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와 행운을 끌어당기는 힘?
이서윤, 홍주연, <더 해빙>의 씁쓸한 리뷰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서 이렇게 씁쓸한 기분이 들었던 때가 언제였더라? 하드커버 손바닥 크기의 이 책 가격은 16,000원. 그나마 도서관에서 빌려왔기에 망정이지 내 돈 주고 산 책이었다면 맛난 디저트를 포기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컸으리라. ‘부와 행운을 끌어당기는 힘’이라는 말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런 힘이 있다면 큰돈을 주고서라도 얻고 싶을 텐데 한 권의 책을 통해 그에 대한 힌트라도 얻을 수 있다면 책값이 전혀 아깝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하물며 이 책을 읽고 난 독자들의 리뷰, 예를 들면,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 “정말 마법 같은 책이다!”, “행운의 바이블이다”, “내 인생의 진정한 선물이었다” 같은 것들은 책 내용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그런 마법을 받아들일 만한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는 이 책이 인생의 진정한 선물도 아니었고 당연히 이 책으로 인해 인생이 바뀌지도 않았다. 바뀐 것이 있다면 보통은 책을 읽으면 뭔가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뭔가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는 것이다. 욕심이나 집착이 빠져나가면서 마음이 고요하고 평화로워지는 비움의 상태가 아니라 그냥 헛헛함이었다. 이런 책도 베스트셀러가 돼서 많이 팔리는구나. 최근에 읽었던 SF소설보다 더 허구적인 느낌이 났다고 하면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그런데 나는 정말 읽으면서 이게 소설인 줄 알았다.)
책 내용의 핵심은 걱정하지 말고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살라는 것이다. 긍정적이고 여유 있는 마음으로 살다 보면 부나 행운이 따라온다는 것이다. 좋은 말인데 사실 여기저기서 이미 많이 들어본 말이다. 이 얘기를 하기 위해 책 한 권의 분량이 필요했던 걸까?
이 책에서는 ‘구루’라는 이서윤(개명 전 이름 이정일)이 사실상 주인공이다(구루는 힌두교, 불교, 시크교 등 기타 종교에서 일컫는 스승으로 자아를 터득한 신성한 교육자를 지칭한다고 하는데 왜 이서윤이라는 인물이 ‘구루’인지 잘 모르겠다). 그녀는 이탈리아에서 코발트색 코모 호수를 배경으로 길게 드리워진 햇살을 받으며 홍주연 기자에게 이런 말을 한다. 당신도 진짜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이미 학생 때부터 명성을 떨친 그녀를 만나기 위해 사업가들이 고급 승용차를 타고 그녀의 학교 앞에 줄지어 섰다고 하는데 그런 그녀와 단둘이 만난 상태에서 “당신도 부자가 될 수 있어요.”라고 말해주다니, 그 기자가 얼마나 가슴이 벅찼겠는가? 그래서일까? 이 책에서 홍주연 기자는 이서윤을 여신처럼 묘사한다. 기품 있고 우아하고 따뜻하고 사려 깊고 위엄 있고 존재감 있는 사람. 대한민국 상위 0.01%가 찾는 행운의 여신.
그런데 이서윤과 관련한 사례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서윤의 말을 믿고 따랐더니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사업가가 이서윤의 말대로 지갑에 1천 달러를 넣고 다녔더니 두 달 후 매출이 증가하고 손익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서윤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사업이 부도를 맞아서 채권자들이 집으로 몰려와 고함을 지르고 가구마다 빨간딱지를 붙였는데 이미 서윤은 이 상황을 미리 예측하고 있었고 마음만 잘 다스리면 커다란 행운이 온다고 믿는 서윤 덕분에 집안 사정이 나아졌다, 1억 달러 상당의 부동산을 가진 부자가 땅이 안 팔린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서윤이 “좋은 기회가 오고 있네요.”라고 말한 후 정말로 그 땅이 개발이 돼서 더 큰 부자가 되었다, 등등. 그런데 이 중에서 세계적인 회사의 창업주들이 이서윤의 통찰에 따라 전략을 수정하고 인사를 결정하는 등 자문을 구해 얻은 답을 즉각 실행에 옮겼다는 것은 사실이라면 매우 실망스럽다. 자기 개인 재산을 사고파는 문제도 아니고 회사 경영 전략 및 인사 문제를 한 역술인의 말만 믿고 그대로 실행에 옮길 수 있단 말인가? 물론 그동안 정치인, 재계 인사, 연예인들이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가 조언을 구한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자신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정도면 모르겠지만 결정을 좌지우지할 정도라면 그것은 지나치다.
이렇게 부정적인 평가를 쏟아내고 있지만 사실 나 역시 이 책을 집어 든 이유는 제목에 혹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부와 행운을 거부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속세를 떠나 수련하는 종교인이 아닌 한, 부와 행운을 끌어당기는 힘을 배워서 가질 수 있다면 당연히 욕심날 만하다. 하지만 이 책의 메시지는 이미 널리 알려져 뻔한 이야기를 화려하게 꾸미고 힘주어 말하는 듯했고, 이서윤과 관련된 사례들은 과장되고 미화되어 혹세무민하는 이야기 같았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적인 감상이며, 책에 대한 반응이 다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잘못됐다고 말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들은 이 책이 읽기 쉬웠으며 메시지가 간단하고 명확해서 생활에 실천하기 용이했다고 했다. 이 책을 통해 그들이 자신의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 긍정적이고 편안해졌다면 이 책은 그들에게 매우 가치 있고 중요한 일을 수행한 것이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이서윤의 SNS에도 들어가 보았다. 전문작가가 찍어준 화보 같은 사진들. 어떤 사진들은 옷차림이나 포즈가 살짝 야하다. 댓글들을 읽어보니 그녀에게 고맙다는 사람들이 참 많다. 어떤 댓글들은 마치 그녀를 신이나 교주 대하는 듯한 느낌을 줘서 다소 거북하기도 하지만... 그녀와 상담을 하려면 돈을 지불해야 한다. 더 큰 부와 행운을 얻기 위해 그 정도 돈은 약과일 수도 있지만 그녀가 테드나 세바시에 출연해서 강연을 한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우선 그녀의 대학원 논문의 표절 여부를 심사해 보면 좋겠다.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그녀를 집중 탐사해보는 건 어떨까? (아, 나 너무 비뚤어졌나? 혹시 이렇게 의심이 많아서 부와 행운이 안 들어오는 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