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록시마 센타우리에서도 당신과 내가 보인다면
이번 #트레바리 클럽 [인생에 보탬은 안되지만] 주제책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다. 모임 날 쓸 발제문을 작성하다가, 감회가 새로운 장면을 만나서 퇴근하고 몇 줄 소회를 남긴다. (아마도 우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지구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을)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에 관련된 이야기다. 다만 청소년 시절 당시의 잡지, 신문, 뉴스 등에서 읽고 들은 것들을 내 나름대로 재구성하는 것이라 다소 엄밀하지 않을 수 있다. *참고자료를 읽고 쓴 글이 아님 주의*
이제는 태양계를 감싸고 있는 카이퍼 벨트를 벗어나 미지의 우주를 항해하고 있는 보이저는 1977년에 발사됐다. 1호보다 2호가 먼저 발사되었는데, 두 대의 보이저는 각각 임무에 따라 항로가 달랐고, 그래서 태양계를 벗어나는 날도 달랐다. 프로젝트 담당자들은 먼저 발사되는 기체가 아니라 먼저 태양계를 떠날 기체에 1호기의 번호를 붙였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태양계 안의 행성들을 탐험하는 것은 물론이고, ‘태양계 밖을 항해’하는 것에 임무의 방점이 찍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초등학교 시절 소년지에서 읽었는데, 그 때의 가슴 벅참이 지금도 기억난다. 태양계를 벗어나는 것이 주요 목적이고, 그래서 벗어나는 차례대로 우주선에 번호가 주어지다니! 이 설정 만으로도 아마 세계 소년 소녀들은 공상의 세계에 한참이나 빠졌을 것이다.
지구를 떠난지 13년 후인 1990년, 보이저 1호는 예정대로 태양계를 떠나기 위해 카이퍼 벨트 진입을 앞두고 있었다. 카이퍼 벨트는 해왕성과 명왕성 궤도 바깥쪽에 있는 소천체 밀집 지역이다. 소천체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멀리에서 보면 띠(벨트) 모양으로 보이는데, 이 엄청나게 많은 천체들은 태양의 중력장을 벗어나 있기 때문에 예측불가능한 불규칙 경로로 움직인다.
당시 인류에겐 카이퍼 벨트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카이퍼 벨트의 구성과 특징을 정확히 알 수 없었기 때문에 NASA의 연구자들은 카이퍼 벨트에 진입한 이후에도 보이저와 정상 통신이 가능할지 확신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보이저와 통신이 끊어지는 경우를 대비해 보이저와의 이별을 준비했다. 지구에서 아무런 통신이 닿지 않더라도 혼자 항해를 계속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 때, 보이저의 영상 책임자였던 칼 세이건은 NASA에 대담한 제안을 한다. 보이저를 진행 방향에서 180도 회전시켜 지구의 사진을 찍어 보자는 제안이었다.
당시에 칼 세이건의 제안에 기술 책임자들은 격렬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보이저를 우주 공간에서 180도 회전시키는 것은 당연히 스펙에 포함되어 있지도 않았고, 지구에서 무려 61억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보이저에게 무리한 동작을 지시할 경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파 수신 안테나가 지구쪽을 향하지 않는다면 그 즉시 보이저와의 통신은 끝날 것이었다.
그러나 칼 세이건은 이 작업을 밀어붙였다. 역시 하는 수밖에 없어진 NASA의 엔지니어들은 정교하게 보이저를 컨트롤하여 이렇게 지구의 사진을 찍었다. 이것이 바로 인류 역사에, 가장 먼 곳에서 찍은 지구의 사진이다. 1990년을 살고 있었다면 당신도 나도 이 사진에 함께 찍혀 있다.
칼 세이건은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보라, 저것이 지구다. 저것이 우리다. 당신이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 모든 어머니와 아버지들, 기쁨과 고통, 신앙과 이데올로기, 모든 문명과 그 파괴자들이 저 티끌 위에 살았다.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정치인과 슈퍼스타, 인간 역사의 모든 성인들과 죄인들이 저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이 문장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벅참을 기억한다. 이 문장이 <코스모스>에 나온다기에 중학생 때 읽었던 책을 뒤졌는데 발견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30대 때 이 책을 다시 읽게 된 계기가 이것이었던 것 같다) 이 문장은 알고 보니 <코스모스> 본문에 있는 것이 아니라 13부작 <코스모스> TV 다큐멘터리에 있었다.
정작 <코스모스> 에는 누락되었지만, 나는 <코스모스>에서 칼 세이건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결국 이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저 창백한 푸른 점 위에서 태어나 그 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죽는 작은 존재다. 우리는 우주의 역사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짧은 찰나의 순간을 살다 죽는다. 칼 세이건은 이 작은 티끌들에게, 너희들은 사랑하며 살아가기에도 너무 짧은 순간을 살 뿐이니, 자신을 사랑하고, 주변 사람들과 세상에 애정을 갖고 대하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모임 때 사용할 자료를 리뷰하고 정리하다 감회에 젖어 (다들 알고 있는) 옛날 얘기를 적어 보았다. <코스모스>는 어린 시절 내게 정말 여러모로 특별했던 것 같다.
참고로 보이저는 당시 NASA 연구자들의 예상과는 달리 카이퍼벨트를 통과한 이후에도 발사 후 46년째 지구와의 통신을 이어가고 있다. 전력을 아끼기 위해 최소한의 장비만을 남기고는 거의 다 꺼 둔 상태이지만 여전히 자신이 지구에서 발신한 전파를 수신했다는 신호를 지구에 보내오고 있다.
창백한 푸른 점에 위에 서 있는 당신과 나를 찍었던 보이저 1호는, 이제 1만 6700년 후에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인 프록시마 센타우리에 도착한다. 프록시마 센타우리에서도 당신과 내가 보인다면, 다시 한번 보이저에게 사진을 부탁해볼 수 있을까.
https://youtu.be/x-KnsdKWNpQ?si=7g5-MrMO98MBhRN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