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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월산 Jun 29. 2020

떠날 땐 인사도 없이...

먼길 떠난 그를 기리며 

"카톡"


오랜만에 만든 짜장면으로 간단히 저녁을 해치우고,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검색하며 시간을 때우고 있을 때였다. 교회에서 알게 된 형제님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이 시간에 웬일이지? 

  

"대성이 누나입니다. 지금까지 연락하고 있으셔서 문자 드립니다."


 누나? 한국에 있는 누나가 무슨 일로 나한테 카톡을 보냈을까?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나머지 메시지를 급히 읽어 내려갔다.


"대성이가 지난 6월 15일에 심장마비로 사망하였습니다."


사망... 하였습니다. 그 일곱 글자가 내 머리를 뱅뱅 돈다. 말도 안 돼. 이게 무슨 상황이지? 손가락이 부르르 떨렸다. 답글을 썼다 지웠다 몇 번을 반복하고야 겨우 메시지를 보냈다.


"얼마 전에 저희 집에서 식사도 같이했는데.. 형제님이 진짜 사망한 건가요?"

"네... 저도 믿기지 않아요."


건너편 식탁에 남편이 앉아 무심히 핸드폰을 쳐다보고 있다. 2주 전, 엄형제는 그 자리에 앉아 웃기도 하고 농담도 하면서 우리와 담소를 나눴었다. 아직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한데... 사망이라니.


엄형제를 처음 만난 건 2년 전이었다. 적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싱글이었다. 미국 이민 생활을 하며 터득한 건 사람들에게 초면에 너무 많은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다. 다들 다양한 이유로 미국행을 결정하고, 어떤 사람은 평탄하게, 또 어떤 사람은 우여곡절 끝에 미국에 남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고 친분이 생겨 한 분 한 분의 미국 정착기를 듣다 보면, 놀랄만한 이야기가 많다.  


엄형제는 알래스카로 취업 이민을 왔다고 했다. 알래스카의 작은 호텔에서 밤낮으로 일하며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알래스카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우리의 귀를 사로잡은 건 낚싯줄만 던지면 줄줄이 잡혀 올라온다는 바다 연어와 눈 덮인 알래스카에서의 일상 이야기였다. 교회 예배가 끝나면 우린 엄형제를 중심으로 삼삼오오 둘러앉아 그의 알래스카 생활을 재밌게 듣곤 했다. 


우리는 몇 달에 한번 그를 집으로 초대하여 식사를 같이 했다. 수산물 도매 업체에서 일했던 그는 늘 연어나 생선 횟감을 들고 와 식탁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엄형제 덕에 우리는 알래스카 연어도, 이름도 생소한 생선회도 맛볼 수 있었다. 그는 말은 많지 않았지만 말보단 행동이 앞섰고, 말은 투박했지만 마음은 따뜻한 사람이었다. 


작년 말쯤이었다. 교회에서 만난 그가 모처럼 반갑게 인사를 했다.


"저 곧 결혼할 거 같아요."

"그래요? 그래서 얼굴이 이렇게 활짝 폈구나. 축하해요."     


지인이 베트남 아가씨를 소개해 줬다고 했다. 베트남에도 2번 다녀오고, 이제 그 아가씨를 미국으로 데려오는 절차만 남았다고 했다. 우리는 진심으로 그를 축하했다. 그를 안 이후로 그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가 정말 행복해 보였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미국에도 급속도로 퍼지며 교회도 나가지 못하고, 친구도 만나지 못한 채 몇 달이 흘렀다. 5월 말이었다. 남편이 툭 던지듯 물었다.


"엄형제 결혼했어?"

"나한테 물으면 어떻게 해? 결혼했으면 당신한테 연락 왔겠지."


그렇게 꽤 오랜만에 엄형제에게 연락이 닿았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외식을 할 수도 없고, 집으로 손님을 초대하는 것도 조심스러웠지만, 점심 초대를 했다. 거의 6개월 만에 만난 그가 마냥 반가웠다. 마음고생을 한 듯 얼굴이 수척해 보였다. 무겁게 입을 연 그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그 결혼이 깨졌다고 했다. 미국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무섭게 번지자, 그 아가씨가 파혼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결혼하면 같이 살려고 조금 넓은 집으로 옮겼는데, 이제는 그 집에서 혼자 여유 부리며 살고 있다고 담담하게 그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떤 위로도 도움이 되지 않았겠지만, 우린 또 다른 인연이 있을 거라고 그를 위로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나는 남은 음식을 정성껏 싸서 그의 손에 들려주었다.  


"형제님, 저녁 혼자 드시기 적적하면 언제든 연락하고 저희 집으로 오세요. 숟가락 하나만 더 얹으면 돼요."


원래 이런 오글거리는 말은 못 하는 나였지만, 그날만큼은 진심이었다. 


"담엔 광어 한 마리 갖고 올게요."


그는 웃으며 문을 나섰고, 나는 담에 먹을 광어 생각에 맘이 한껏 부풀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엄형제의 부고 소식을 듣고 이틀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했다. 오만가지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다. 인생은 과연 뭘까? 태어나는 건 순서가 있어도 죽는 건 순서가 없다더니. 홀로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을 그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에게 제대로 해준 게 없다. 내 음식 솜씨가 썩 좋진 않기에, 그에게 맛있는 밥을 선사했을지는 자신이 없다. 하지만, 내가 준비한 밥 한 끼에 그가 따뜻함을 느꼈기를 바란다. 마지막 가는 길이 외로웠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그를 애도하고 추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가 알았으면 한다.   


형제님, 그곳에서 부디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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