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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만춘 Feb 08. 2023

엄마에게 가는 길

엄마가 무릎 수술을 하셨다. 오늘, 수술한 병원의 퇴원 수속을 하고 재활 병원으로 옮기시는 것을 돕기 위해 목동에 다녀왔다. 병원까지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서서 지하철을 세 번 갈아타며 먼 길을 가야 했다. 유튜브를 듣느라 반쯤 정신을 놓아서 엉뚱한 지하철을 타고도 실수를 늦게 알아차린 바람에 안 그래도 먼 길을 더 멀리 돌아서 갔다.


카디건, 마스크, 치약, 샴푸 등 엄마가 필요하다고 하시는 물품을 담은 가방을 손에 들고, 결국 읽지도 않은 무거운 책을 넣은 가방을 어깨에 메고 다녔다. 병원에 도착도 하기 전에 토할 것 같이 머리가 아팠고 몸이 피곤했다. 마침내 도착한 역에서  올라가야 할 아뜩한 계단 앞에 섰을 때, 장애인들의 투쟁으로 역마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을 때 혜택을 보는 사람들은 장애인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크게 와닿았다.


가는 길은 멀고 힘들었지만, 간 보람은 확실히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병원은 여전히 보호자 면회를 금지하기 때문에 엄마 입원 후 수술, 회복 과정을 지켜볼 수 없었다. 엄마가 입원하신 후 일주일 만에 뵀다.


보호자가 오지 않은 환자는 직접 아픈 몸을 이끌고 원무과에 와서 퇴원 수속을 하고 갔고, 재활 병원에 이동할 때는 병원 관계자의 도움을 받았고, 재활 병원에 도착한 후에 직접 접수하고 병실에서 스스로 짐 정리를 하는 모습이었다. 재활 병원은 간호간병 병동이 아니라서 환자가 직접 해야 하는 것이 많았다. 무릎 수술 부위가 아직 퉁퉁 부었고, 통증도 있고, 보조 장치 없이는 서 있기도 힘든 상태의 환자들이었다. 대부분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한 어머니들일 것 같은데 이럴 때 도와주는 가족 없이 혼자 애쓰시는 모습이 안타까워 보였다.


 나는 엄마를 뵙기 전에 퇴원 수속을 먼저 마쳤다. 엄마 짐을 챙겨서 재활병원으로 이동할 때 엄마를 부축하고 보행보조기 방향을 조절했다. 차에 타고 내릴 때 나를 의지하시게 부축했고, 안전벨트도 매고 풀어 드렸다. 재활 병원에 가서 엄마가 의자에 앉아 계시는 동안 접수를 하고, 기본 검사를 할 때 이동을 도왔다. 재활병원은 병실까지 보호자가 들어가서 짐 정리를 돕게 했다. 엄마의 짐에서 자주 쓰는 물품은 눈에 잘 보이는 곳에 꺼내고 나머지는 사물함에 집어넣었다. 마실 물을 떠다 드리고, 엄마 소변 받으신 것은 간호사실에 대신 내고 왔다. 점심 식사 시간이 돼서 엄마를 안아 드리고 병원을 나와 집으로 왔다.


평소 못한 효도를 몰아서 한 기분이다. 병원비도 전액 엄마가 내셔서 난 오늘 기껏해야 지하철 요금밖에 들지 않았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일을 해 드린 것 같아 뿌듯했다. 엄마는 농사짓고 사는 촌부일지언정 딸이 와서 아이처럼, 공주님처럼 살피고 시중을 들어주니 남 부럽지 않으셨을 것 같다(아닌가? 병원비 대신 내주는 자식 둔 부모가 부러우셨을까? ^^;). 내 방학 중에 엄마가 수술하셔서 내가 가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비록 지하철을 잘못 타고, 저질 체력으로 오가는 길을 힘들어하긴 했어도, 내가 여기 살아서 병원에 가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내 몸이 크게 아픈 곳 없어서 엄마 도와드리러 직접 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엄마가 아플 때 가서 도와 드리는, 자식의 도리를 한 것 같아서 뿌듯한 하루다.



p.s. 재활병원은 매일 보호자의 면회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 안내를 환자도 알 수 있도록 분명하게 했다.

아,, 음.. 꽤 멀던데...

면회가 금지된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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