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곡을 시작해 버렸다

결국 인생은 어디로 흐를지 모르는 거야

by 비영


어릴 때부터 나는 꿈이 많은 아이였다.


대통령, 연예인, 외교관, 전화기, 나무, 돌멩이... 그 나이대 아이들은 생물에서 무생물까지 장래 희망이 수십 번씩 바뀐다지만 나는 유독 더 그랬다. 늘 하고 싶은 게 가득했다. 과학실험이 재밌어서 과학자가 되고 싶었고, 그러다 가르치는 게 재밌어서 과학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가, 피아노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뒤부터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다.


다행인지 아닌지, 모두 평균 이상쯤은 했다. 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대개 어느 정도는 잘했다. 좋아하는 것을 잘하는 건지, 잘하는 것을 좋아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좋아하는 것만 열심히 해서 잘했을 수도 있겠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전부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무엇하나 포기하는 게 아쉬웠다. 하지만 정말 말 그대로 어느 정도 잘하는 수준이라, 뭘 선택해야 좋을 지도 잘 몰랐다.



그러다 고등학교 시절, 전혀 생각지도 못한 기회로 작곡을 시작하게 됐다. 흔히 생각하는, 컴퓨터로 비트를 찍고 녹음하는 그런 작곡이 아니라 오선지에 펜으로 악보를 쓰는 클래식 작곡이었다.

나는 당시 여전히 과학을 좋아해 이과로 진학한 상태였다. 하지만 내 수학 점수는 형편없었다.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도피성 결정이었던 것도 같다. 수학을 못 하는 이과가 뭘 하고 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선생님께 작곡이라는 선택지를 권유받자마자 갑자기 놓친 피아니스트의 미련이 들끓었다. (비극적인 이유로 아깝게 피아니스트의 꿈을 포기한 것도 아니었다. 내 실력은 딱 평균 이상 언저리였다.)


아무튼, 길게 고민하지 않고 작곡 입시를 시작하게 됐다.


부모님은 그 당시의 내가 무척 확고해 보였다고 하셨다. 당연히 그땐 그랬다. 나는 과학과 음악이라는 이상한 조합의 두 학문을 매우 좋아했고, 그중 하나를 직업으로 삼고 싶었다. 하지만 과학은 과학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으니 음악을 선택한 셈이다.


음악은 돈이 많이 든다. 그리고 우리 집 형편은 그리 넉넉지 않았다.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작곡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어린 나이에도 그간 돈 때문에 포기한 것들이 많았고, 내심 그에 대한 아쉬움이 늘 존재했다. 그래서 이제 더 늦으면 진로를 바꾸기 힘들 테니 이것만큼은 지켜내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철없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난 음악이 정말 좋았다. 휙휙 바뀌는 상황 속에서도 '음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은 분명했다.



자주 바뀌긴 했지만, 나는 늘 하고 싶은 게 확실했다. 그래서 친구들이 꿈이 없다는 말을 할 때마다 신기하고 의아했다. 어떻게 하고 싶은 게 없지? 그럼 막막해서 어떻게 살아가지?

그래서 한편으로는 내 꿈이 소중했다. 나의 미래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기분이 좋았다. 방황하지 않고, 헤매지 않고, 이대로만 가면 언젠가는 내 꿈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게 늘 나를 움직이게 했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작곡 대학 입시에 도전해 성공했다. 그렇게 작곡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학교를 졸업한 뒤 음악을 포기한 지금, 나는 생애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게 없는 시간을 살고 있다.


나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전혀 모르겠다.


그래서 방황 끝에 무작정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다시 내가 정말 잘하는 걸 찾고 싶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간절하게 알고 싶었다.





이 글은 내 자아를 찾는 여정의 시작이다.

그리고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털어놓는 하소연이자, 동시에 내가 그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위로의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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