했고, 수원 사업장 연구동에서 선임 프로그래머로 근무했습니다. 제가 만든 코드는 (이제는 사라진) XBOX360 DVD 플레이어에 들어가 있습니다. 프로그래머로서 최대의 업적은 이것이겠네요.   


그러다 30대 초에 대단한 결정을 합니다. 프로그래머 커리어를 포기하고 넥슨에 가기로 한 것이죠. 처음엔 신입 시나리오 라이터로 지원을 했었는데, 2년 7개월 만에 시나리오를 포함한 게임 디자인 전체를 총괄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됐습니다. (적성이 맞았던 것 같습니다) 


10년 동안 여러개의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어떤 게임은 대한민국 게임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했지만, 어떤 게임은 출시도 못하고 사라졌습니다. 어떤 게임은 출시도 못한 주제에 <크래프톤 웨이>에 사연이 실려 이름으로 남았습니다. 돌아보면 땀과 눈물과 기쁨과 좌절이 함께하던 시절이었습니다만, 그래도 30대 게임 디자이너의 삶도 나름 만족스러웠습니다.


40대는 게임 디자인에서는 한 발 물러났고, 관리자, 혹은 프로듀서의 일을 하며 지냈습니다. 파트장 역할을 하던 친구들을 팀장으로 성장시켰고, 경영진의 요구를 사양으로 분해하고, 사업 가능성을 조율하고, 조직에 동기를 부여하고, 스튜디오에 안전한 개발 환경을 제공하는 일을 했습니다. 

게임 프로듀서의 삶도 즐거웠습니다. 좋은 동료들을 얻었고, 괜찮은 결과물도 세상에 내 놓았습니다. 업무적으로 40대의 하이라이트는 작년 대한민국 게임대상에서 VR 게임으로는 역사상 최초로 본상(우수상)을 수상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이제 50대의 삶이 앞에 있습니다. 


10대는 소설가로 살았고, 

20대는 프로그래머로 살았고, 

30대는 게임 디자이너로 살았고, 

40대는 게임 프로듀서로 살았다면, 


50대는 좀 다르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게임을 만들지 잘 모르겠습니다. 30대 때는 게임을 만드는 것 자체가 즐거웠고, 40대 때는 멤버들을 코칭하고 성장시키고 조직 문화를 빌딩하는 것이 즐거웠는데, 만약 50대에도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면 저 스스로를 동기부여할, 이것들과는 다른 요인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대로 관성적으로 계속 게임을 만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의 인생은 잘 모르겠지만, 제 인생은 다소 단절적이었습니다. 연속적이지 않았습니다. 소설가의 삶과 프로그래머의 삶은 매우 달랐고, 프로그래머의 삶과 게임 개발자의 삶도 매우 달랐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단절을 만들어내는 인생의 불연속점에는 어떤 사건이 있습니다. 이번 변곡점은 트레바리와 [보탬] 모임이 만들어 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게임을 만들지 않는다면, 우선 일단 읽고 쓰던, 10대로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읽고 쓰고 이야기 나누는 즐거움을 트레바리가 다시 일깨워줬습니다. 다만 뭔가를 쓴다는 것이 소설가로 돌아간다는 뜻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예전부터 어렴풋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만, 이제는 더는 미룰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생물학적 은퇴연령   


 도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조바심이 좀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여전히 회사를 다니고 있고, 이 일을 그만두는 것은 저 혼자의 의지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오늘 당장 무언가를 실행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확실하게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것은 느낍니다. 제 50대의 삶은, 아마 40대의 삶과는 많이 다를 것 같습니다. 


<하얀 로냐프강> 초판본을 받아들고 그 표지를 한 없이 쓸어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촉감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넥슨에 처음 출근하던 날, 지하 대기실에서 나를 픽업할 팀장님을 기다리며 맡았던 커피향과, 그 때의 두근거림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삶을 향해 딛는 발은 늘 설렜었습니다. 오늘, 50세 생일에 새로운 두근거림을 느낍니다. 



바람이 부는군요. 긴 여름이 될 겁니다.   







* 마지막 문장이 무엇의 패러디인지 맞추는 놀이를 페북에서 했었습니다. 정답이 궁금한 분은 페북으로... 




https://www.facebook.com/iyooha/posts/pfbid0nkLfjPzZK5zgwLP6DRAyoCoq6Xtg2gLJp6yTmM8XBHZS9kt9g2LkLvJbdAmq5TPml


작가의 이전글 서울대 박찬국 교수님 트레바리 이벤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