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그 사람이 불편하고 싫은가?
열등감이거나 자기 보호본능이거나
나는 뇌과학자도, 심리학자도 아니기 때문에 내가 하는 말은 전문적인 연구나 실험에 입각한 이론이 아니다. 단지 내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생각해 보는 것이니 철저히 주관적이다. 개똥철학이나 개뼈다귀 이론이라고 봐도 좋다. 그럼에도 나는 내 생각이 나만의 고유한 생각이 아닐 것임을 확신한다. 참 신기하게도 세상에는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그러니 누군가, 심지어 날 전혀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내 이야기를 듣고 맞다고 응수해줄지도 모를 일이다. 긴 서론은 여기까지.
직장에서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인간관계는 상호적인 데다 ‘교감’이라는 것은 좋은 느낌만 주고받는 것은 아니므로 그 역시 나를 싫어할 것이라고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누가 먼저 상대를 싫어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아니, 중요한가? 그가 나를 싫어하기 때문에 내가 그를 싫어한다고 하면 내가 좀 더 착한 사람이 되는 걸까?
지난 연말 연휴에 따뜻한 방바닥에 얼굴을 붙이고 누워 생각해 보았다.
‘나는 왜 그 사람이 싫지?’
물론 싫어할 만한 이유는 넘버 원, 투, 쓰리, 포, 파이브,... 순식간에 번호 붙여서 항목별로 나열할 수 있다. 그런데 다시 질문,
‘왜?’
세상에 이상하고 혐오할 만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당장 뉴스만 틀어봐도, 인터넷 기사만 검색해 봐도 넘버 원, 투, 쓰리, 포, 파이브,... 가 된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때로는 분노가 치밀어오르긴 해도 내 일상생활에 큰 방해가 될 만큼 오래 기억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왜 직장 사람의 말과 행동은 집에 와서까지 기분 나쁠까? ‘그 사람은 원래 그래’라고 가볍게 생각하며 넘기지 못하는 걸까?
인정하긴 싫지만 열등감과 자기 보호본능 때문 아닐까? 나보다 그가 더 잘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로 인해 내가 상대적으로 더 못하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게 싫다. 심지어 그가 나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면 스팀이 뿜뿜.
‘내 눈에도 내가 못나 보이는데 네 눈에도 내가 못나 보이는구나.’
상대방이 내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상대방에 대해 무심하거나 관대하기 어렵다.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나를 힘들게 할 것 같고 그것을 피하거나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이 되면 상대방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이 증폭되는 것 같다. 어쩌면 나를 지키기 위한 본능과도 같다. 나는 안전해야 하고 나 스스로에게 여전히 괜찮은 사람이어야 하므로 이것을 방해하는 상대방이 이상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내 눈은 볼록렌즈처럼 그 사람의 단점을 확대시킨다. 그 사람을 싫어하는 내 감정을 이성이 합리화시키는 작업이 진행된다. 그 사람을 싫어하는 나한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은 싫어할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음을 나 스스로에게 설득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그것을 다른 방면으로 합리화하려는 태도는 어쩌면 본능처럼 자연스러운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러한 과정은 시간과 에너지가 들고 나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내 마음의 방을 오랫동안 차지하게 하는 것만큼 억울한 일도 없다. 내가 그 사람을 싫어한다고 해서, 심지어 피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도 없다. 그는 그대로 앞으로도 잘 살아갈 것이다. 그렇다면 나 역시 한 귀퉁이에서 입술만 삐죽거리며 서 있기보다는 떨치고 잘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이 글을 쓰는 동안 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답장에 “네.”라고 할지 “네~”라고 할지 순간 고민하다 물결을 넣어주기로 했다. 마침표의 작은 점에 내 마음의 응어리를 응축시켜서 보낼 수도 있지만 물결 표시로 마음을 물 흐르듯 흘려보내기로 한 것이다.
잘 사쇼.
당신처럼 나도 잘 살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