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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만춘 Jun 27. 2021

#생기부 종합의견란에 적힌 네 글자

이기적임.
생기부 고1 종합의견란에 적혀 있던 문구입니다. 딱 네 글자와 마침표. 담임선생님께서 손글씨로 또박또박 힘주어 쓰셨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전달하는 메시지가 단호하고 명료했습니다. 제가 이 문구를 처음 대면한 것은 대학 졸업 후 사립학교 교사 채용에 지원하면서 고등학교 생기부를 뗐을 때였습니다. 하필 지원하는 학교가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학교였습니다. 타인에 대한 사랑, 이타심과 봉사정신을 최우선시하는 그분들 앞에 '이기적'이라 평가받은 사람이 지원서를 내민 셈이었습니다. 예상된 결과일까요? 면접, 혹은 변명할 기회도 없이 서류에서 탈락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오랜만에 고1 담임선생님을 떠올려 보게 됐습니다.
 
 교과목: 교과목명이 '법과 정치'
 연세: 50대 중반?
 성별:
 별명:
 성격: 말 수가 거의 없으시고 좀체 웃지 않으심. 딱딱하고 단호한 말투. 엄격한 느낌으로 아이들이 알아서 움직임. 6개 반 중에서 우리 반이 가장 조용했음.
 
 그런데 그분은 왜 '이기적임'이라고 간단명료하게 평가하셨을까요?
 나는 정말 이기적인가?’

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본래 이기적이지 않나요? 다만 저는 초등학생 때부터 성당에 다녀왔고 고등학생 때도 봉사 동아리에서 장애인의 집과 보육원에 다니는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대학생 때도 봉사 동아리에서 활동했고 대학교 2학년 때는 봉사부장으로 솔선수범하느라 주 3회 노숙자 의류를 세탁하러 다니며 학점은 바닥을 쳤습니다. 방학 때마다 농촌봉사활동, 한센병 환자촌 봉사활동을 했고 지금은 사회복지사와 결혼해서 살고 있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무료로 방과후 수업을 운영했고, 장학금 연결에 누구 못지않게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학교 축제 때 우리 반은 유일하게 바자회를 기획, 운영해서 수익금으로 연탄을 구입해서 직접 어려운 가정에 배달하는 봉사를 진행했습니다. 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고 "이 정도 갖고 뭘 그러냐?" 할지 몰라도 저는 그저 제 위치에서 열심히 나누는 삶을 살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그런데 다른 설명도 없이, 반듯반듯하게 쓰인 문구, '이기적임'으로 요약돼 버리는 제 고등학교 1년의 학교생활은 처음 봤을 때도, 지금도 당황스럽고 아픕니다.
 
 1 때 저는 집을 떠나 혼자 하숙을 하며 학교를 다녔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하숙집에서 세탁도 해 주고 심지어 방 청소도 해 준다고 했지만 당시 제가 머물던 하숙집에서는 세탁은커녕 세탁기도 못 쓰게 했습니다. 하숙생들이 머물던 2층에는 온수가 나오지 않아서  겨울에는 아무리 재빨리  머리를 감아도 물이 너무 차서 머리가 깨질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매일 밤에 찬물로 교복 블라우스를 빨아서 널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쩌다 그런 하숙집에 살게 됐을까 싶은데 그때가 하숙 경험이 처음이었고, 중간에 옮길 생각은 미처 못 했습니다. 그냥 참고 그 상황에 맞춰 살았습니다. 자취하는 친구들도 있었으니 저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습니다.
 
 우리 중학교에서 그 고등학교에 배정된 여학생이 저밖에 없었습니다. 입학식 때부터 친구 없이 혼자 학교에 갔고, 가서도 말 붙일 친구가 없었습니다. 같은 제주도였지만 시내에서 줄곧 살아온 친구들은 제가 늘 쓰는 사투리를 잘 쓰지 않았습니다. 일 년 동안 제 별명은 '촌닭'이었어요. 사투리를 많이 쓴다고 얻은 별명인데 그때도 가히 듣기 좋은 느낌은 아니었지만 제가 말할 때마다 친구들이 웃으며 즐거워해서 저도 같이 웃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여학생들 사이였지만 시골에서 올라왔다고 약간 무시하는 의도가 담겨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외로웠고 괜히 기가 죽었습니다.
 
 지금 와서 떠올리는 고1의 제 모습은 안쓰럽습니다. 중학교를 갓 졸업한 나이였고, 집에서는 귀여운 막내였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1년 동안 학교에서도, 하숙집에서도 마음 붙일 사람 없이 제 나름대로 고군분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실에도 잘 들어오시지 않고 대화를 많이 나눠본 적도 없는 담임선생님께서 저를 얼마나 자세히 관찰하고 이해했기에 그런 단정적인 결론을 낼 수 있었는지 사실 지금도 의문입니다.
 
 그분은 왜 나를 이기적이라고 보셨을까?’
 한때는 이 생각을 하면 억울하고, 선생님을 찾아가서 여쭤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내 일 년 동안의 학교생활이 그 단순 명료한 네 글자로 일축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폭력적이고 잔인하게 느껴졌습니다.
 
 사실 그래서 지금도 학년말 아이들의 생기부 종합의견란을 쓸 때에는 마음을 정리하고 표현을 신중하게 고르게 됩니다. 무조건 좋은 말만 할 수는 없겠지만 행여 나중에 보고 상처 받는 아이들이 없도록 신경이 쓰입니다. 작년 말에는 생기부 점검 작업 시 한 학년 모든 반의 종합의견란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 선생님들께 부정적인 평가는 되도록 표현을 완화할 수 있는지 고민해 보고 발전 가능성을 함께 꼭 덧붙여 주시면 좋겠다고 부탁드렸습니다. 그것이 기본적으로는 생기부 작성 매뉴얼과도 맞지만, 개인적으로는 또 다른 내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그런데 한편, ‘내 책임은 전혀 없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분이 나나 우리 집안과 개인적인 원한관계가 없으실 텐데 굳이 나쁘게 쓰실 이유는 없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분은 보이는 대로 쓰셨을 겁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청소시간에 내 행동 때문이었을 것 같습니다. 당시 청소 시간엔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이 명확지 않았고 그냥 다 같이 알아서 청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부담임 선생님께서 왜 그러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유달리 나를 예뻐해 주셨습니다. 결국 독이 됐지만요. 교회 장로를 맡으신 그분은 청소시간마다 저에게 은행 심부름을 시키셨습니다. 정말 자주, 거의 매일 학교 근처 신협에 현금을 들고 입금하러 다녀오라는 거였는데 저는 저를 믿고 돈 심부름을 시키시는 선생님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부지런히 뛰어갔다 오곤 했지만 그러다 보니 청소 시간에 교실 청소를 제대로 하기는 힘들었습니다.      


담임선생님은 청소 시간에도 교실에 잘 들어오시지 않았지만 어쩌다 오셨어도 다른 친구들처럼 열심히 청소하고 있는 제 모습은 못 보셨을 게 당연합니다. 부담임 선생님께서 제게 심부름 시키신다는 것을 담임선생님께 말씀하시지 않았다면 담임선생님께서는 끝까지 저에 대해 오해를 하고 계셨을지 모를 일입니다. 청소시간만 되면 혼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아이로 말이죠.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떤 식으로든 담임선생님께 그 사정을 알리거나, 아니면 제가 부담임 선생님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당시 분위기로는 거절하기가 힘들었을 것 같긴 하지만요. 만약 이 점 때문에 담임선생님께서 저를 이기적으로 보셨다면 한 번쯤 저를 불러 이유를 물어보시거나, 야단이라도 치셨으면 해명할 기회가 있었을 텐데 그 점은 지금도 많이 아쉽습니다.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조심스럽고 위험한 일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보는 모습은 그들의 일면일 뿐이고, 심지어 그 일면조차 어떤 상황과 연유에 기인한 것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또한 사람은 흔히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만 보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해 깊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다른 사람을 단정적으로 평가 내릴 수 없습니다.    

  

특히 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의 평가나 말 한 마디는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칩니다. 최근에 제가 가르치고 있는 중 1 남학생이 쓴 글을 읽었는데 거기에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담겨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느끼며 외로운 이 아이를 어느 날 한 친구가 따로 불렀습니다. 자신에게 말을 걸어준다는 것에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었지만 그 친구는 이 아이의 눈에 고무공 조각을 넣었습니다. 당황스럽고 아파서 울었는데 정작 담임선생님께서는 이 아이를 나무랐다고 합니다. 어린 마음에 같은 반 친구에 이어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모양입니다.
 
 저의 고1 담임선생님께서도 저의 외로움 같은 마음에는 관심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저에 대한 그분의 평가는 평생 기록으로 남습니다. 저 역시 아이들을 만나면서 저도 모르는 순간에도 상처를 주고 있는지 모릅니다. 때로 그 상처가 생각보다 깊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을 가르치는 직업. 그것도 아직 미성숙하고 그만큼 여린 아이들과 만나는 직업인만큼 삼가는 마음이 더 필요해 보입니다.      


토닥토닥.

외로운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주고, 따뜻한 눈빛으로 지켜봐 주는 선생님이 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입니다.

      

어둔 거리 비추는 작은 등불처럼

내 주위의 사람에게 빛을 줄 수 있다면

나의 한 평생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나의 사랑으로 빛을 줄 수 있다면

 - 김선호, <하늘의 태양은 못 되더라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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