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 그랬어요.

그를 지나 내가 보였다.

by 작가 시일



예전에 함께 일하던 사람이 있었다.

당시 나는 팀장이었고 그는 새로 입사한 경력직 직원이었다.

그를 떠올리면

항상 어딘가 급해 보이던 얼굴이 먼저 생각난다.

새로운 환경에 막 들어온 그는

늘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 지나도 자리에 남아 있었고

작은 일에도 몇 번씩 확인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실수는 줄지 않았다.


일이 꼬이는 날이면

말이 먼저 튀어나왔고

표정은 쉽게 굳어졌다.


그의 말과 행동은

종종 팀의 리듬에서 벗어났다.

조금씩 틈이 생겼다.


이해하지 못한 말들이 오해가 되고,

오해는 불편함이 되고,

불편함은 거리로 바뀌었다.



나는 그를 돕고 싶었다.

정말로.

그래서 자주 그를 불러 앉혔다.

여기서는 이렇게 하면 좋겠다고,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어떻겠냐고.

지금 이 시기엔 이게 더 중요하다고.

맞는 말들이었다.


그가 이곳에 잘 적응하고

조금 덜 다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마음은 점점 더 닫혀갔다.


그의 말은 줄어만 가고

눈은 자주 다른 곳을 향했다.

피드백이 시작되면

이미 대화는 끝나 있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나뿐 아니라

팀원들 모두가

그와의 대화를 줄이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가 문제를 만들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는 다만

살아남으려 애쓰고 있었을 뿐인데.


방어기제라는 건

사람이 마음이 다치지 않기 위해

본능처럼 꺼내 드는 마음의 방패다.

괜히 말이 거칠어지거나,

괜히 웃어넘기거나,

괜히 혼자 버티려는 태도도

사실은 “지금 많이 힘들다”는

가장 솔직한 신호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신호를

너무 늦게 읽었다.

시간이 흐르고

이번에는 내가

그 자리에 서게 됐다.


완전히 다른 일을 하게 되면서

나는 다시 초보자가 되었다.

어제까지 당연하던 것들이

하나도 당연하지 않은 곳에서

나는 자주 멈췄다.

속도는 느렸고

실수는 눈에 띄었다.

주변의 시선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도 느껴졌다.


팀원들의 불만,

매니저의 조심스러운 거리감,

신뢰가 조용히 빠져나가는 느낌까지.

그제야 알았다.

새로운 영역이라는 건

시간이 해결해 주는 부분이 분명 있는데,

사람들은 그 시간을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나 역시

나도 모르게

마음의 방패를 꺼내 들고 있었다.

괜찮은 척 웃고,

괜히 말을 줄이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하루를 넘기면서.

그 순간

그 사람이 떠올랐다.


그리고 얼마 전 들려온 소식.

그는 지금

팀 안에서 좋은 피드백을 받으며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방어기제는

없애야 할 성격이 아니라

지켜야 할 마음이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날카로워질 때,

그건 공격이 아니라

살기 위한 선택일 수 있다.


그리고 그 방패를 내려놓게 만드는 건

더 많은 조언이나

더 정확한 맞는 말이 아니라,

조금 느린 이해와

조용한 기다림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마음의 방패를 들고

하루를 건너가고 있을 테니까.

작가의 이전글꽃이 시들지 않았다면 그 아름다움은 기억되지 않았겠지.